카메라에 비치는 화려한 모습 뒤로 얼마나 많은 집게와 옷핀이 모델들의 등 뒤에 고정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촬영장에서 일해 본 이들이라면 모두 알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주름진 드레스의 뒷면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1. 모델, 그들의 우월한 유전자

Via amateurphotographer

* 본문에 사용한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자료 사진임을 밝힙니다.

모델이라는 직업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 우월한 유전자? 외모 덕분에 구직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몇 초 런웨이에서 걷는 것만으로 엄청난 돈을 버는 직업? 보통의 선입견으로 모델은 타고난 것이 노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직업이라고 인식되는 듯하다.

당신이 만약 모델을 꿈꾸고 있다고 치자. 물론 키와 비율 등의 외모가 모델이라는 직업의 조건에 부합한다는 전제를 깔고. 이때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은 모델 에이전시의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인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등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번 이상의 캐스팅 과정을 통해 모델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해 내야 아카데미에 등록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부여된다.

대부분의 에이전시에서는 키에 따른 표준 몸무게와 상관없이 모델로서의 이상적인 몸무게의 표본을 제시한다. 가령 당신이 174-6정도의 여성 모델이라면 당신은 몸무게를 49-51킬로로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살을 뺀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보다 더 마른 친구들이 모델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들의 경우 아카데미 기간 동안 몸무게를 늘리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

 

2. 모델, 그 치열한 계급 전쟁

Via deccanchronicle

아카데미를 수료하면 몇백 명 중에 단 한두 명만이 그 회사의 소속 모델이 될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 자리를 놓고 어깨동무한 채로 경쟁하는 것이 아카데미에서 모델 지망생들이 하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에이전시 소속 모델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일까? 신사동 가로수길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선글라스 광고의 주인공? 꿈꾸던 서울 패션위크에서의 화려한 데뷔?

아마 당신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마트에서 1+1 행사를 할 때의 ‘+1’이 되는 일이다.

Via vogue

이미 소속되어 있는 실력 있고 안정적인 모델 A가 캐스팅될 때, 신인 중에 이런 친구가 있는데 같이 써주면 A의 가격을 낮춰주겠다든가, 무료로 할 테니 쇼에 세워만 달라든가, 매거진에 서브로 끼워달라는 등의 +1의 포지션으로 당신은 일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1에서 성장해 본품 1이 되는 순간 어떻게 될까? 당신의 인지도를 신인 B에게 나눠주고, 수입을 깎아먹는 +1의 존재가 반가울리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당신도 +1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Via wallup

그렇다면 모델들 간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일까?
모두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거칠게 나누자면 모델들은 ‘인간 마네킹’, ‘모델’, ‘톱모델’로 분류할 수 있다.

처음 모델이 되어서 들어오는 일은 ‘ㅇㅇㅇ(땡땡땡)’이라는 이름의 당신을 찾는 일은 아닐 것이다. ‘키는 175 정도 44사이즈, 단발에 개성 있지만 웃는 모습 수줍은 여자 모델’이라는 기준을 클라이언트가 제시하면 에이전시는 그에 맞는 가격대와 이미지의 모델을 자신들 데이터 안에서 찾아 보내게 된다. 이때 당신이 그 기준에 맞는 모델이면 캐스팅을 보러 가게 되고 클라이언트의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 그 일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 클라이언트는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제품의 이미지와 모델의 이미지를 이미 그려놓고 그에 맞는 사람을 뽑은 것이기에 모델이 촬영장에서 제안하거나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나 포즈의 다양함은 크게 많지 않다. 즉 그들은 클라이언트가 그려 놓은 인간 마네킹의 이미지에 자기 자신을 그려 넣는 일을 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Via theatlantic

그로부터 어느 정도 이미지를 쌓아가고 경력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을 ‘그 ㅇㅇㅇ 광고에 나오던 애’, 또는 ‘그 쇼에 단발머리 여자애’로 부르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 여자애’로 불리기 시작하는 순간 에이전시는 ‘주목해야 할 신인’, ‘떠오르는 신인’ 등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할 것이다.

 

3. 모델, 그 모순의 향연

대부분의 예체능계가 그렇듯 ‘어린 게 최고야!’, ‘뉴페이스가 짜릿해!’라고 외치는 모델계 역시 모순적이게도 이바닥에서 잘 버틴 오래된 ‘새 모델’을 좋아한다. 다른 직업에 비해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선택하는 직업인 만큼 성실하고, 꾸준하며, 실력이 입증되고, 이 바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의 모델임을 입증할 시간이 필요하고, 동시에 새롭고 어린 모델을 찾는 모델계에서 당신은 순번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이 요즘 읽는 기사의 신인 모델들은 아마도 몇 년 전부터 쭉 신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이 그들의 순번일 뿐.

Via businessoffashion

모델이 ‘그때 걔’라면 톱모델은 그의 이름이 그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는 검증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쇼 시즌에 브랜드들은 당신을 먼저, 더 좋은 조건에 캐스팅해서 경쟁 브랜드의 쇼에 서지 못하게 하도록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를 것이다.

당신에게 영감받아 당신을 위한 옷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당신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광고가 제작될 수도 있다.

Via topwomenmagazine

+1에서 1으로 변신한 당신은 촬영장에서도 쇼장에서도 당신이 제안하고, 지시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한없이 커지게 된다. 타고난 외모와 배운 대로 걷고, 선배의 포즈를 따라 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당신의 시선으로 옷과 제품을 이해하고 당신의 스타일로 해석하고 당신만의 표정과 매력을 뿜는, 결국 당신의 능력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4. 살아남은 모델과 그들의 능력

그렇다면 당신이 모델이라고 알고 있는 그들은 과연 타고난 것만으로 먹고 사는 것일까? 타고난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모델이라면, 타고난 것만으로 그 전쟁을 헤쳐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경험으로, 느낌으로, 노력으로, 행동으로 만들어낸 능력이 그 전쟁 속에서 빛을 발했기에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편에 계속됩니다)

 

메인 이미지 케이트 모스, 카라 델레바인 화보 Via onthedm

 

필자소개
백립
현재 4개국 이상의 지역에서 5년 이상 모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프로페셔널 모델’. 필명 백립은 백 개의 립스틱의 줄임말로, 백가지 입술로 백가지 생각을 담고 있다는 뜻의 닉네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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