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자판기 밀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전국적으로 약 500만 개 이상의 자판기가 설치돼 있으니 국민 23명당 약 1대의 자판기를 가진 셈이다. 자판기의 연간 매출 총액은 600억 달러(한화 약 67조5120억 원)가 넘는다. 그러니 일본 거리 곳곳에서 자판기를 마주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블록마다 많게는 십여 개의 자판기들이 24시간 영업을 계속한다. 음료와 식품, 담배를 판매하는 생활용 자판기 외에도 과일과 야채, 술, 배터리, 꽃, 의류, 란제리, 심지어 신선도가 생명인 스시를 파는 자판기까지 있을 정도라, 없는 것 빼고는 다 파는 만물상이라고 봐도 된다.

Eiji Ohashi가 찍은 자판기의 모습은 어딘가 고요하고 차분해 보인다 (사진 출처- Eiji Ohashi 홈페이지)
Edward Way가 찍은 나란히 줄지어 선 자판기의 모습 (사진 출처- Edward Way 홈페이지)


이처럼 일본인의 일상 깊숙이 침투한 자판기지만, 때로 인적 드문 시골 골목길에 우두커니 놓여진 자판기를 마주하거나, 자판기 바로 옆에 또 다른 자판기가 다닥다닥 붙어선 풍경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괜히 외진 곳에 놓인 자판기의 운영상황을 걱정하거나, 저렇게 많은 자판기들이 모두 수요에 의해 세워진 것인지 의구심이 들며 온갖 잡념에 빠진다. 아래 소개할 사진가들도 아마 비슷한 상념에서 출발해 일본 곳곳을 돌며 자판기의 사진을 남긴 것일지도 모른다. 촬영한 대상은 모두 같지만,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자.

 

1. Eiji Ohashi

(사진 출처- Eiji Ohashi 홈페이지)

어둠이 내린 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시골 거리 곳곳에 놓여진 자판기는 그 자체로 길을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 자판기는 종종 ‘전력 낭비를 줄여줄’ 효과적인 아이템으로 여겨진다. 일본 홋카이도 출신의 사진작가 Eiji Ohashi는 주로 겨울밤 눈이 소복이 쌓인 자판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적한 길모퉁이나 외딴곳 길가에 덩그러니 서 있으면서 은은한 빛을 내뿜는 자판기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차분한 위로와 안전감을 건네준다. 동시에 홀로 눈보라를 견디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자판기들은, 군중 속에서 고독과 소외를 감내하는 현대인의 애달픈 모습과도 닮아 있다.

(사진 출처- Eiji Ohashi 홈페이지)
(사진 출처- Eiji Ohashi 홈페이지)
(사진 출처- Eiji Ohashi 홈페이지)
(사진 출처- Eiji Ohashi 홈페이지)
(사진 출처- Eiji Ohashi 홈페이지)

 

2. Benedikt Partenheimer

(사진 출처- Benedikt Partenheimer 홈페이지)

일본인에게 자판기는 일상적인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익숙하고도 편재한 존재가 되었지만, 타국인의 눈에 몇 걸음에 하나씩 놓여있는 자판기의 모습은 종종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된다. 2012년 도쿄에 방문한 독일 출신의 포토그래퍼 Benedikt Partenheimer 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던 것 같다. 그도 어두운 거리를 환하게 비추는 자판기의 모습을 찍었지만, 위 사진들보다는 어쩐지 더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불 꺼진 상가, 운행이 끝난 지하철, 버려진 철물 더미 옆을 우두커니 지키며 네온 빛을 뿜는 자판기들은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조용한 도쿄의 밤 풍경과 어우러지며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폐허의 느낌마저 감도는 쓸쓸한 골목을 근근이 채우는 자판기를 감상해보자.

(사진 출처- Benedikt Partenheimer 홈페이지)
(사진 출처- Benedikt Partenheimer 홈페이지)
(사진 출처- Benedikt Partenheimer 홈페이지)
(사진 출처- Benedikt Partenheimer 홈페이지)

 

3. Edward Way

(사진 출처- Edward Way 홈페이지)

비싼 부동산 가격과 치솟는 인건비, 현금 소지율이 높은 점 등 일본이 ‘자판기 천국’이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낮은 범죄율 또한 자판기 설치율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어두운 골목에 설치된 자판기라도 깨지거나 훼손되는 일이 거의 없고, 위생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도 않는다.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프랑스 사진작가 Edward Way가 환한 대낮의 자판기를 촬영한 이유 또한 이를 선명히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 한눈에 봐도 청결하게 관리되어 있는 분리수거 쓰레기통과 긁히거나 상처 난 구석 없이 온전하게 보존된 자판기의 모습을 선명한 색채로 담아낸 그의 사진들은 정갈하고 단정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출처- Edward Way 홈페이지)
(사진 출처- Edward Way 홈페이지)
(사진 출처- Edward Way 홈페이지)
(사진 출처- Edward Way 홈페이지)
(사진 출처- Edward Way 홈페이지)

 

다 올리지 못한 사진은 작가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감상하자.

Eiji Ohashi 홈페이지
Benedikt Partenheimer 홈페이지
Edward Way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Benedikt Partenheimer, 출처- Benedikt Partenheimer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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