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되어버렸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고, 당장 내일이라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책임감이라는 굴레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기에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는다. 타인의 헤비한 부분에 함부로 개입하지는 않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은 점점 늘어나서 전에는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타인의 말들을 자연스레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문득 지금의 나 자신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찾아올 때면, 서툴고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스스로를 떠올리게 된다. ‘그립다’고 가벼이 말하기에 쉽지만은 않았던 시절. 모든 것이 불안하고, 서툴고, 무겁게 다가왔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순수함이 그리운 그 순간,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춘기 인물들의 초상 사진을 통해 담담한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헬렌 반 미네의 사진을 만나보자.


"처음에는 남자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시작했는데, 나 자신이 그런 일에 준비가 되었는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중략) 제가 모델들에게 항상 지시를 하긴 하지만 사진마다 모델들의 개성을 넣도록 하죠. 제 머릿속에는 이미 생각해두었던 아이디어들이 있지만 그때그때 일어나는 상황에 새로운 것을 접목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를 하고 있죠. 모델이 설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저는 꼼꼼하게 준비, 진행하고 모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저 자신에게 말합니다. 더군다나 모델들이 프로가 아닌 상황에서는 더욱 더요. 그들에게 항상 평범하지 않은 것을 요구하지만, 항상 저를 완전히 신뢰해요."


네덜란드 출신의 헬렌 반 미네(Hellen Van Meene, 1972~)는 주로 사춘기 무렵인 소년, 소녀들의 인물 사진 작업으로 1990년대 중반 무렵 처음 주목받게 된 사진작가이다. 사진 속 대상들이 가진 미숙하고 서툰 면모와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도발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듯한 상반된 측면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작가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한 아마추어 모델들이 대다수이며, 이는 그가 처음 카메라를 잡은 15세부터 주변 친구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16세 사이 동안의 경험과도 연관이 있다.


헬렌 반 미네의 사진들은 주로 6X6사이즈, 정사각형 포맷의 사진들이 많으며, 미색 계통의 부드러운 색채의 옷들과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모호해 보이는 각 사진 속 인물들의 포즈, 의복, 및 위치를 본인이 직접 신중하게 선택한다.


이러한 그의 사진들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베르메르(Vermeer)와 같은 17세기에 유행한 네덜란드 풍속화 작가들의 그림과도 유사한 형식성을 지닌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구성된 배경 속에 아름다운 자연광이 스며들고, 제각각의 고유한 개성들이 존재하는 인물들은 사진 속에 영원히 존재할 듯 보인다.


한편 헬렌 반 미네의 사진들은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사진들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이 공통으로 ‘여성’의 인물 사진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신디 셔먼의 경우에는 자신의 자화상(Self Portrait) 작업을 통해서, 헬렌 반 미네는 다른 아마추어 모델들을 통해 작업을 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둘 다 평범한 듯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하고 아이러니한 인물 사진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엿보인다.

<Teen Mothers> Series


헬렌 반 미네의 대부분의 사진 제목은 ‘Untitled’로 명시되어있지만, 계속해서 꾸준히 포착하고 있는 십 대 소년, 소녀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2004년에서 2005년 무렵 진행한 십 대 엄마들(Teen Mothers), 동물과 인물이 함께 한 연작 등 주제적인 측면에서 일관된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사진 속 불안한 인물들의 눈빛은 ‘당신 혼자만이 외롭고 불안한 것이 아니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해 역설적인 위로를 안긴다.


헬렌 반 미네 홈페이지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유유 인스타그램
유유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