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서 콜라보는 특히 중요하다. 재즈 프로듀서들은 정상급의 연주자들로 콤보를 구성하고 그들의 인터플레이(Interplay)를 연출하여 소위 명반을 남긴다. 재즈 음반에서 <A Meets B>라든가 <Featuring A> 유형의 제목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다. 1960년대의 스탄 게츠와 빌 에반스는 최전성기였다. 테너 색소폰의 스탄 게츠는 보사노바와 접목한 명반 <Getz/Gilberto>(1963)로 스타덤에 올랐고, 빌 에반스 역시 <Conversation with Myself>(1963)로 그래미를 수상한 직후였다. 두 사람 모두 센티멘털한 발라드 연주로 정평이 났지만,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춘 음반이나 연주곡은 찾아보기 어렵다.

재즈 레이블 Verve의 어레인지로 두 사람이 처음으로 스튜디오 세션을 가진 것은 1964년이었다. 전성기를 누리던 두 사람의 바쁜 일정 때문에 세션은 단 이틀 동안만 진행되었다. 두 사람의 스타일과는 어울릴 법하지 않은 공격적인 드러밍의 엘빈 존스가 스틱을 잡았고, 베이스는 일정 문제로 리처드 데이비스와 론 카터가 하루씩 맡았다. 어수선한 가운데 이틀이 지났으나 두 사람 모두 레코딩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약 조항에 따라 녹음된 마스터는 출반되지 않고 V6-8833라는 태그를 달고 어딘가에 묻혔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Bill Evans & Stan Getz>(1973), <Previously Unreleased Recordings>(1974)라는 두 장의 앨범으로 출반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도 없어서 엉성한 그림으로 앨범 자켓을 대신하였다.

<Bill Evans & Stan Getz>(녹음 1964, 출반 1974)에 수록한 ‘But Beautiful’

최전성기의 두 재즈 거장이 협연한 마스터를 어떻게든 출반하지 않고 10년간 방치했다는 점은 Verve 레이블 역사상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난 이들의 스튜디오 세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에도 재즈 팬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두 스타의 콜라보 앨범은 기획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유럽에서 우연히 조우하여 함께 연주할 기회가 생겼다. 1974년 8월 자신의 트리오와 유럽 연주 여행 중이던 에반스는, 네덜란드의 ‘라런(Laren) 재즈 페스티벌’과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열린 ‘Jazz Middelheim’에 참가한 스탄 게츠와 함께 무대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이날의 협연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생일을 맞은 에반스를 위해 게츠는 생일 축하곡으로 연주를 시작했지만, 게츠의 오리지널 ‘Stan’s Blues’에 이르자 에반스는 첫 몇 소절만 마지못해 몇 소절 반주를 하고는 피아노 건반에서 아예 손을 내렸다. 두 사람의 리듬이나 멜로디가 맞지 않았거나 미세한 스타일 차이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게츠의 레퍼토리가 에반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눈치 빠른 청중이라면 이날 두 사람의 연주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음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벨기에 실황 ‘Stan’s Blues’. 빌 에반스의 피아노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두 사람의 1974년 유럽 실황 역시 20여 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빌보드> 지가 당시 실황을 ‘Vital Reissue’ 목록에 올리며 다시 음반사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사망한 후인 1991년 독일 지역의 중소 음반사 ‘Jazz Door’가 벨기에에서 녹음된 6곡으로 구성된 음반을 냈고, 이후 마일스톤 레코즈(Milestone Records)가 여기다 네덜란드에서 녹음된 3곡의 판권을 추가 인수하여 <The Bill Evans Trio Featuring Stan Getz: But Beautiful>(1996)란 앨범 제목으로 출반했다.

<But Beautiful>(1996)에 수록한 ‘The Peacocks’

빌 에반스와 스탄 게츠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사이가 안 좋았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단지 두 사람의 레퍼토리나 음악적인 스타일 또는 즉흥 연주에 미세한 차이가 있어서 서로가 불편함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게츠는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이나 케니 바론(Kenny Barron)과는 잘 맞았지만, 예민한 성격의 에반스와는 잘 맞지 않아 인터플레이가 어려웠던 것이다. 재즈 음악의 한 특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의 벨기에 실황을 이탈리아에서는 <Two Lonely People>이란 제목으로 출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