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은 이제껏 예술로서 적극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은 두터운 마니아층을 가지는 동시에 대중에게도 통하는 장르, 그런데도 애니메이션은 주류이기보다는 서브 컬처로 인식되어 왔다.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플립북(Flip Book): 21세기 애니메이션의 혁명>(이하 <플립북>) 展은 예술로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안네 마그누슨, <75개의 언어를 하는 남자>, 2016, animated documentary, 65분

빠르게 넘기면 그림이 움직이는 것 같은 종이 묶음을 뜻하는 ‘플립북(Flip Book)’이라는 단어를 전시 이름으로 선정한 데서 느껴지듯, 이 전시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작품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플립북> 전은 크게 본편(Main)과 번외편(Special) 섹션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시선으로 애니메이션을 들여다보게 한다.

 

 

1. 본편 <동화제작소(動畵製作所)>

본편 <동화제작소>는 거장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그들의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제목의 ‘동화(動畵)’라는 말은 애니메이션 용어로, 그림체 자체를 뜻하는 ‘작화(作畵)’와 달리 움직임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의미다. 각 프레임 사이 사이에 들어가 움직임을 매끄럽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동화라 하는데, 이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카트린 로테, <1917, 붉은 시월>, 2017, 90분
사와코 가부키, <마스터 블라스터>, 2015, 애니메이션, 4분

이 섹션에서는 전통적인 2D 드로잉부터 페이퍼 컷아웃, 스톱모션, CG로 합성한 3D에 이르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노르웨이 영화감독 안네 마그누센의 <75개의 언어를 하는 남자>(2016, 65분), 독일 영화감독 카트린 로테의 <1917, 붉은 시월>(2017, 90분)은 모두 실존했던 인물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것은 단순히 실존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새로운 장르인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성강, <마리 이야기>, 2001, 애니메이션 영화, 80분
오성윤, <언더독>, 2018 (8월 개봉예정), 캐릭터 비례표

한국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성강, 오성윤 감독의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마리이야기>(2002, 86분)로 지난해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대상을 거머쥔 이성강 감독과 <마당을 나온 암탉>(2011, 97분)과 개봉을 앞둔 <언더독>(2018)으로 주목받는 오성윤 감독의 작업들을 찬찬히 짚어보자.

제작 ‘툰봐(Toonbwa)’, <정령왕 엘퀴네스>, 2018

<플립북> 전시 개요가 공개되었을 당시, 마니아들의 열광을 불러온 작품이 있다. 2004년 작가 이환이 쓴 인터넷 소설로 처음 등장한 후 종이책과 웹툰, 웹 애니메이션으로 진화해온 <정령왕 엘퀴네스>가 바로 그것. 이번 전시를 통해 소설에서 웹툰으로 진화했던 <정령왕 엘퀴네스>가 또 한 번 ‘웹 애니메이션’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확인하자.

 

 

2. 번외편 <#해저여행기담_상태 업데이트>

번외 섹션의 기획은 매우 흥미롭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는 한국에 처음 들어온 SF 소설로, 1907년 당시 일본에서 유학하던 한인 학생들이 ‘해저여행기담’이라는 제목으로 직접 번역하여 <태극학보>에 연재했다. 이렇게 들어온 <해저여행기담>은 번역물이라기보다 번안물에 가까웠다. 조국의 근대화와 계몽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학생들이 원래 내용을 수정하거나 첨삭했기 때문.
이번 전시에서는 110년 전 연재되다 중단된 <해저여행기담>을 현재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새로 쓰거나 이어 쓴다. 일종의 팬픽(Fan Fiction)으로 이해해도 좋다.

Alphonse de Neuville and ÉdouardRiou, 쥘 베른 <해저2만리> (1869) 일러스트

<해저여행기담>을 업데이트할 작가진은 고등어, 노상호, 무진형제, 박혜수, 스튜디오 yog, 전소정, 최성록, 홍은주 등 8팀. 이들은 회화, 설치, 퍼포먼스부터 애니메이션, 웹툰, VR 등에 이르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110년 전 이야기를 이어간다.

노상호, <Mobilis in Mobile>, 90x82x30, 캔버스 위에 유화, 스탠구조물, 2018
전소정, <G>, 13’30”, Three-channel video, stereo sound, HD, 2018
무진형제, <궤적(櫃迹) - 목하, 세계진문 (目下, 世界珍門)>, 슬라이드 프로젝션, 80장 사진, 2018
스튜디오 YOG, <Theory of nothing>, 2D 애니메이션과 VR영상 인스톨레이션, 가변크기, 2018

8월까지 이어지는 <플립북>에서는 스크리닝과 GV, 강연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안카 다미안 감독의 <매직마운틴>, 안네 마그누슨 감독의 <75개의 언어를 하는 남자> 등 애니메이션 작품을 정기 상영한다.

아라이 후유, <티슈 애니멀>, 2013,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1분 40초

특히 6월에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감독 아라이 후유, 사와코 가부키가 내한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다. 7월에는 <정령왕 엘퀴네스> 작가, 성우가 참여하는 행사와 이성강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지며, 8월엔 오성윤 감독이 <언더독> 제작기를 들려줄 예정. 구체적인 이벤트 내용과 애니메이션 출품작은 일민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체크하자.

 

 

장소 일민미술관 1, 2, 3전시실
일시 2018.05.18(금)~08.12(일), 월요일 휴관
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
관람료 어른 5000원, 학생 4000원

일민미술관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사와코 가부키, <여름의 고통은 겨울의 쾌락>, 2016, 애니메이션,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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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