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영상기술은 인류의 상상을 현실로 묘사하고, 존재하지 않는 허구를 마치 실제 화면처럼 마음껏 창조하고 주무른다. 허나 우리는 아직도 ‘유사실재’ 아닌 ‘실재’(또는 실재라 생각하는 것)를 더욱 갈망한다. 특히 ‘사람’에 대한 묘사는 실사와 가상 사이 한껏 줄어든 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탓에 많은 이들은 아직까지 실사화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높은 완성도와 골수팬을 이미 담보한 원작의 힘 또한 갖가지 위험 부담에도 많은 꿈과 상상들을 사실적 세계로 끌어들이는 이유이다. 

 

1. 영상과 세계관의 아름다움 현현, 애니메이션 원작 실사영화

그중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는 전통적인 소설의 실사화나 오늘날 인기 있는 웹툰의 실사화와 다르게 영상으로서 이미 온전한 화면과 서사구조를 다 갖추었다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재료이자 치명적인 독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오리지널의 가상을 무리하게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고유의 분위기와 미학을 재창조하려는 고민이 함께 수반된다면, 그 결과물은 미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랑>(2018)

人狼 | 감독 김지운 | 출연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한예리, 최민호, 신은수, 최진호
<인랑> 포스터

미장센의 대가로 알려진 김지운 감독이 정교한 작화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의 명작 애니메이션 <인랑>(2000)을 실사화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뿐더러 다행으로까지 여겨진다. 물론 영화 <인랑>은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본 따지 않았다. 이미 <밀정>(2016)으로 우리네 뜨거운 역사를 쿨한 멋으로 그린 바 있는 김지운은 <인랑>만의 것으로 여겼던 세계관을 우리 근미래의 대체역사로 치환한다.

<인랑> 티저 예고편

 

<미녀와 야수>(2017)

Beauty and the Beast | 감독 빌 콘돈 | 출연 엠마 왓슨, 댄 스티븐스, 루크 에반스, 조시 게드, 이완 맥그리거, 이안 맥켈런
<미녀와 야수> 스틸컷

디즈니는 오늘날 자사 애니메이션들을 활용한 적극적인 실사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 1991년 동명의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실사화한 이 작품은 역대 전 세계 실사 뮤지컬 영화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며 역사에 남았다. 애니메이션과 사뭇 다른 야수의 비주얼이나 아쉬운 각색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마치 동화와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현실로 절묘하게 옮겨놓은 듯한 배우 캐스팅과 고풍스러운 멋을 잘 살린 정교한 소품들로 우리가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기대하는 재현의 미학을 잘 살렸다는 평도 못지않았다. 이 같은 선택과 집중은 원작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겨오는 데에만 급급해 늘 기대보다 더 큰 실망을 안겨주는 실사화 작품들에 모범을 제시해준다.

<미녀와 야수> 예고편

 

 

2. 일인칭의 감각과 정서 현현, 게임 원작 실사영화

실사 영화화 소재로서 ‘애니메이션’이 갖는 장점은 이야기의 매력이나 영상의 시청각적 아름다움이다. 이와 비교하여 ‘게임’은 정교한 서사나 화면보다도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장르로서 몰입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장르다. 덕분에 게임의 실사화 버전 역시도 우리가 현실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자극적인 감각과 정서가 핵심을 이룬다. 스펙터클한 스케일을 강조한 근래의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 <램페이지>(2018)나 공포와 액션을 앞세워 가장 성공한 게임 실사영화 시리즈가 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2002~2016)가 대표적이다.

 

<모탈 컴뱃>(1995)

Mortal Kombat | 1995 | 감독 폴 앤더슨 | 출연 크리스토퍼 램버트, 위룡, 린든 애쉬비, 캐리 히로유키 타카와, 브리짓 윌슨, 탈리사 소토
<모탈 컴뱃> 포스터

<모탈 컴뱃>은, ‘스트리트 파이터 2’가 한국을 지배했던 1990년대 초,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함께 북미를 양분했던 대전격투 게임 ‘모탈 컴뱃’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사실 별다른 설정이나 설명이 불필요한 액션 게임을 영화화한 것이기에 게임 속 캐릭터들에 대한 고증과 설정, 액션 장면만 그럴듯하면 됐으나 막상 이후로 이 작품만 한 액션 게임 실사영화가 전무했던 것을 보면 <모탈 컴뱃>의 액션 연출은 꽤나 의미 있는 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 폴 앤더슨(정극 영화감독인 폴 토마스 앤더슨과는 동명이인이다.)은 확실히 재능이 있었는지 이후 B급 SF호러영화의 교본이라 불리는 <이벤트 호라이즌>과 앞서 언급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연출하게 된다.

<모탈 컴뱃> 공식 트레일러

 

<사일런트 힐>(2006)

Silent Hill | 크리스토프 갱스 | 출연 라다 미첼, 로리 홀든, 숀 빈, 데보라 웅거, 타냐 알렌, 크리스토퍼 브리튼, 킴 코티스, 조델 퍼랜드
<사일런트 힐> 포스터

<모탈 컴뱃>이 통쾌한 액션의 감각과 정서를 잘 전달한 영화라면, <사일런트 힐>은 이존재와 세계가 선사하는 공포는 물론, 미스터리에 대한 답답한 감정까지도 훌륭히 재현하는 영화다. 코나미에서 제작한 동명의 게임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스토리와 캐릭터 모두 원작과 다르게 각색되었으나, 그 각색이 또한 설득력이 있고 원작의 설정들을 해치지 않을뿐더러 게임보다 더 실감 나게 재현된 배경과 크리처 디자인을 통해 마치 게임에 참여하는 듯한 영화 속 주인공의 시점을 재현해넀다.

<사일런트 힐> 공식트레일러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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