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것보다 흐릿한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너무 뚜렷하지 않은, 너무 유려하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깊은 서정이 있다고 믿고 싶다. 음악에도 물론 그런 것이 있다고 믿고 싶다. 실타래처럼 엉긴 노이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소개한다.

 

1. 모임 별

모임 별의 음악은 흐릿하다. 마치 안개와 같다. 선명하지 않고, 축축하고, 빛이 있지만 밝지는 않다.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것들이 음으로 엉겨 붙어 복잡한 감성을 만들어낸다. 어떻게 이런 음악이 있을 수 있을까. 파편적으로 뻗어 나가는 음 사이로 흐르는 시적인 가사와 서정의 멜로디에 그저 힘껏 빠질 수밖에 없다.

모임 별 '세개의 공장'

엇나가는 듯한 음들은 그만의 규칙을 이루어 귀로 모여들고, 흐느끼는 듯한 멜로디는 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젖어 든다. 모임별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유명한 시구절이 떠오른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낮은 곳으로’)
파편적 음들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파도에 가만히 휩쓸려 넘실대는 서정을 마음껏 느껴보는 것이다.

모임 별 '박쥐들 우리는'(2018)

 

2. 공중도덕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뮤지션, 공중도덕. 공중도덕은 <공중도덕>이라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내고 사라져버렸다. 공중도덕 앨범 안에 있는 곡들은 선명하지 않기에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고, 규정되어 있지 않기에 무한한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인데도 거부감이 없고, 기괴하기 그지없지만 아주 서정적인, 정말이지 괴이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공중도덕 ‘파라솔’

“몇 년 만에 통기타를 다시 치기 시작하면서 노래하면서 만든 8개의 곡들입니다. 목소리가 약하고, 노래를 잘 못하고, 곡들이 좀 유치하고, 음질이 안 좋지만 고등학교 때 만들던 곡들을 생각하면서 끝낸 앨범입니다.”

<공중도덕> 앨범을 소개하는 유일한 문장이다. 이 뮤지션이 말하는 ‘음질이 안 좋고’, ‘유치한’ 곡들은, 그렇기에 특별한 곡으로 리스너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공중도덕은 이 앨범을 내고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 사라져버렸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그저 또다시 유치한 곡들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와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공중도덕 ‘늪지대’

 

3. 니나이안

 니나이안의 음악 세계에서 ‘노이즈’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이즈 자체가 음악이 되며, ‘음’의 자리를 차지한다. 노이즈가 섞여 있는 음들은 때론 거칠게 다가오지만, 그 음들이 가지고 있는 소프트웨어 자체는 부드럽고 서정적이다. 그의 곡들을 잘 들어보면, 굉장히 많은 소리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 풍경이 울리는 듯한 맑은 소리, 기계가 작동하는 것 같은 소음들까지. 이 소리들의 확장은 음악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한다. 음들이 가지는 의미와 그 배경은 더욱 넓게 확장되고, 가사로 전달하는 감성 그 이상의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니나이안 ‘Only moment spent within you’

‘현실을 꿈꾸는 듯한 음악’. 한 리스너는 니나이안의 음악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 표현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지금 그의 음악을 한 번 들어보시길.

니나이안 ‘sun sun sun’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음악이 존재한다. 이미 너무 많은 음악이 나왔음에, 더이상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역시 이런 곡들을 들을 때마다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구나, 라는 흐뭇한 마음이 든다. 이런 곡들이 존재하기에 미래에 나올 수많은 음악들이 역시 기대가 된다. 이미 너무 확실히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닌, ‘발견할 수 있는’ 서정이 가득한 곡들을 앞으로도 만나보게 되길.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