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는 왜 사람을 사로잡을까. 조용하지만 무섭게 파고드는 그의 영화는 큰 진폭 없이 이어지다가 불쑥 심장을 내려앉게 한다. 아직 프랑수아 오종이 낯설다면, 최근작부터 시작해보자. 그의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 최근 작품 순으로 배열 

 

<두 개의 사랑>

L'amant doubleㅣ2017ㅣ감독 프랑수아 오종ㅣ출연 마린 백트, 제레미 레니에

<두 개의 사랑>을 보기 전, 쌍둥이 형제와 그 사이를 오가는 한 여자의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상상했다면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들지 모른다. 지난해 개봉한 이 영화는 주인공 ‘클로에’(마린 백트)의 불안한 심리를 따라간다. 클로에에게는 ‘폴’(제레미 레니에)이라는 안온한 현실이 있다. 이 현실은 따스하지만 클로에의 환상을 채워주진 못한다. 클로에 내면에서 똬리를 틀었던 욕망과 판타지는 폴의 쌍둥이 형제 ‘루이’를 만나며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 기묘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쫓던 우리는 결국 새로움을 갈망하고 은밀하게 탐하는 제 얼굴을 마주한다. 전작 <프란츠>(2016)로 낯선 면모를 보여주었던 프랑수아 오종은 자신이 달라지지 않고 더 넓어졌을 뿐임을, 여러 장르를 유려하게 엮어낸 이 영화를 통해 증명했다.

<두 개의 사랑> 트레일러

 

<프란츠>

Frantzㅣ2016ㅣ감독 프랑수아 오종ㅣ출연 폴라 비어, 피에르 니네이, 에른스트 스퇴츠너, 마리 그루버

<프란츠>는 프랑수아 오종의 다른 작품과 다른 결을 지녔다. 전쟁 후 남겨진 이들의 아픔과 죄책감, 용서와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감독 자신에게도 도전이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약혼자 ‘프란츠’(안톤 폰 루카)를 떠나보낸 독일인 ‘안나’(폴라 비어)는 약혼자의 묘지를 찾아온 프랑스인 ‘아드리앵’(피에르 니네이)을 만난다. 아드리앵은 자신을 프란츠의 친구라 소개하지만, 그의 행동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아드리앵에게 프란츠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와 가까워지는 프란츠의 가족과 안나. 시간이 흐르고, 길을 잃었던 안나의 사랑은 조금씩 아드리앵에게로 흐르기 시작한다.

영화는 특별한 순간 색채를 입는다

프랑수아 오종은 이 영화를 컬러로 만들려던 기존 계획을 촬영 한 달 전 바꿔버린다. 그는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흑백으로 촬영했고, 극적인 순간에만 색을 입히며 영상미를 끌어올렸다. <프란츠>는 영상미뿐 아니라 소리 역시 정교하게 구상한 영화다. 오래된 돌길을 걷는 안나의 구두 굽 소리, 바람이 스치는 나뭇잎 소리, 아드리앵이 켜는 바이올린 선율…. 영상과 사운드까지 빈틈없이 직조한 이 영화는 내용과 형식 면에서 모두 완벽에 가까워 ‘오종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마음을 아득하게 만드는 영화.

<프란츠> 트레일러

 

<영 앤 뷰티풀>

Jeune et jolieㅣ2013ㅣ감독 프랑수아 오종ㅣ출연 마린 백트, 제랄딘 팔리아스, 샬롯 램플링

열일곱 생일을 앞둔 ‘이사벨’(마린 백트)은 휴가지에서 한 청년을 만나 첫 섹스를 한다. 휴가에서 돌아온 이사벨의 삶은 전과 같지 않다. ‘레아’라는 이름으로 매춘을 시작하게 된 것. 그렇게 가을과 겨울이 지나는 동안, 이사벨의 눈빛과 몸짓은 계속해서 공허하기만 하다. 이사벨과 몇 번의 만남을 이어오던 한 남자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레아로서의 삶은 크게 흔들린다. 그 후 다시 찾아온 봄에 이사벨은 어떻게 세상을 마주할까. 영화는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다만 남자와 함께 자던 침대 위에 다시 홀로 앉은 이사벨의 표정을 화면 가득 보여줄 뿐. 그는 이제 프레임 밖 어딘가를 바라본다. 제멋대로 흔들리며 공허함을 안으로 삭이는 청춘을 담은 영화, 영 앤 뷰티풀이라는 제목보다 잘 어울리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두 개의 사랑>의 주인공 ‘클로에’ 역의 마린 백트는 이 작품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영 앤 뷰티풀> 트레일러

 

<인 더 하우스>

Dans la maisonㅣ2012ㅣ감독 프랑수아 오종ㅣ출연 파브리스 루치니, 어니스트 움하우어,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 영화는 고등학교 문학 교사 ‘제르망’(파브리스 루치니)이 학생 ‘클로드’(어니스트 움하우어)의 작문 과제를 읽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 작문 내용이 어마어마한 흡입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클로드는 친구 ‘라파’(바스찬 유게토)의 집을 욕망하다가 마침내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라파의 가족, 특히 어머니를 지켜보며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제르망과 그의 아내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읽기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야 마는 것은 영화의 재미 때문인가, 아니면 클로드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인가. 보고 나면 도리어 그게 궁금해질지도 모른다.

<인 더 하우스> 트레일러

 

<스위밍 풀>

Swimming Poolㅣ2003ㅣ감독 프랑수아 오종ㅣ출연 샬롯 램플링, 루디빈 사니에, 찰스 댄스

성공한 미스터리 작가 ‘사라’(샬롯 램플링)는 차기작 준비를 위해 편집장의 별장에 머물게 된다. 수영장이 딸린 빌라에서 글쓰기에 집중하던 사라 앞에 갑자기 ‘줄리’(루디빈 사니에)가 나타난다. 줄리는 사라의 존재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시간을 만끽한다. 어느 날 줄리는 사라가 호감을 느꼈던 카페 종업원 ‘프랭크’(장 마리 라모르)를 유혹하는데, 그 후 프랭크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벌써 개봉한 지 10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여전히 ‘관능적인 스릴러’ 하면 빠지지 않는 영화다. 프랑수아 오종은 이 영화에서 유약하며 불안한 인간을 제대로 비춘다. 프랑수아 오종이 오래도록 다뤄온, ‘아무도 모르게 꿈틀대는 미묘한 욕망’이라는 소재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영화이기에 함께 소개한다.

<스위밍 풀>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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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