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스 데이비스는 전성기 시절 두 명의 정상급 신예 색소포니스트를 발탁했다. 바로 테너의 존 콜트레인과 알토의 캐논볼 애덜리인데, 두 사람의 정반대 성격은 연주 스타일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심각한 콜트레인, 즐거운 애덜리(Serious Coltrane, Jubilant Adderley)”라는 기사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콜트레인의 음악은 갈수록 무거운 프리재즈로 변해갔지만 애덜리의 음악은 흥겨운 소울 재즈를 추구했다.

명반 <Kind of Blue>(1958) 녹음 당시의 데이비스, 애덜리, 콜트레인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록과 소울, 그리고 디스코의 열풍이 거세지며 빌보드 핫 100차트에서 재즈 음악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캐논볼 애덜리의 음악은 재즈와 팝 차트를 동시에 오르면서 팝 스타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렸다. 올해로 탄생 90주년을 맞은 그의 생애를 더듬어 보았다.

 

그의 별명 캐논볼에 얽힌 비화

그의 음반에는 줄리앙(Julian)이라는 본명보다 대포알이라는 의미의 별명 ‘Cannonball’로 표기되어 있다. 우람한 체격과 끝을 모르는 식성으로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이 식인종이란 의미의 ‘Cannibal’이란 별명을 붙였다. 하지만 단어의 어감이 좋지 않아 ‘Cannonball’이라 살짝 바꾸면서 평생 그를 따라다닌 예명이 되었다. 빠른 곡은 찰리 파커, 발라드곡은 베니 카터의 영향을 받으며, 고향 플로리다에서 10대 시절부터 최고의 알토 색소포니스트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Mercy, Mercy, Mercy’(1966). 그의 피아니스트 조 자비눌 작곡으로 빌보드 소울 차트 2위, 빌보드 핫100 차트 11위에 오른 최고 히트곡이다

 

‘도장 깨기’로 뉴욕의 재즈 스타로 등장하다

고향 플로리다에서 고등학교 밴드 교사를 하던 그는 스물일곱이던 1955년 처음으로 뉴욕을 방문했다. 지방의 무술 고수가 ‘도장 깨기’를 하듯 뉴욕의 재즈 클럽들을 차례로 방문했다. 마침 카페 보헤미아(Café Bohemia)에서 연주 중이던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 콤보의 색소포니스트가 도착하지 않자, 캐논볼은 그가 올 때까지 색소폰 자리를 메꾸겠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남부의 ‘얼뜨기’를 혼내주기 위해 콤보는 ‘I’ll Remember April’을 빠른 템포로 연주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솔로 파트를 멋지게 즉흥적으로 연주해냈다. 다음 날 뉴욕의 재즈 신에서 그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며, 일주일 내에 엠알씨(EmArcy) 레코드와 계약하고 한 달 내 데뷔 음반의 녹음을 하는 등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재즈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캐논볼 애덜리의 히트곡 'Work Song'(1976). 코넷을 연주하는 친동생 냇 애덜리(Nat Adderley) 작곡이다.

 

마일스를 사이드맨으로, 명반 <Somethin’ Else>

찰리 파커 사망 후 최정상의 재즈 거물이 된 마일스 데이비스가 사이드맨으로 참여한 음반은 찾기 어렵다. 블루노트에서 발매한 <Somethin’ Else>(1958)는 이색적으로 캐논볼의 음반에 사이드맨으로 이름을 올린 마일스의 솔로를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된 배경에 여러 설이 있으나, 자신의 콤보를 해체하면서까지 마일스 콤보에 합류한 캐논볼에 대한 마일스의 배려라고 알려진다. 이 음반은 펭귄북스의 ‘Core Collection’에 속하는 명반이며, 이듬해 불세출의 명반 <Kind of Blue>로 이어지는 전주곡이라 할 만하다. 이 음반의 네 번째 트랙 ‘One for Daddy-O’이 끝날 무렵 마일스의 육성이 편집되지 않고 재즈의 역사로 남았다. “Is that what you want, Alfred?” 여기서 알프레드는 블루노트의 창업자이자 프로듀서, 알프레드 라이언을 지칭한다.

음반 <Something Else>의 ‘One for Daddy-O’. 마지막에 프로듀서의 의견을 구하는 마일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전성기를 구가한 캐논볼 애덜리 섹스텟

마일스의 퀸텟에서 나온 캐논볼은, 코넷 연주자인 동생 냇(Nat)과 함께 자신의 6인조 밴드를 구성한다. 캐논볼 애덜리 섹스텟(The Cannonball Adderley Sextet)은 찰스 로이드, 조 자비눌, 보비 티먼스, 루이스 헤이즈와 같은 젊은 뮤지션들을 영입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This Here’, ‘Mercy, Mercy, Mercy’, ‘The Jive Samba’, ‘Work Song’과 같은 히트곡으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며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빌 에반스와 함께 한 음반 <Know What I Mean>(1961)에 수록한 ‘Waltz for Debby’


그는 한창 일할 나이인 47세에 갑자기 찾아온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그로부터 일주일 후 정상의 인기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애덜리의 빠른 템포의 새로운 재즈 음악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세대는 그로부터 십 년 후 힙합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다. 캐논볼 애덜리가 남겨놓은 음악적 유산은 힙합 장르에서 광범위하게 샘플링되었고, 평론가들은 그를 재즈와 힙합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2013년에 간행된 그의 일대기 <Wall Tall: The Music and Life of Julian “Cannonball” Adderley> 홍보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