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조선 도시’라 불리던 경남 거제시에 불황이 시작된다. 아직 열여덟이지만 당장 내년에 취업을 앞두고 머리가 복잡한 ‘지현’과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느라 누구보다 긴 하루를 보내는 ‘현빈’의 삶은 녹록지 않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아이들을 웃게 만드는 건 단 하나, 댄스스포츠다. ‘학교 졸업 후 조선소 취직’만 바라보던 아이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댄스스포츠를 통해 삶의 재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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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땐뽀걸즈>는 2017년 4월 KBS 스페셜로 처음 방송됐다. 이후 상상마당 시네마의 눈에 띄어 영화로 재구성해 같은 해 9월 상영을 시작했고, 7천 명 가까이 관객을 모았다.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평균 관객수를 감안했을 때 결코 작지 않은 성취다. 무엇보다 영화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호평했다. 공감대와 진정성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는 뜻일 테다. 믿고 보는 영화 <땐뽀걸즈>의 매력 포인트 몇 가지를 짚어봤다.

 

사려 깊은 카메라

<땐뽀걸즈> 스틸컷.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현빈’

영화를 연출한 이승문 감독은 처음에는 조선소 노동자를 취재하러 거제도를 방문했다. 거기서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반을 알게 되고, 격의 없는 친구 사이 같은 이규호 선생님과 학생들의 관계에 매료되어 촬영 방향을 바꿨다(학생들은 종종 선생님께 말을 놓기도 한다). 그렇게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거제여상 학생들의 댄스스포츠 전국대회 도전 과정을 팔로우하게 되었지만, 소녀들 각자의 개인사를 ‘이해’하려 무리하게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았다. ‘여고생’이라는 일반적인 틀에 한 개인을 끼워 맞추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진실하게 담아낸 사려 깊은 연출은 <땐뽀걸즈>를 특별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어엿한 아이들과 그 곁을 지키는 선생님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 전국대회는 열심히 노력해 도달해야 할 인생의 목표 같은 게 아니다. 이들은 여의치 않은 주변 환경 속에서도 그저 ‘좋아서’ 시간을 쪼개가며 댄스스포츠를 춘다. 취직, 진학 등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주어진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일렁임을 안긴다.

여기에 ‘땐뽀반’의 수장, 이규호 선생님의 든든한 모습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범적인’ 교사의 이미지에서 한발 비껴간다. 권위적이지도 않고 툭하면 말을 놓으며 자신을 놀리는 학생들의 농담을 모두 받아준다. 간밤에 술을 마시고 등교한 학생에게는 훈계 대신 숙취해소제를 건넨다(!). 다만 진심으로 교감하며 성장을 돕는 교사와 제자의 관계는 극적인 서사 없이도 찡한 여운을 준다.

 

영화의 빛과 포스터

거제의 풍경
빛이 드는 교실

영화는 구조조정 여파로 경기가 얼어붙은 거제의 암울한 일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비추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는 따스한 빛이나 청량한 색감의 풍경이 수시로 끼어든다. 우뚝 솟은 조선소와 파란 하늘, 푸르른 산이 어우러진 거제의 자연 풍광, 포근한 빛이 드리운 교실의 풍경은 영화에 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포스터도 이에 맞게 아름다운 빛을 머금고 있다. 앞서 <족구왕>(2013), <셔틀콕>(2013) 등 국내 독립영화의 포스터를 촬영하며 섬세한 감정을 적절히 포착해낸 표기식 작가가 <땐뽀걸즈>의 포스터 작업을 맡았다. 특유의 서정적인 색채와 분위기가 도드라진 포스터는 영화의 차분하면서도 선명한 이야기 주제를 적확히 관통한다.

<땐뽀걸즈> 포스터

숨이 막혀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옆에 있는 네가
많은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

세상이 막막하기만 해도
지금은 그런 고민하지마
즐겁게 우리 춤을 춰

- <땐뽀걸즈> OST. 김사월, 윤중 ‘땐뽀걸즈’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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