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2017년을 어떤 키워드로 시작하고 싶은가? 좀 더 나답게 살길 원한다면 ‘용기와 연대’를,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갈구하는 이라면 ‘파격과 고전’을, 답답한 정세에 속이 터진다면 ‘전복과 행동’을 권하고 싶다. 다행히 새해의 극장가엔 방금 나열한 단어들에 더없이 걸맞은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기획전’도 마련되어 있으니, 조바심부터 내지는 말 것. 이 영화들은 분명 2017년을 새롭게 시작할 영감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2017년의 신작, <위켄즈>

Weekends ㅣ 2016 ㅣ 감독 이동하 ㅣ 출연 지보이스

영화 <위켄즈>는 국내 최초의 게이코러스인 ‘G_Voice’가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겪는 해프닝을 가감 없이 담은 영화로, 국내 최초 베를린국제영화제 다큐 관객상을 수상하며 잔잔한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곧 커밍아웃이고, 호모포비아가 만연한 일상을 겪어온 이들을 찍은 다큐이니 만큼 제작부터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힘겨움이 무색할 만큼 영화는 흥겹고 유쾌한 노래로 가득하다. 사랑도 넘쳐난다. 알콩달콩하고 때론 가슴 아픈 연애 이야기도, 퀴어퍼레이드,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투쟁을 아우르는 G_Voice의 지난 몇 년간 가장 뜨거웠던 연대의 기록도 빠지지 않는다. 베를린영화제의 한 프로그래머는 “우린 <위켄즈> 같은 영화를 찾고 있었다. 투쟁 현장에 집중하는 선전영화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노래로 인권을 이야기하고 사회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처럼 좋은 영화지만, 상영관은 많지 않다. 그러나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가도 절대 아깝지 않다는 ‘감동의 간증’이 이어지고 있으니, 극장 시간표를 확인하자. 2017년을 시작하는 단어로 ‘용기와 연대’를 선택하고 싶다면 특히.

영화 <위켄즈>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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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걸작, <블루 벨벳>

Blue Velvet ㅣ 1986 ㅣ 감독 데이빗 린치 ㅣ 출연 카일 맥라클란, 이사벨라 로셀리니

작년부터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재개봉 열풍의 연장 선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최초 개봉작이다. <블루 벨벳>은 <이레이저 헤드>, <멀홀랜드 드라이브>, <로스트 하이웨이>와 TV 시리즈 <트윈픽스> 등으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몽환적인 영화적 세계를 구축한 데이빗 린치 감독의 1986년 작. 그를 컬트 영화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마스터피스답게, 개봉 3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 8개국에서 재개봉(국내는 최초 개봉)하게 되었다. 미국 작은 도시에 사는 순수한 남학생 ‘제프리’(카일 맥라클란)가 ‘블루 벨벳’을 노래하는 매력적인 여가수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 정체불명의 남자 ‘프랭크’(데니스 호퍼)와 얽히며 일어나는 기괴한 꿈 같은 일화를 다룬 영화는 ‘린치 스타일의 원점’과도 같다는 평을 받는다. ‘Blue Velvet’, ‘In Dreams’ 같은 올드팝을 변주한 아름다운 선율, 이후 <트윈 픽스> 시리즈로 데이빗 린치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은 카일 맥라클란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함께 한다.

 

2017년의 재개봉,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블랙 앤 크롬>

MAD MAX: Fury Road ㅣ 2016 ㅣ 감독 조지 밀러 ㅣ 출연 톰 하디, 샤를리즈 테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일반 개봉, 아이맥스 재개봉에 이어 또 한 번 재개봉한다. 이번엔 흑백 버전으로, ‘블랙 & 크롬’이란 이름을 달았다. 물과 기름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희망 없는 22세기,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는 폭렬 액션으로 격렬한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노장 조지 밀러 감독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통해 여성과 세계에 대한 진보적 시각, 속도감과 무게감을 동시에 폭발시키는 액션을 여한 없이 선보여, ‘건재함’을 넘어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할 감독임을 증명해냈다. 그는 ‘블랙 앤 크롬’ 버전에 대해, “트렌드에 따라 화려한 색상들로 다이내믹함을 주어서 개봉했지만, 포스트 묵시록 영화에는 흑백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다시 다른 버전으로 차별화를 두어 개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개봉 당시 화제가 되었던 ‘빨간 내복’은 볼 수 없지만, 질감과 스릴은 훨씬 증폭되었다. 무엇보다, ‘국정 공백’ 상태로 답답했던 속을 단번에 날려버릴 통쾌한 영화다. 한 번 날려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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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기획전,
한국영상자료원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는 2014년부터 국내 영화제 프로그래머 및 기자, 평론가들이 선정한 동시대 영화 10편을 모아 상영하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연말연시 기획전이다. ‘사사로운’이라는 표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거시적으로도 물론 중요한 영화들이지만, 선정위원 17인의 마음이 특히 기운 영화들이란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2016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아직 개봉 소식이 없어 영화팬들을 애태우던 <루이 14세의 죽음>, <아쿠아리우스>부터 열렬한 지지 속에 종영한 <캐롤>, <다가오는 것들>,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같은 미개봉작과 흥행작이 골고루 섞여 있다. 부대 행사도 준비했다. 2015 칸영화제에서 가장 큰 호평을 받았으나 수상은 불발되었던 <토니 에드만>은 김혜리 기자의 해설로, 현재 가장 중요한 시네아스트 중 한 명인 왕빙의 신작 <타앙: 경계의 사람들>은 직접 그의 다큐를 찍기도 했던 정성일 감독의 해설로 만날 수 있다. ‘2016년의 예술영화 대표작’들을 정리할 좋은 기회이니, 시간표를 체크해보자. 2017년 1월 8일까지 진행한다. 게다가 무료다!

시간표 및 부대 행사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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