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늘 그렇듯 저마다 일년의 계획을 짜겠지. (그리고 곧 잊겠지.) 계획한 일들을 실행하면서 한두 달 지내다 서너 달쯤 되면 느슨해지고, 어느 순간 목표와 멀어졌음을 깨닫고는 ‘에라 모르겠다’ 해버리면 또 어떤가. 사실은 다들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하지만 한 해가 저물 즈음,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보다 음악적으로 훨씬 풍부한 지식과 취향을 가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책들과 함께 해보자.

(음악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혹은 지나치게 한 장르의 음악만 들어온, 혹은 길고 어려운 글을 읽는 일이 힘겨운 음악 도서 입문자를 기준으로 책을 선정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더 클래식 시리즈>

문학수 지음 ❙ 돌베개 ❙ 2014.5~2016.7

‘클래식(Classic)’이라는 장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 이제 클래식을 들어보자. 베토벤의 합창곡부터 제대로 들어보는 거야!’ 하고 레코드 가게에 갔다 한들, 수백 년 동안 연주해온 연주가들은 왜 그렇게 많으며 지휘자도 다 다르니 그 많은 버전 중에 어떤 버전을 선택해야 하는지 몰라 빈손으로 돌아오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런 난감함을 떨쳐버릴 수 있다. 

클래식을 잘 아는 친절한 친구가 정중하고 친절하게, 포근한 느낌으로 말을 거는 듯한 이 책은 총 세 권이다. 시대별로 음악가를 분류해 놓았으나 저자의 말처럼 어떤 페이지를 먼저 읽던 크게 상관은 없다. 필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1. 책의 중간중간 있는 추천 앨범 리스트 중 몇 개의 앨범들을 일단 듣는다.

2. 자신의 귀에 가장 잘 들리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는 챕터부터 읽는다.

3. 이런 식으로 반복하며 책 속에 나오는 모든 챕터의 음악들을 귀로, 가슴으로, 머리로 한바탕 느낀다.

4. 다시 책의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 시대별로 이해한다.

그럼 당신은 올해의 마지막 날에, 어떤 클래식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뿐 아니라 왜 그 곡을 좋아하며 그 곡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음악가의 사연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잘난 체하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장점! 친절하고 따뜻한데 박식하기까지 한 클래식 선생님을 만난 기분.

 

<더 랩(힙합의 시대, 더 랩)>

시어세라노 지음 ❙ 아트로 토레스 그림 ❙ 김봉현 옮김 ❙ 윌북 ❙ 2015.6

근래에 ‘힙합’이란 단어가 음악 차트나 예능 프로를 비롯한 여기저기에서 가장 바쁘게 두문불출하며 주류 문화로 입지를 굳건히 했다. 힙합은 다른 장르보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장르다. 하지만 그 태생이 거친 만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많다. 이 책은 1979년부터 2014년까지 힙합이 한 살 한 살 성장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곡, 단순히 인기가 많았던 곡뿐만 아니라 음악의 흐름을 바꾸거나 새로운 요소를 선보인 곡들을 선정해 스타일맵(각 곡의 특정 부분을 시각화 한 것)과 함께 실었다. 자연스레 힙합의 역사와 뮤지션들의 삶도 들여다보게 된다.

또 한가지 특징은, 저자가 선정한 곡에 대한 다른 전문가들의 반론을 함께 실었다는 것. 음악에 답이 없듯 취향에도 답이 없다. 역사적인 평가가 한쪽으로 기울어도 내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반론을 함께 실어 독자에게 ‘내 말이 다 맞아. 이 곡이 명곡이야’라고 주입하기보다는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만,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이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너무 장황하지 않고 핵심만 짚은 주석과 각 챕터 마지막에 실린 각종 정보들(한 곡에 욕이 나온 횟수, 사이 안 좋은 래퍼들, 힙합에서 자주 쓰이는 은어, 래퍼들의 어록 같은)도 흥미와 함께 힙합 지식의 저변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준다.

영상은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튼> 중 한 장면이다. 1980년대 말, 갱스터 랩의 위용을 미국 전역에 전파한 그룹 N.W.A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책을 읽고 이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힙합을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장점! 각 챕터에 선정된 곡들에 대한 반론을 실어 ‘내 말이 정답이다'를 경계한다. 

 

<대중 음악 히치하이킹하기>

권석정, 백병철, 서정민갑, 김상원, 이수정 지음 ❙ 탐 ❙ 2015.8

책에 언급한 장르의 다양성과 익숙함으로 보나, 삽화를 많이 삽입한 형식으로 보나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고로, 음악을 이제 좀 다양하게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입문자가 대중음악을 개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각 장르의 전문성을 가진 다섯 명의 저자들이 장르의 탄생 배경과 대표곡들을 소개한다. 제목에서 보이듯 ‘대중음악’의 흐름에 굵은 줄을 쳐온 장르에 초점을 맞춰 ‘대중'에게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쓴 책이다.

