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1946~1989)

“이 사진을 보십시오(Look at the Pictures).”, “이것이 예술입니까?” 상원의원 제시 헬름스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논란이 된 작품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성기를 드러낸 흑인 남성들, 음부를 연상시키는 꽃, 동성애, 사도마조히즘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담은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그가 사망한 후에도 끊이지 않는 논란을 낳았다. 그의 죽음 직후에 펼쳐졌던 순회사진전이 신시내티의 CAC(컴템포러리 아트 센터)에 도착했을 때,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발생했다. 결국 CAC와 관장인 데니스 배리는 음란물 전시 혐의로 고발당했다(그러나 극적인 법정 공방 후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에서의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동시에 메이플소프에게 더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돈, 성공, 유명세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이 예술가는 끝내 자신의 강렬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분출한 작품들로 예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평생을 예술에 천착했고, 완벽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몸을 혹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43세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하였으나 생전에 부와 명예를 모두 누렸다. 두터운 자기긍정이 있었고, 예술적 야망을 집요하게 좇은 덕분이었다.

‘욕망’, ‘야망’이라는 단어는 종종 좇아서는 안 될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지지만, 메이플소프는 대놓고 자신을 ‘속물’이라 칭하며 섹스에 대한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누구든지 그를 보면 마음을 빼앗겼고, 저 자신도 매력적인 외모를 성공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재력가 애인을 만나 물질적, 정신적으로 후원을 받았고, 성공한 후에는 더 많은 애인을 곁에 두고 작업의 모델로 삼았다.

“누구든 꿈이 있다면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한다.” 며칠 전 개봉한 메이플소프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한 말이다. 적어도 우리는 메이플소프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을 통해, 꿈의 실현방식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메이플소프의 삶과 예술을 엿볼 수 있는 책과 영화들을 소개한다. 성공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 찬 한 예술가가 원하는 성취를 어떻게 이뤄갔는지 가까이 들여다볼 기회다.

 

<메이플쏘프>

Mapplethorpe: Look at the Picturesㅣ2016ㅣ감독 펜튼 베일리ㅣ출연 로버트 메이플소프, 데보라 해리, 프랜 레보위츠

<메이플쏘프>는 로버트 메이플소프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의 예술 생애를 들여다본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메이플소프의 연인은 수백 명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고, 그 삶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영화에 출연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누나, 남동생이자 함께 사진작가의 길을 걸은 에드워드 메이플소프를 비롯해 그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많은 이들이 생생한 목소리를 보탠다. 동시에 <메이플쏘프>는 1980년대 미국 예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워싱턴 D.C.에서의 법정 공방 사건에 대해 처음 입을 연 작품이다. 가족, 지인의 인터뷰와 그가 남긴 자료화면을 통해 영화는 당시의 논란과 분쟁을 객관적으로 되짚는다. 이 유의미한 프로젝트를 위해 게티 뮤지엄(The Getty Museum)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큐레이터들이 발 벗고 나섰고, 덕분에 전에 본 적 없는 희귀한 영상 자료와 이미지들이 스크린을 통해 부활했다.

<메이플쏘프> 예고편

 

<블랙 화이트 + 그레이>

Black White + Gray: A Portrait Of Sam Wagstaff And Robert Mapplethorpeㅣ2007ㅣ감독 제임스 크럼프 ㅣ출연 로버트 메이플소프, 샘 와그스탭

메이플소프의 인생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라면 샘 와그스탭(Sam Wagstaff)일 것이다. 그는 로버트의 물질적 후원자이자, 사랑하는 연인인 동시에 사진에 관한 조언자였다. 가진 거라곤 야심과 재능뿐이었던 메이플소프는 전직 큐레이터이자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였고,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재력가였던 샘 와그스탭을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당시 사람들은 메이플소프가 애인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다고 비난했으나 그는 매 순간 마음을 다해 상대방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카메라에 담았다. 메이플소프에 비해 덜 알려진 샘 와그스탭이라는 인물을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흑인 남성 누드, 동성애, 에이즈 등 동시대의 금기인 주제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77분의 가치를 충분히 해낸다.

 

<저스트 키즈: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09.28

패티 스미스의 <저스트 키즈>는 러브스토리로 시작해 깊은 애도로 끝을 맺는, 두 젊은 예술가의 사랑과 성장의 기록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그 시절 패티 스미스는 뮤지션이 아니었고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사진작가가 아니었다.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그래픽아트를 전공하던 젊은 날의 메이플소프는 그의 최초이자 마지막 여자친구가 된 패티를 만나 서로 순수한 사랑과 영감을 나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까지 메이플소프는 친구와 지인들의 사진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예술가로서 조금씩 이름을 알렸고 그 곁에 언제나 패티가 함께 했다. 메이플소프가 몇 번의 주저 끝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각자의 길을 걷게 된 후에도 이들의 교유는 끊어지지 않았다. 메이플소프는 패티의 데뷔 앨범 <Horses>의 커버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는데, 이 앨범이 성공할 즈음 메이플소프 역시 사진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89년 43세의 나이에 에이즈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 메이플소프는 패티의 앨범커버 사진을 한 번 더 촬영했고 둘의 우정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젊은 날의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메이플소프가 촬영한 패티의 데뷔 앨범 <Horses>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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