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원) 앙리 루소, 1902년

22년 동안 파리의 한 세관 사무소에서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렸던 앙리 루소는 ‘일요일의 화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정규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1895년까지 10년 동안 앙데팡당 展(salon des indépendants)에 해마다 최소한 한 작품씩 출품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약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 거의 팔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알아본 피카소, 브랑쿠시와 같은 화가들에 의해 그의 진가가 서서히 알려지며 말년에는 꽤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1910년에 앙데팡당 전에 <꿈>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비평가들의 찬사를 드디어 받게 되었다.

그는 미술계에 새로운 사조와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에 활동했으나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꾸준히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전위적인 성향의 작가들은 루소의 그림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도발적인 화면과 단순화된 양식, 독창적인 색채의 사용과 이차원적인 공간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에 나타나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창조 정신은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환상의 세계

앙리 루소의 이국적인 정글 그림이나 사막 그림은 순전히 그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파리를 떠난 적이 없는 그는 파리의 식물원, 동물원, 자연사 박물관 등을 수없이 방문해서 관찰하여 이러한 그림을 그렸다.

<원숭이와 앵무새가 있는 이국적인 풍경 >(1910)

정규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하고 천진한 그림(Naïve art)의 화가로 알려진 루소지만, 실제 그가 자신의 그림처럼 어눌하고, 천진난만하고, 매혹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루소는 절도와 사기 혐의를 가진 전과자였다. 그는 자신의 환상적인 정글 그림이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그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날까 봐 일부러 외국을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전쟁터에 나간 적이 없었던 자신을 ‘전쟁 영웅’이라고 칭하는 등 거짓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젊은 시절,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던 루소는 다량의 우표와 현금을 훔친 죄로 짧은 기간 동안 감옥에 수감되었고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군대에 자원해야만 했다.

두 번째 전과는 세월이 한참 흐른 후로 간교한 은행 사기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은행 직원이었던 친구의 음모 하에 루소는 가명으로 계좌를 만들어 날조된 예금증서를 만들어냈다. 범죄는 곧장 탄로 났고 그는 감옥에 끌려갔다. 루소는 재판에서 자신의 ‘순진한’ 이미지를 이용했지만 배심원들은 그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루소는 벌금을 물고서야 풀려나왔다.

<잠자는 집시 여인>(1897)

1897년 앙데팡당 전에 출품한 위 작품은 꿈 같기도 하고, 현실 같기도 한 기묘한 세계를 보여준다. 창백한 달빛이 비친 사막 위에 지팡이를 손에 쥔 집시 여자가 만돌린을 옆에 두고 잠들어 있다. 그런데 여자 뒤쪽에 나타난 사자 한 마리가 꼬리를 치켜든 채 여자 쪽으로 얼굴을 들이댄다. 맹수가 옆에 있는 데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편히 자고 있다. 집시와 사자를 감싸고 흐르는 기운이 기괴하면서도 평화롭다. 비례가 맞지 않는 형태와 종이 콜라주 같은 낯선 소재의 조합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묘한 힘이 있다.

<뱀을 부리는 여인>(1907)

위 작품은 인도에 다녀온 한 사업가의 이야기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소박한 세관원으로서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루소만의 독특한 개성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음악으로 뱀을 부리는 인도 남성은 루소의 그림에서 밤에 나타난 신비한 흑인 여성으로 변했다.

<전쟁: 불화의 기병대>(1894)

칼과 횃불로 무장한 여인이 검은 말을 탄 채로 달린다. 그녀는 전쟁과 불화를 상징한다. 루소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작품의 사실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여인은 말을 타고 있기보다는 말 옆에 있는 것처럼 보이며 해부학적 비례도 전혀 맞지 않는다.

 

 

초상화

그가 그린 초상화는 실제의 인물과 닮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실제보다 거대하게 그렸고 비율도 맞지 않는다. 그에게 호의를 가져 그림을 의뢰했던 의뢰인조차 실망하여 초상화를 거부하거나 없애버리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의 방식에 따라 탄생한 가면 같은 인물들이 있는 초상화는 입체파 이후의 콜라주 기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인형을 든 아이>(1896)
<축구 하는 사람들>(1908)

사람들의 동작도 우스꽝스럽고 그림만 봐서는 무슨 운동을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루소는 경기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사람들의 동작을 묘사하는 데만 집중한 것 같다. 이 그림 속 인물들은 풍경화 속에 집어넣은 것처럼 보이며 나무의 잎사귀들을 매우 세밀히 묘사한 것이 눈에 띈다.

<결혼식>(1904)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1909)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이자 화가인 마리 로랑생을 그린 그림이다. 시인 아폴리네르가 루소의 궁핍한 생활을 돕기 위해 주문한 것인데 시인은 그림값으로 5만 프랑을 지불했다고도 하고 3백 프랑을 지불했다고도 하여 확실치는 않다.

<나 자신>(1890)

양손에 팔레트와 붓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가로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팔레트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난 첫 부인인 클레망스이고 다른 한 사람은 1899년에 그와 결혼하는 조세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