위 영상은 blind Willie Johnson의 ‘dark was the night’(1927)다. 예컨대 책은 ‘블루스는 왜 대중음악의 뿌리라고 일컬어지고, 초기 블루스맨들은 왜 이름 앞에 blind를 붙였을까?’ 같은 사소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곡마다 QR코드를 삽입해 내용을 읽는 즉시 음악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각 장르의 국내 음악도 함께 소개한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노래들이 음악사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했는지를 읽은 후 들어보면 확실히 새로운 음악으로 들릴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장점! 대략적인 각 장르의 역사를 알고는 싶지만 긴 글은 두려운 입문자에게 딱!

 

<라틴 소울>

박창학 ❙ 박다출판사 ❙ 2009.3

브라질=삼바, 보사노바. 아르헨티나=탱고, 피아졸라. 쿠바=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음악 입문자라면 라틴 음악에 대한 이미지를 아마도 이렇게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르헨티나라고 록밴드가 없을까? 브라질의 일렉트로닉 음악은 어떨까? 쿠바 음악에는 어떤 장르가 있지?

이 책은 먼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 국가의 대표 음악과 뮤지션들에 대해 깊이 있게 소개한다. 이어서 익숙하긴 하지만 정확히는 알지는 못했던 것들 -이를테면 반도네온과 아코디언의 구분법, 100장이 넘는 피아졸라의 앨범 중 오리지널반을 골라내는 법 등- 을 비롯해 장르 혹은 음악가에 대한 역사적, 개인적 배경들을 소개할 뿐 아니라 우리의 편견 너머의 다른 장르들도 언급하고 있다.

각 챕터마다 다양한 앨범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언어적 한계로 쉽게 와 닿지 않았던 그들의 노랫말도 차분히 만나볼 수 있다. 쿠바인들에게 국민적 사랑을 받는 ‘차차차’의 창시자 엔리케 호린(Enrique Jorrin)의 ‘Vereda Tropical’을 들어보자.

이 책의 핵심 장점! 앨범 가이드만 훑어 읽어도 당신의 플레이 리스트가 풍성해질 것.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 - 악기와 편성>

황덕호 지음 ❙ 포노출판사 ❙ 2012.11

재즈를 한 번도 안 들은 사람은 없지만, 재즈를 제대로 들은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생활 속에 널리 자리하고 있지만 제대로 들어보려 해도 다 비슷하게 들리거나 제대로 들어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재즈가 마음에 스며들었던 순간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어지러운 재즈의 세계를 질서 정연하게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철저히 ‘들으며 읽기에 적합한 책’이기 때문이다. 증거는 다음과 같다.

- 숱한 명반 중 독자들이 음반 가게에서 구하기 쉬운 음반 위주로 12장을 선정했다.

- 실제 음반에 들어있는 라이너 노트(음반 해설지)를 그대로 만날 수 있다.

- 연주의 흐름에 따라 악기와 편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각 음반의 악기와 편성에 주력했지만 재즈의 역사와 뮤지션들의 삶도 유기적으로 배어 나온다. 때문에 앞서 소개한 책들과는 달리 가급적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하며 긴 호흡을 가지고 한 달에 한 챕터씩 음악과 함께 들으며 읽어도 좋은 1년짜리 책이다.

이 책의 핵심 장점! 각 앨범 소개는 물론 라이너 노트까지 함께 실려 음반을 통째로 만나는 느낌.

 

장르별 입문자가 편하게 읽을 책들을 소개했지만 사실 음악을 듣는 데에 있어 장르의 구분에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내 귀에 재즈면 재즈이고 블루스면 블루스인 것이다. 위 책의 저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책을 읽는 것보다 음악을 듣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장르의 구분이나 기술적인 지식 이전에 음악을 듣고 느끼는 것이 궁극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음악을 듣다 보면 분명 이 음악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났고 어떤 형식을 가졌는지가 궁금한 순간이 온다. 감히 장담하건대, 그런 순간에 위의 책들을 읽어본다면 음악이 분명히 다르게 들릴 것이고 그래서 음악에 더 깊이 빠질 것이며 그리하여 당신의 음악 세계는 확장될 것이다.

Writer

오래된 정경들이 넘치는 동네에서 작은 음악 서점인 ‘초원서점’을 운영한다. 방송작가, 스크립터, 콘텐츠 기획 등을 거쳐 공연 카페에 오래 머물렀다. 올해 5월 연 초원서점에서 음악과 닿아 있는 서적들을 판매하며 책, 음악과 관련한 행사들을 기획, 진행한다. 가사가 아름다운 한국 음악들을 특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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