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선반은 ‘잘 정돈된 전쟁터’다. 옷이나 가전제품 같은 여타의 생활 아이템에 비해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다양한 상품들이 그야말로 ‘일상적인’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반 한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제품의 로고들은 모두가 나름의 희로애락과 내공을 품고 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데엔 그럴만한 힘과 매력이 있다는 의미다. 항상 거기 있었기에 쉽게 잊고 사는 소비자들의 무관심과는 별개로.

 

1. 자세히 보면 달라 보인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순간만큼 강렬한 순간은, 익숙한 사물이 문득 달라 보이는 순간이다. 그 갑작스러운 설렘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익숙함조차 느끼지 못했던 브랜드의 ‘로고’라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우린 훅 하고 들어오는,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매력에 당황한다.

삼립 크림빵 ⓒSPC삼립

올해 나이 55살인 ‘삼립 크림빵’이 대표적이다. 크림빵은 크림 하나도 격한 즐거움이었던 1964년 출시 이후 차차 경제가 성장하고 소비자들의 입맛이 고급화되며 사라졌다가, 2002년 ‘추억’과 함께 부활하여 현재까지 약 16억 개 이상 팔린 슈퍼마켓의 스테디셀러다. 그래서인지 19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어느 정도 잘 먹고 자란’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는) 소비자들에겐 그 로고의 인상이 ‘크림’이란 것에 첫눈에 반한 부모세대만큼 강렬할 리 만무하다. 그저 익숙하고, 그래서 무감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크림빵 로고는 되레 ‘반가운 촌스러움’을 불러일으키며 긁지 않은 복권과 같은 매력을 뽐낸다.

크림빵 로고는 하얗다. 빵 속 버터크림 색깔 그대로다. 여기에, 세리프(Serif, 글씨에서 획의 시작이나 끝부분에 있는 작은 돌출선)가 크림을 짜면 봉긋하게 솟는 모양으로 디자인해 부드러운 식감을 강조한다. 게다가 ‘림’과 ‘빵’의 받침 ‘ㅁ’과 ‘ㅇ’을 옆으로 일렬 배치한 까닭에 발음마저 ‘크리-임빠-앙’이라 부드럽게 읽힌다. 딱 떨어지는 그리드와 대단히 큰 의미를 담지 않아 순간 ‘촌스럽다’ 치부할 수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특별해 보인다.

슈퍼마켓의 오래된 로고들 ⓒ오뚜기, 대상, 동서식품, 농심, 정식품, 롯데제과

혀끝으로 맛을 음미하며 미소 짓는 아이 얼굴을 표현한 일러스트가 조합된 ‘오뚜기’, 신선로 심벌로 우리네 식탁의 맛을 업그레이드한 ‘미원’, 커피 향을 피어오르는 연기의 움직임으로 상징화한 ‘맥심’, 새우 꼬리 모양을 닮은 세리프의 ‘새우깡’, 한자 ‘새로울 신’은 몰라도 ‘매울 신’은 전 국민이 알게 한 ‘신라면’, 콩 알갱이가 동그랗게 둘러싼 듯한 ‘베지밀’, 스페인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가 디자인하고 로고를 사탕 윗부분에 배치하라 권했다는 ‘츄파춥스’, 해수면 위로 솟아오른 공포의 죠스 지느러미를 닮은 ‘죠스바’ 등 수많은 오랜 로고들이 ‘크림빵’의 그것처럼 ‘반가운 촌스러움’으로 그동안 놓쳐왔던 매력을 전한다.

이렇듯 일상 속에서 우리 곁을 오랜 시간 지켜온 슈퍼마켓 로고들은, 브랜드의 얼굴로서 요구되는 디자인적 가치, 다양한 세대 간의 공감, 지속 가능한 정체성, 시대를 관통하며 제품과 소비자 간의 추억 등을 모두 아우르는 일종의 ‘일상 문화유산’이 되었다.

 

2. 슈퍼마켓에도 ‘뉴트로’ 바람은 분다

한편, 슈퍼마켓의 오래된 로고들은 최근 우리 문화 깊숙이 파고든 ‘뉴트로’ 바람을 타고 재생산되기도 한다. 곁에 계속 머물러온 로고들과 한때 사라졌으나 부활한 로고들이 함께 트렌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매체에 따르면, 뉴트로를 경험할 때 50대는 ‘향수’, ‘그리움’, 3, 40대는 ‘운치’, ‘친근’, 20대는 ‘신기함’, ‘모던’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린다고 한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20대가 뉴트로를 ‘모던’한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인데, 이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가 그들에겐 새롭고 모던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뉴트로(New+Retro) 콘셉트의 로고&패키지들 ⓒ 삼양, 롯데제과, 해태제과, 펩시콜라

슈퍼마켓도 마찬가지다. 예전 로고와 패키지 컨셉을 따르되, 정제된 디자인으로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는 라면땅 과자 ‘별뽀빠이’, 90년대에 ‘초딩’이었다면, 또는 ‘초딩’ 입맛을 가졌었다면 반가워할 ‘화이트 치토스’, 출시 당시 큰 인기를 얻었으나 단종됐다가 팬들의 요청으로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돌아온 ‘토마토마’, 125주년을 기념하여 1940~90년대의 디자인으로 리턴한 ‘레트로 펩시’ 등도 하드웨어인 로고와 패키지는 예전 모습을 상기시키되, 소프트웨어인 내용물은 요즘 소비자들의 소구에 맞춰 균형을 잡으며 돌아온 케이스다.

 

3. 오래된 로고들이 주는 선물

물론 오래되어서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래된 것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빵도 뻑뻑하고 크림도 적지만 ‘삼립 크림빵’이 스테디셀러가 된 데에는 ‘추억’의 힘이 크다. 대부분의 회사 탕비실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맥심’은 회사원들에게 일상의 소확행 같은 존재가 된다. 슈퍼마켓에서 집어먹기도 힘든 라면 부스러기와 설탕 덩어리 별 사탕이 든 ‘뽀빠이’ 과자를 발견하고 아이보다 좋아하는 부모는 잠시 순수함이라는 감성을 되찾는다.

이렇듯 항상 그 자리에 있어 무심했던 슈퍼마켓의 오래된 로고들은 퍽퍽한 일상에 잠시나마 추억과 감성을 선물한다. 달라 보여서, 참 반갑다.

 

(참고문서- http://news.joins.com/article/22671234)

 

 

Writer

자기 역할을 다 할 줄 아는 디자인, 이야기를 품은 브랜드, 몰랐던 세상을 열어주는 다큐멘터리, 소소한 일상을 담은 드라마, 먹지 않아도 기분 좋은 푸드 컨텐츠, 조용한 평일 오후의 책방을 좋아하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언어로 나누고 싶은 ‘나 혼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