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은 배우다. 연기 잘하는 배우, 욕심 많은 배우, 그걸 안 감추는 배우, 거친 자리를 굳이 짚은 후 마침내 딛고 일어서는 배우다. 배우 손예진이 그려온 궤적은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떠오르다

<연애소설>에서 손예진이 등장하는 신

2001년 드라마 <선희 진희> <맛있는 청혼>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손예진이 주목받은 건 영화 <연애소설>(2002)부터다. 당시 신인이던 손예진은 선배 배우 차태현, 이은주와 함께 주연을 맡아 영화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긴 생머리를 한 그가 흰 셔츠를 입고 꽃 향기를 맡으며 나타나는 장면은 ‘청순’의 대명사처럼 박제되었고, 그 후 손예진은 이에 걸맞은 역할을 이어나갔다.

<여름향기> 스틸컷

이후 손예진이 선택한 캐릭터는 이루기 힘든 사랑에 절절하게 아파하는 ‘주희’(<클래식>(2003)), 심장이 약한 플로리스트 ‘혜원’(<여름향기>(2003))이었다. 위 작품들로 강화되어가던 청순 이미지는 2004년 개봉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 이르러 정점을 찍는다. 눈물이 맺혀 붉어진 눈동자나 유약한 인상은 손예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이자 최적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듯했다.

<클래식> 스틸컷

 

뻗어나가다

그러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흥행으로 작품을 어느정도 재량껏 고르게 된 손예진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영화 <작업의 정석>(2005)을 차기작으로 선택한다. 그는 청순한 이미지의 틀에 갇히기보다는 다양한 캐릭터를 원한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손예진은 맘에 든 상대라면 유혹하고야 마는 캐릭터로 분해 도발적이며 코믹한 모습을 선보였다.

<작업의 정석> 스틸컷

2006년 방영한 드라마 <연애시대>를 통해 손예진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그가 맡은 ‘은호’는 아이를 잃고 이혼을 경험한 캐릭터였는데, 당시 스물다섯이던 손예진은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하며 보는 이의 공감을 끌어냈다. 이전까지 무수한 루머와 안티팬에 시달리던 그였으나, 이 작품 덕분에 ‘안티마저 팬이 되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무방비 도시> 스틸컷

손예진의 관심은 욕망에 솔직하고 의견을 피력할 줄 아는 당당한 캐릭터로 뻗어나간다. 그는 소매치기 조직의 보스(<무방비 도시>(2007))였고,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은 없다고 털어놓는 아내(<아내가 결혼했다>(2008))가 되었다. 또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며 진실을 좇는 딸(<공범>(2012))이자 해적 패거리의 두목(<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이기도 했다. 손예진은 또래 배우 중에 손꼽힐 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제 자리를 다졌다.

<아내가 결혼했다> 스틸컷

 

폭발시키다

2016년, 손예진은 자신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맞수와도 같은 작품을 만난다.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그는 딸의 실종을 추적하는 ‘연홍’으로 분해 국내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여성 캐릭터를 완성한다. 연홍은 자신을 옥죄어오는 진실 앞에 눈을 뒤집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도 모자라 상대방 얼굴에 침을 뱉어버린다.

<비밀은 없다> 스틸컷

<비밀은 없다>는 불편함과 거북함을 불러일으키게끔 직조된 영화다. 손예진은 그러한 의도와 흐름에 자신을 내맡긴 채 한국영화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캐릭터를 박아넣었다. 그는 이 영화로 춘사영화상, 부일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등 이름난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거머쥔다.

<덕혜옹주> 촬영장 스틸컷

특히 그는 영화계 내 여성의 입지에 대해서도 책임감과 사명감을 짊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덕혜옹주>(2016)를 찍을 때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고 전하기도 했다. <덕혜옹주> 개봉 당시 이 영화만 빼고 모두 소위 남자 영화였는데, 만약 자신의 영화가 실패하면 여성이 주연인 영화가 더 안 만들어질까봐 두려운 마음이었다고. 실제로 그는 작품을 이끄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나면 꼭 하고 싶고, 하려 하고, 잘해내려 한다고 자주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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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