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만지>(1995), <폴라 익스프레스>(2004), <자투라: 스페이스 어드벤처>(2005).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 영화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미국의 그림책 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Chris Van Allsburg)의 작품을 바탕으로 탄생했다는 것. 어딘가 미스터리한 매력으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준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림책 <자투라>
<Dalmatian 1>
그림책 <쥬만지>

때때로 인생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림책 작가가 된 것에 가장 놀란 사람은 어쩌면 알스버그 본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 수업이라곤 받아본 적도 없는 그는 오히려 이과 계열 과목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이었다. 그랬던 그가 입학사정관과의 인터뷰에서 다소 즉흥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였던 노먼 록웰에 대한 질문에 대답했다가 호감을 산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그렇게 조각 미술을 전공한 그는 낮에는 조각을,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의 길을 걸었지만 그림책과는 아무 연관도 없었다. 아내 리사 모리슨이 그의 드로잉을 편집자에게 직접 보여주기까지 전까지는. 그때부터 알스버그는 직접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첫 번째 그림책으로 칼데콧 상을 거머쥐게 된다. 수많은 작가와 영화감독들에게 영감을 준 아티스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린든 씨의 도서관>, “린든 씨는 그 책에 대해 경고했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일곱 개의 의자>, “다섯 번째 의자는 그렇게 프랑스로 가 버렸다.”
<양탄자 밑에서>, “2주일이 흐른 뒤 그 일은 또 일어났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로 알려진 14편의 그림들이다. 1983년의 어느 날, 어린이책 편집자 피터 웬더슨에게 한 남성이 찾아와 자신의 그림을 출판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한두 줄의 짧은 문장을 곁들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들에 웬더슨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는 다음 날 나머지를 마저 가져오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뒤로 그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두고 간 그림들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친구인 피터 웬더슨의 집에 방문한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서랍 속에서 먼지 쌓인 그림들을 발견한다.

<보이 원더>, “아주 작은 목소리가 물었다. 얘가 걔야?”
<메이플 거리의 집>, “그야말로 완벽한 공중부양이었다.”

영원히 그 내용을 알 수 없게 된 그림들에 매료된 알스버그는 이를 한 권의 그림책으로 엮어냈고, 잊힐 뻔했던 그림들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제목을 보고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름까지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주인 해리스 버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만, 대신 전 세계 예술가들과 미스터리 애호가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지난 2011년에는 스티븐 킹을 비롯한 열네 명의 작가들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입고 <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라는 단편소설집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그림책 <빗자루의 보은>
그림책 <쥬만지>

사실적인 그림체와 흑백 모노톤으로 표현된 알스버그의 일러스트는 어딘가 서늘한 분위기를 풍긴다. 영화감독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인 상상력은 그런 일러스트와 버무려져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가 된다. 다락방에서 찾아낸 오래된 보드게임에서는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사자와 코뿔소와 원숭이들이 튀어나오고, 때로는 집이 통째로 우주 한가운데 던져지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이브 밤에는 북극행 열차가 전 세계 아이들을 태운 채 눈 내리는 하늘을 가로지르고, 마녀가 두고 간 빗자루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온갖 궂은일을 해치운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무화과에는 꿈의 내용을 현실화하는 마법이 걸려 있다
이미지 출처 ‘nouvellegamine’

그의 작품이 더 매력적인 건 언제나 반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에서 욕심 많고 까칠한 치과의사 비보 씨는 허름한 노인을 치료해주고 진료비 대신 ‘마법의 무화과’ 세 개를 받는다. 잔뜩 화가 난 그는 노인을 쫓아버리지만, 노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무화과를 먹고 잠들면 그날 밤 꿈의 내용대로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부자가 되는 꿈을 꾸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하지만 정작 마지막 무화과를 먹어버린 건 비보 씨가 아니라 그가 키우던 강아지 마르셀. 다음날 아침 비보 씨는 마르셀 대신 침대 밑에서 눈을 뜨고, 그의 눈앞에는 산책용 목줄을 든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엄청나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 건 아니지만 잠에서 깨어나 지난밤의 꿈을 곰곰 더듬어볼 때처럼 생각에 잠기게 만들고, 곧 숨이 턱 막히는 공포에 젖어 들게 하는 것. 그것이 알스버그 표 반전이다.

그림책 <폴라 익스프레스>
그의 첫 번째 그림책 <압둘 가사지의 정원>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이웃집 정원에 들어갔다가 강아지를 돌멩이로 바꿔버리는 마법사를 마주친 것이나 북극 마을에서 산타와 요정들을 만나고 온 것이 진짜였는지 꿈이었는지, 마술쇼를 보고 엉성하게 따라 만든 최면 기구가 정말로 동생에게 최면을 걸었는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열린 결말이라 볼 수도 있는 이러한 마무리는 소매 한쪽에 삐죽 튀어나온 실오라기를 붙잡고 돌돌 풀어나갈 때처럼 자꾸만 새로운 상상을 끄집어내게 한다. 그렇기에 알스버그의 이야기는 책장을 덮어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Man in Tornado>

어딘가 서늘하지만 분명 매력적인 상상으로 가득한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세계를 기웃거리다 보면, 그가 정말 우리와 같은 세상에서 같은 풍경을 보며 살아가는 것이 맞기는 할까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그저 찬찬히 살펴볼 여유가 없어 모르고 지나치는 것일 뿐, 이 모든 일들이 정말로 세상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곳곳에 숨어 있을 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직접 찾아내기엔 너무 바쁜 우리들,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 반갑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 공식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크리스 반 알스버그, <Jumanji>(1981) 삽화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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