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와 소녀시대로 출발한 걸그룹 2세대 역사 이후 벌써 11년, 오늘날 우리는 ‘걸그룹’이라는 말이나 음악이 더 이상 하나의 씬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와 콘셉트, 타깃을 지닌 시대에 살고 있다. 에프엑스는 (태양이나 아이유 같은 솔로를 제외하면) 아이돌로서 이례적으로 <Pinocchio>(2011)와 <Pink Tape>(2013)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을 2차례나 수상했고, 레드벨벳은 <Perfect Velvet>(2017)으로 대중음악 비평 웹진 웨이브에서 올해의 음반 1위를 차지하는 등 질적 성장 역시 뚜렷하다.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여성 주체의 해방이 호명되고 있는 대한민국 여기,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이합집산을 멈추지 않는 걸그룹의 현재를 둘러본다.

 

1. 합집합

첫 방영을 앞둔 <프로듀스48>은 매년 같은 비판에 더해 예년보다 더욱 냉담한 관심마저 받고 있지만 별걱정은 없어 보인다. 지난 <프로듀스101>(2016) 이후 데뷔 혹은 성공을 갈망하는 전현직 걸그룹 멤버, 연습생들을 끌어모아 거대한 합집합을 그려온 수많은 유사 기획의 전례를 통해 알 수 있듯, 결국 이들의 꿈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팬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니티 ‘넘어’ (2018.05.18)

그래서인지 막상 이와 같은 합집합을 통해 탄생한 그룹의 노래들 역시 높은 만족도나 대단한 도전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2018) 출신 유니티의 데뷔곡 ‘넘어’는 사실 많은 강점을 갖춘 노래다. 레게 리듬의 세련된 차용과 고른 보컬 라인, 훅의 꽉 찬 사운드와 화성 등이 그렇다. 그러나 막상 곡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섹시 콘셉트 안무와 그 주제를 감안해도 지나치게 이도 저도 아닌 가사가 곡의 장점을 해친다.

 

프로미스나인 ‘두근두근’(2018.06.05)

<아이돌학교>(2017)에서 탄생한 프로미스나인 역시 출신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걸그룹 역사 가장 오래된 전통의 소녀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신곡 ‘두근두근’은 멤버들이 직접 참여한 가사를 통해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로써 이들의 지향 모델이 마냥 청순가련형의 수동적 주체가 아님을 드러내는 한편, 밝고 중독성 있는 후렴과 포인트 있는 안무로 앨범 내 좋은 완성도를 갖춘 ‘Clover’를 대체하는 그룹 고유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강조한다.

 

2. 부분집합

특정 그룹이나 집단 내 부분집합을 의미하는 유닛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9인조, 10인조 이상의 그룹이 새삼스럽지 않은 아이돌 시대에는 더욱 필수적이고 흔한 개념이 되었다. 유닛 활동은 많은 숫자의 완전체 형태로는 다 보여주지 못하는 멤버 개인의 개성이나 본 그룹의 제한된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콘셉트 및 음악을 보여주는 데 적절히 활용된다.

 

프리스틴V ‘네 멋대로’(2018.05.28)

10인조 프리스틴은 멤버 절반을 참여시킨 프리스틴V를 출격시켜 걸그룹의 부분집합, 곧 유닛 본연의 의미와 목적을 충실히 이행한 싱글 ‘네 멋대로’를 선보였다. 기존의 통통 튀고 발랄한 분위기에서 탈피한 뜻밖의 걸크러쉬 콘셉트와 통일성 있게 맞물리는 곡의 무드와 사뭇 진지한 퍼포먼스도 긍정적이지만, 은우와 결경 등 프리스틴 체제에서 그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없었던 멤버들의 매력적인 보컬 파트를 더욱 길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이달의소녀yyxy ‘love4eva’(2018.05.30)

2016년 10월부터 매달 1명씩 멤버를 소개해 지난 2018년 3월까지 총 18개월이 지난 후에야 12명의 멤버가 모두 소개된 이달의소녀는 완전체 데뷔를 아직도 기다리는 상태다. 대신 지난 5월 발표된 세 번째 유닛 이달의소녀yyxy의 ‘love4eva’를 통해 아쉬움을 달랜다. 소녀시대 ‘Gee’를 히트시킨 작곡가 E-TRIBE가 참여해 ‘Gee’를 고스란히 재현한 초반 사운드로 추억을 환기하는 대신 거의 유사한 가쁜 템포에도 보다 차분하고 드라마틱한 멜로디 라인으로 명쾌한 재미를 어필한다.

