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전체의 이상기온 현상으로 인해 나날이 여름이 덥고, 길어지고 있다. 더욱더 깊어질 앞으로의 더위는 두려울 정도이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천국’이라는 대사를 좋아하는 모 애니메이션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맨몸만으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었던 인류는 온갖 도구를 이용해 문명을 발전시켜왔고, 결국에는 콘크리트를 이용해 끝도 없이 늘어선 회색 건물들을 만듦으로써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낼 폐쇄된 공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냈다. 그와 함께 도시에서라면 빠질 수 없는 에어컨은 더운 여름 날씨에 사람들이 ‘천국’이라고 일컬을 만큼 의지하는 가전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어컨은 다른 가전제품들에 비해서 전력소모량도 많고, 실내의 더워진 공기를 밖으로 배출해 실내 온도를 차갑게 하는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은 에어컨이야말로 지구온난화를 가속시켜 더욱더 무더위가 심화되게 만드는 주범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다 함께 지금부터 에어컨을 사용하지 말자고 결심해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라 하더라도 찌는 듯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무더운 여름 날씨 속의 도시에서 듣기에 꼭 맞는 청량한 여성 보컬들의 목소리를 담은 일본 음악을 들어보기로 하자.

 

Tomoko Aran

아란 토모코(Tomoko Aran)는 처음에는 작사가로 데뷔하여 가수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오다 테츠로(Oda Tetsurō) 등과 함께 1978년에 세워진 일본의 음반사 겸 기획사 빙(Being) 계열의 초창기 소속 뮤지션 중 한 명이다. 1983년 발매한 <浮遊空間(Fuyü-Kükan, 부유공간)>이 대표작으로, 80년대 버블경제가 한창이던 경제호황기의 일본의 네온사인 가득한 휘황찬란한 밤거리를 고스란히 연상시키는 화려한 사운드 편곡이 인상적인 수록곡들로 채워져 있다.

Tomoko Aran ‘I'm in Love’

그중에서도 ‘I'm in Love’는 시티팝뿐만이 아니라 일본식 펑크, 모던 소울 장르로 구별되기도 하며 반복적인 비트와 곡 전체적으로 두드러지는 베이스의 쓰임이 돋보이며, 세련된 메인 보컬 멜로디와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사용된 코러스의 사용, 매끄러운 재즈와 시원한 록이 효과적으로 섞인 듯한 후반부의 진행이 인상적인 곡이다.

Tomoko Aran ‘Midnight Pretenders’

또한 아란 토모코의 대표곡이기도 한 ‘Midnight Pretenders’는 “Everytime I wish that you would be mine(언제나 그대는 나만의 그대이기를)”이라는 가사를 반복적으로 읊조리며 감각적이고 도시적인 낭만성을 강화시킨다.

 

Mariya Takeuchi

타케우치 마리야(Mariya Takeuchi)는 1978년 게이오 대학 시절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 무렵 낸 싱글들로 인기를 끌었으나, 1981년 가수 겸 작곡가인 야마시타 타츠로와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면서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1984년 정규앨범<Variety>를 복귀작으로 발매하고, 그 이후 발매한 6개의 정규앨범이 모두 오리콘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이전보다 더욱 커다란 상업적인 성공을 이끌어낸다.

이 앨범에 수록된 ‘Plastic Love’는 현재까지도 손꼽히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대표곡으로 지금 시점에 들어도 무척이나 세련된 느낌이 드는 수작이다. 대중가요이면서도 7분 56초라는 노래 길이 역시도 파격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Plastic Love’의 가사는 사랑의 상처로 인해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의 삶을 지나치듯 살아가는 청춘을 그리면서 ‘즐기는 삶’을 추구하던 80년대 일본의 정서를 표현한다.

Mariya Takeuchi 'Plastic Love'


갑작스런 키스나 뜨거운 눈빛으로
사랑의 프로그램을 망치진 말아줘
만남과 이별. 깊게 빠졌다
시간이 되면 끝인 거야
Don't hurry!

사랑에 상처받았던 그 날부터 계속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이어가며
유행하는 디스코 춤으로 밝히는 동안
기억했던 마술이야 
I'm sorry!

- Mariya Takeuchi ‘Plastic Love’ 가사 중에서

타케우치 마리야와 야마시타 타츠로는 시티팝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뮤지션 커플로 꾸준한 공동작업뿐만 아니라 서로를 위해 만든 노래를 발표하는 등 금술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2014년 타케우치 마리야의 데뷔 35주년을 기념한 전국투어에서도 야마시타 타츠로가 백밴드로 함께 하기도 하였다.

Yamashita Tatsuro 'Your Eyes'

야마시타 타츠로가 타케우치 마리야를 위해 발표한 ‘Your Eyes’는 1982년작 <For You> 앨범에 수록한 곡으로 무척이나 재즈적이면서 로맨틱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곡이기도 하다.

 

MIharu Koshi

Miharu Koshi <おもちゃ箱 第一幕(장난감 상자 제1막)> Full Album

코시 미하루(Miharu Koshi)는 클래식 음악가 집안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발레를 배웠으며, 1979년 데뷔곡 ‘ラスト・ドライブ(Last Drive)’로 데뷔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후지TV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해, 초창기에는 아이돌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나 1979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おもちゃ箱 第一幕 (장난감 상자 제1막)>의 모든 노래들을 자작곡으로 채워 이미 본인의 실력을 입증했다. 덧붙여 류이치 사카모토, 야마시타 타츠로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이 앨범에 참여했다.

Miharu Koshi Live

초창기의 라이브에서 건반 두 대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모습과 연극적인 모습이 영미권의 뮤지션 토리 에이모스(Tori Amos)와 케이트 부쉬(Kate Bush)를 떠오르게 하여 흥미롭다.

Miharu Koshi <Tutu> Full Album

코시 미하루의 경력은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이자 베이시스트, 싱어송라이터 호소노 하루오미(Haruomi Hosono)를 만나면서 더욱 발전하고 확장된다. 코시 미하루가 1983년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 <Tutu>는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 Magic Orchestra)라는 1980년대 초 테크노와 뉴웨이브 장르의 세계적인 흐름을 담은 밴드로 활동했던 호소노 하루오미의 프로듀싱으로 댄서블한 느낌을 강조했다.

Miharu Koshi and Haruomi Hosono <Swing Slow> Full Album

뿐만 아니라 호소노 하루오미와 코시 미하루의 협업은 1990년대까지도 꾸준히 이어져서 1996년에는 <Swing Slow>라는 밝고 실험적인 사운드의 스윙 재즈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Miharu Koshi ‘Moonray’ Fan Made Music Video

코시 미하루는 2015년에도 <Moonray>라는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달빛의 광선’이라는 동명 타이틀곡의 제목에 어울리는 달콤한 목소리로 오래오래 잔상을 남긴다.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유유 인스타그램
유유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