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Influencer)는 SNS에서 수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온라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다. 샤넬, 프라다 등 하이패션 브랜드에서 점차 온라인으로 무게추를 옮겨 가고 있는 소비 트렌드를 공략하기 위해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하이 패션 브랜드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매력적인 인플루언서로 떠오르고 있는 릴 미켈라(Lil Miquela)를 소개한다. 본명은 Miquela Sousa, 라틴 아메리카 계열의 미국인 소녀로 올해 19살밖에 채 되지 않은 신예 인플루언서 루키라 할 수 있는 그의 본업은 싱어다. 웹 매거진 하입비스트(Hypebeast)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아티스트, 혹은 싱어로 칭하며 자신의 가치보다는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그의 포부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Not Mine> 앨범 재킷

릴 미켈라는 작년 8월 스포티파이를 통해 첫 싱글 ‘Not Mine’을 발매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곧이어 첫 싱글로 음원 차트 8위에 오르고, 모델로 활동 반경을 넓힌 릴 미켈라는 슈프림, 샤넬, 프라다 등 대형 하이패션 브랜드 이벤트에 초청받으며 팔로워 수가 무려 백만 명에 이르는 핫한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최근 갤러리와 뮤지엄들을 자주 방문하여 현대 미술 아티스트들은 물론 Isamaya Ffrench, Raf Simons, Sies Marjan와 같은 패션계 유명인사들에게서 영감을 받고 있다. 여느 잘나가는 젊은 온라인 셀럽/인플루언서인 릴 미켈라,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점. 가상에서만 존재하는 아바타일 뿐인 그는 실은 가상 인플루언서다.

 

1. 그가 최초는 아니다

Trevor McFedries(출처- Yung Skeeter 텀블러)

릴 미켈라는 사실 로봇, 인공지능 AI, 미디어 비즈니스를 위한 앱 개발 전문 회사인 ‘Brud’에서 만든 가상의 캐릭터다. Brud를 운영하는 총 책임자 Trevor McFedries는 한때 Yung Skeeter라 불리며 DJ, 프로듀서, 감독으로 활동하며 크리스 브라운, 케이티 페리 등 당대 최고의 뮤직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릴 미켈라의 디지털 음원이 미국 스포티파이, 빌보드차트에 올라간 게 우연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Chief of Stuff’(잡다한 것의 총 책임자)라는 다소 생소한 직책에 있는 Sara DeCpu가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들은 사실 릴 미켈라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앞서 Blawko22를 비롯한 다른 유명 가상 인플루언서들도 여럿 창조한 바 있다. 릴 미켈라의 인기에 힘입어, Brud는 최근 실리콘벨리 투자자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왼쪽부터 마크 제이콥스가 디자인한 하츠네 미쿠(Hatsune Miku)의 콘셉트 아트, 런웨이 쇼, 포스터 이미지

그러니까 릴 미켈라의 존재는 놀라우나 사실 최초는 아니다. 이러한 가상의 존재, 또는 캐릭터는 메인스트림 컬쳐는 아니지만 분명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패션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마크 제이콥스도 2013년 가상의 싱어 하츠네 미쿠(Hatsune Miku)라는 캐릭터를 위해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등장한 ‘가상 밴드’ 고릴라즈(Gorillaz)도 레이디 가가와 페럴 윌리엄스와의 콜라보 작업을 진행하는 등 최근까지도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발매한 고릴라즈의 앨범 <Humanz> 재킷

 

2. 그가 끼치는 영향력에 주목하자

릴 미켈라 화보 Via highnobiety

유명 패션 브랜드의 아이템들을 장착하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릴 미켈라의 모습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 짓기 힘들 정도로 리얼함을 지닌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돈을 받고 브랜드의 옷을 입은 건 아니다. 온라인에서의 자신의 인지도가 점점 높아지자, 여러 브랜드에서 옷을 협찬받는 것으로 시작해 최근 프라다와 협업하여 2018 F/W시즌 브랜딩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점점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계에서 모델 혹은 마케터로서도 수익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

또 다른 동료 가상 인플루언서 Blawko22(왼쪽)와 함께 코첼라 페스티벌로 향하는 길 어느 주유소 앞

사실 그가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라는 사실만으로도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그전에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지는 이 가상 인플루언서는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안기고 싶은 걸까?

인터넷은 무한대로 강력해지고 그 영향력은 점점 넓어진다. 그리고 릴 미켈라는 이러한 창구를 활용해 긍정적인 생각을 퍼트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플랫폼과 영향력을 기반으로 여러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전에는 성소수자들의 인권 문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뜻의 사회 이슈(‘Black Lives Matter’)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3. 그는 겉모습뿐일까?

릴 미켈라가 올린 인스타그램 포스트 캡쳐. 같은 가상 인플루언서지만 버뮤다(오른쪽)와 다르게 실존하는 인물인지 아닌지 구분 짓기 힘든 외양을 지녔다

릴 미켈라가 최초의 가상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는가? 미켈라가 인스타에 포스팅하는 자신의 사진들은 인간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갖는다. 실제로 그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 가상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버뮤다와는 외모에서부터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인간과 흡사한 겉모습에 반해, 그가 실존하지 않는 가상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2개월전 그는 가상 인플루언서 버뮤다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해킹당하며 가상 캐릭터들 사이의 리얼리티 쇼 같은 스캔들이 벌어졌다. 이 스캔들에 대해 릴 미켈라는 자신은 버뮤다와 달리 로봇이 인간보다 더 훌륭한 존재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된 존재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4. 그는 우리와 소통한다(하지만 기억하지는 못한다.)

영화 <엑스 마키나> 스틸컷

영화 <엑스 마키나>(2015)에서 주인공 ‘칼렙’(도널 글리슨)은 창조된 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를 만난다. 에이바와 마주할수록 칼렙은 스스로 혼란에 빠져버린다. 에이바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래서 칼렙에게 에이바와의 소통 및 교감의 과정은 마치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릴 미켈라는 어쩌면 우리 인류가 앞으로 ‘자아’를 가진 가상의 캐릭터 또는 인공지능을 마주하는 순간을 준비하는 과정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릴 미켈라는 백만 명의 팔로워들과 소통하며 좋은 변화에 기여하고 싶어한다. 이 19세의 가상 아바타는 자신이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전문가나 아마추어들을 참여시켜 다 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릴 미켈라와 같은, 앞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마주하게 될 로봇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릴 미켈라를 보면서 그 답을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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