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봄이 지나고 있다. 새하얀 목련, 노오란 개나리, 창백한 분홍빛의 벚꽃, 무수한 색채의 향연을 펼치던 봄꽃들이 거의 다 져버렸다. 초여름을 맞이하며 초록빛 잎사귀들이 움트고 있는 5월이지만, 봄의 어떤 꽃들보다도 진하고 매혹적인 향기를 내뿜는 보랏빛 라일락이 아직 봄의 끝물을 장식하고 있다. 예로부터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색이니만큼 보라색은 그 자체로 다른 색들과는 차별되어온 귀한 색이기도 했다. 그러한 보랏빛 꽃을 닮아 매혹적인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음악들을 만나보자.

 

Cocteau Twins

1979년부터 1997년에 걸쳐 활동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밴드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는 기타와 전반적인 사운드 프로세싱을 담당한 로빈 거스리(Robin Guthrie), 초기의 베이시스트였던 윌 헤기(Will Heggie)를 거쳐 후기 멤버로 참여한 사이먼 레이몬드(Simon Raymonde), 이 세상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천상의(Ethereal) 보이스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보컬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 세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있으며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짙은 보랏빛의 아우라를 소유한 팀이다.

초창기의 거칠고 펑크적인 사운드를 거쳐 활동하면 할수록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사운드를 추구하게 된 콕토 트윈스는 현재의 ‘드림 팝’ 혹은 ‘슈게이징’의 창시자 격으로 꼽힐 만큼 중요한 팀이기도 하다. 이들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언급되는 팀만 해도 줄리 크루즈(Julee Cruise), 슬로우다이브(Slowdive), 메지 스타(Mazzy Star) 등 셀 수 없이 많다.

Cocteau Twins ‘Iceblink Luck’ MV

이러한 콕토 트윈스의 중요한 음악적 성취는 밴드 자체의 역량뿐만 아니라 영국의 전설적인 인디 레이블인 4AD의 조력 덕분이기도 했는데, 한편으로 4AD 역시도 콕토 트윈스를 대표 뮤지션으로 내세우며 발전하게 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Cocteau Twins ‘Pur’

이 글에서는 콕토 트윈스의 대표 앨범인 <Heaven of Las Vegas>(1990)에 수록한 ‘Iceblink Luck’와 메이저 레이블인 ‘Fontana Records’로 이적하여 발매한 7번째 스튜디오 정규앨범 <Four-Calendar Café>(1993)의 마지막 수록곡 ‘Pur’를 소개해보았는데, 특히 어떠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지는 듯한 아름다운 넘버 ‘Pur’는 엘리자베스 프레이저가 자신의 딸을 위해 쓴 가사가 담겨있기도 하다고 하니, 따뜻함 역시도 느껴진다.

Massive Attack ‘Teardrop’ MV


콕토 트윈스 활동 이후에도 밴드의 멤버들은 각자 개인 활동을 통해 음악계에 인상 깊은 족적을 남겨왔는데, 특히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1993년 작 <Mezzanine>에 송라이팅과 보컬로 참여한 엘리자베스 프레이저는 명곡 ‘Teardrop’ 한때 자신의 연인이기도 했던 요절한 천재 뮤지션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만들고 부른 곡이라고 언급했다.

Robin Guthrie & Harold Budd ‘Mysterious Skin’ Soundtrack

한편, 밴드의 리더였던 로빈 거스리는 밴드 해산 이후 그가 설립한 ‘Bella Union Records’를 통해 활동하며 2004년에는 일찍이 콕토 트윈스와도 협업했던 미국의 엠비언트 작곡가 해롤드 버드(Harold Budd)와 함께 그렉 아라키 감독의 영화 <미스테리어스 스킨>(2004)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인상적인 협업을 선보였다.

 

Still Corners

스틸 코너스(Still Corners)는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2인조 밴드로 보컬 테사 머레이(Tessa Murray)와 작곡과 프로듀서를 맡은 그렉 휴지스(Greg Hughes)로 구성되었으며, 2008년 자체 제작한 데뷔 EP를 통해 데뷔하였다. 2012년 발매한 싱글 <Fireflies>는 피치 포크에서 ‘Best New Track’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Still Corners ‘Fireflies’ MV

2013년 발매한 두 번째 정규앨범 <Strange Pleasures>에 수록한 ‘The Trip’은 밴드의 대표곡으로 앞서 소개한 콕토 트윈스의 ‘드림 팝’ 장르의 명맥을 잇고 있다. 동시에 보컬 테사 머레이의 목소리 역시 엘리자베스 프레이저 이후 이어진 청량한 목소리의 여성 보컬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The Trip’의 가사는 제목 그대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노래를 듣는 이들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는 순간의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Still Corners ‘The Trip’

시간은 가기 위해 와
짐을 싸고 길을 떠나
우리의 심장은 죽지 않을 거야
우릴 살아 있게 하는 건 아주 먼 거리를 떠나는 여행이니까

- Still Corners ‘The Trip’ 가사 중에서

 

L'Impératrice

프랑스어로 ‘황후’, 또는 ‘여제’를 의미하는 렝페라트리스(L'Impératrice)는 2012년에 데뷔한,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렉트로니카, 신스팝, 프렌치 팝 장르의 혼성 6인조 밴드다. 2012부터 2015년까지 3장의 EP를 발매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였으며, 2016년에는 데뷔 앨범 <MATAHARI>를 발매했다. 밴드는 1970~80년대 유행한 디스코, 펑크 사운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러한 영향을 현재의 감각에 맞게 적절히 풀어낸다.

렝페라트리스는 흥미로운 뮤직비디오 작업들로도 관심을 끄는데, 가장 최근에 발매한 ‘Paris’ 뮤직비디오에서는 <펄프 픽션>(1994) 등 고전 영화의 패러디와 변주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화려한 꿈의 세계를 동경하는 배우지망생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L'Impératrice ‘Paris’ MV

바다와 우주의 풍경을 양쪽으로 갈라놓은 듯한 커버 디자인이 인상적인 EP <Sonata Pacifique>(2014)의 동명 타이틀곡 ‘Sonate Pacifique’는 ‘평화로운 소나타(Peaceful Sonata)’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로 시작해 댄서블한 사운드를 점층적으로 쌓아나간다. 지나가는 올해의 봄에 안녕을 고하고 초여름 밤의 공기를 끌어오는 듯한 매혹적인 음률에 취하며,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를 맞이해보자.

L'Impératrice ‘Sonate Pacifique’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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