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Masam hosono 인스타그램

여성의 숏컷은 결코 가볍지 않다. 숏컷을 하면 ‘실연당했냐’, ‘남자 같다’, ‘기르면 더 예쁠 것이다’,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등 온갖 참견이 따라붙는다. 미용실에서도 숏컷을 요구하면 ‘정말 자르시겠어요’라는 질문부터 ‘뿌리 볼륨을 살려서 둥글둥글하게, 뒷머리 기장은 목에 닿게 해 드릴게요’라며 ‘여성스러움’을 살리려 안간힘을 쓴다. 자연히 같은 숏컷이라도 남성보다 가격이 더 붙는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나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저자 러네이 엥겔른은 여성들은 실연처럼 삶의 중대한 사건 때마다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여성의 외모를 여성 자신, 혹은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결정하는 것으로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즉 여성의 머리칼에는 남성에 비해 여러 사회적 맥락이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출처- Masam hosono 인스타그램
출처- Masam hosono 인스타그램

최근 해외에서 이러한 경계를 부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에서 젠더 중립 헤어숍 ‘베이컨시 프로젝트(VANCANCY PROJECT)’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인 헤어 디자이너 마사미 호소노(Masami Hosono)가 대표적이다. 그의 헤어숍은 가격은 물론 헤어 스타일도 성을 구분하지 않는 헤어컷으로 많은 여성 고객들, 특히 페미니스트나 성소수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독일 베를린의 헤어숍 ‘부치컷(BUTCH CUT)’도 젠더 중립적인 헤어 컷을 전문적으로 연출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Masam hosono 인스타그램
출처- Butch cut 인스타그램

이미 해외 유명 배우나 모델 사이에서는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숏컷이 유행이다. 호주 멜버른 출신 배우이자 미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시즌 3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배우로 올라선 루비 로즈나 미국의 팝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와 레이디 가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케이트 맥키넌, 샤를리즈 테론, 틸다 스윈튼 등이 대표적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일리 사일러스

그동안 여성의 숏컷은 일반적이지 못했다. 여자라면 분홍색, 남자라면 하늘색이라는 성별 이분법처럼 ‘여자라면 긴 머리, 남자라면 짧은 머리’라는 공식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사미 호소노의 설명처럼, 숏컷 역시 성별 이분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여자 숏컷, 남자 숏컷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패션은 ‘보이프렌드룩, 매니시룩’처럼 성별 이분법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헤어 스타일은 보수적인 성별 이분법으로 갈라져 있다. 게다가 아무리 여성 헤어스타일에 화려한 컬러와 펌이 있더라도 ‘모히칸’, ‘레게’, ‘삭발’ 등과 같은 스타일 종류에 있어서는 남성이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편이다.

루비 로즈가 2014년 제작한, 자신의 성정체성 혼란을 표현한 단편 <Break Free>

동시에 여성이라면 대부분 ‘숏컷 충동’을 갖고 있다. 숏컷을 아주 잘 소화한 여성들에게 ‘걸 크러시’라는 찬사를 보내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러한 ‘걸 크러시’의 사례로는 배우 루비 로즈가 긴 금발을 잘라내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영상 <break free>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여성의 ‘숏컷 충동’에는 루비 로즈가 밝힌 작품의 연출 의도인 ‘사회적으로 정해진 성 역할을 부수는 기분’과 닿아 있다.

출처- Butch cut 인스타그램

여성의 ‘숏컷 충동’은 어느정도 ‘잘생김에 대한 충동’과도 맥락이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여성의 잘생김=덜 예쁜 것’이라는 인식이 크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여성다움’이라는 한계를 정해둔 탓이다. 그래서 숏컷을 하더라도 최대한 볼륨을 살려서 ‘동글동글하고’ ‘여성스럽게’ 컷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잘생김이나 남성다움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근육질의 몸매’나 ‘바지 차림’이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다가 여성들도 누리게 된 것처럼, 여성들도 충분히 ‘잘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 스틸컷

그리고 굳이 숏컷이 아니더라도 ‘남성용’이라 분류된 향수를 뿌리거나, 남성용 속옷으로 편안한 해방감을 누리는 등 사회가 정해 둔 성별 이분법을 가볍게 무시함으로써 더 다양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숏컷’을 하더라도 오히려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음으로써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모두 누려보며 경계를 자유롭게 노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쯤하면 숏컷에 ‘진짜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던가 ‘남자 같다’는 등 해묵은 시선은 시원하게 날려 버리자. 대신 과감한 컷으로 귀밑과 목 뒤로 느껴지는 간지럽고, 낯선 바람의 감각을 느껴보자. 잘생겨진 얼굴에 흡족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출처- Butch cut 인스타그램

 

메인 이미지 출처 Masami hosono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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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하게 써 왔고, 쓰고 싶습니다. 특히 지리멸렬한 이미지들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사진이나 미술 비평처럼 각 잡고 찍어낸 것이 아닌, 그 각이 잘라낸 이미지들에 대해. 어릴 적 앨범에 붙이기 전 오려냈던 현상 필름 자투리, 인스타그램 사진 편집 프레임이 잘라내는 변두리들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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