 

3. 교집합

한 그룹 내 부분집합이 아닌 서로 다른 그룹의 멤버들을 엮은 교집합도 있다. 이 경우 일회성에 그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 아쉬움이 크지만 그 유한성만큼 남긴 노래의 희소성과 가치는 더 올라가기 마련이다.

 

우주미키 ‘짜릿하게’(2018.06.02)

우주소녀의 설아, 루다와 위키미키의 유정, 도연으로 구성된 교집합 우주미키는 재미있게도 음료 회사의 신제품 홍보를 위해 결성된 그룹이다. 탄산음료 홍보에 한정한 프로젝트 그룹인 만큼 노래 역시 청량감을 내세운 제목과 가사를 적극 차용하지만 그 배경을 모른다면 결코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송라이팅과 곡 이미지에 걸맞는 멤버들의 캐릭터가 잘 어우러진다. 특히 아이돌 댄스 트랙으로서는 흔치 않게 플루트 악기를 중요하게 활용해 쉬지 않는 오버블로윙 주법의 리프로 주제의 톡톡 튀는 감각을 표현해낸 것은 이 곡만의 멋진 개성이라 할 수 있다.

 

4. 새집합

아이돌 시장이 포화에 달한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좋은 신인은 끊이지 않기도 한다. 이는 그만큼 끝없이 도전하는 이들의 공급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거꾸로 걸그룹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수요가 꾸준함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자)아이들 ‘LATATA’(2018.05.02)

큐브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신인 걸그룹 (여자)아이들은 올해 가장 귀추가 주목되는 그룹이다. 이들의 데뷔앨범 타이틀 ‘LATATA’는 이미 대중음악에 익숙하게 쓰이면서도 걸그룹이 소화하기에는 여전히 실험적이고 성숙한 사운드로 여겨지는 뭄바톤 트랩을 신인 그룹으로서 꽤나 강렬하고 능숙하게 소화해 그 내공을 과시한다. 또한 훅의 가벼운 무게감과 재밌게 반복되는 추임새를 이용해 신인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는 데에도 성공한다.

 

5. 여집합

걸그룹의 시대가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해체 혹은 계약만료로 자신이 속한 집합이 공중분해 되어 어느 집합에도 속하지 않지만 여전히 걸그룹 출신 아이돌로서 경력을 이어나가는 가수들 또한 꾸준히 늘고 있다. 개념상 여집합이라면 이들 모두를 통틀어야겠지만 편의상 또 의미상 남겨진 이들 한 명, 한 명을 지칭하는 단어로 이해를 대신한다.

 

지숙 ‘에델바이스’(2018.05.22)

7년의 계약 기간을 끝으로 해체한 레인보우의 멤버 지숙은 그룹 활동 시절에도 간간히 개별 싱글을 발표하며 솔로로서도 가수 활동을 이어갈 의지가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그랬던 그의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알리는 이번 미니앨범, 그중 뮤직비디오를 남긴 ‘에델바이스’는 아이유를 연상하게 하는 맑은 음색과 차분한 감성의 발라드로 레인보우 시절과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유빈 ‘숙녀’(2018.06.05)

걸그룹 2세대 역사의 포문을 열었던 원더걸스가 지난해 해체한 이후 핫펠트(예은)와 선미가 그룹의 아쉬운 빈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왔으나 이 대열에 이제 유빈도 합류하게 되었다. 노골적인 시티팝 트랙 ‘숙녀’의 사운드와 콘셉트는 과거 그룹 내 유빈의 포지션이나 그가 <언프리티 랩스타2>(2015)에 래퍼로 참가했었던 이력을 생각했을 때 꽤나 뜻밖의 선택임과 동시에 레트로 사운드를 그룹의 주요한 정체성으로 내세웠던 원더걸스의 노래들을 생각할 때는 무척이나 반가운 유지가 아닐 수 없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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