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과 함께한 어린 이자벨 아자니(왼쪽에서 두 번째)

이자벨 아자니는 알제리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2살 때부터 아마추어 극단에서 연기하였으며 1970년에 <작은 숯가게>라는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인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여겨 영화배우인 딸에게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연기 생활 시작 몇 년 후에 이자벨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사실을 밝힌다. 이를 계기로 그는 종종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들과 긴장 관계에 놓이기도 하였다. 그는 알제리계이지만 이슬람교는 아니고 오히려 천주교에 가깝다. 그래서 반 히잡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의 이자벨 아자니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였고, 맡은 역할들도 어딘가 사이코 같은 면이 있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그래서 비슷한 나이인 소피 마르소나 이자벨 위페르 만큼 많은 감독들과 작업하지는 못하였다는 소문도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5년 정도 사귀었지만 이자벨 아자니가 임신한 상태일 때 그가 줄리아 로버츠와 바람을 피우고 팩스 한 장으로 결별을 통지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아들을 낳았지만 다니엘은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자벨 아자니는 아름다운 얼굴뿐 아니라 광기 어린 뛰어난 연기로 여러 명작을 만들었다. 그중 몇 편을 살펴보자.

 

 

<포제션>(1981)

<포제션> 스틸컷
<포제션> 스틸컷

<포제션>은 광기와 폭력이 난무하는 B급 정서의 영화이다. <매드니스>에서 광인의 모습을 보인 샘 닐이 남자주인공으로 나온다.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로 그나마 수준을 유지하였고 이자벨은 세자르상을 받게 되지만 이 영화를 찍은 후 자살을 기도하는 등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입원한다. 배우들을 많이 괴롭힌 영화 중 하나이며 나중에 소피 마르소의 남편이 된 안드래이 줄랍스키가 감독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40여 분 잘려나가고 재편집된 버전으로만 상영되었다고 한다.

<포제션> 장면을 활용해 만든 영상

 

 

<여왕 마고>(1994)

<여왕 마고> 스틸컷
<여왕 마고> 스틸컷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여왕 마고>가 원작인 작품이다. 1994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여우주연상은 이자벨 아자니가 아니라 ‘카트린 드 메디치’를 연기했던 배우에게로 돌아갔다. 대신 이자벨 아자니는 이 영화로 세자르상 여우주연상을 탔다. 10년간 계속된 신교와 구교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프랑스 왕실은 평화를 위해 구교도인 샤를 9세의 동생 ‘마고’와 신교도인 나바로 왕 ‘앙리’를 결혼시킨다. 그러나 샤를 9세의 잘못된 판단으로 평화로워야 할 결혼식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참혹한 대학살로 이어진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40세였던 이자벨은 그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실이 바탕이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 각색이 심한 편인데, 예를 들어 샤를 9세는 원래 역사상 폐결핵으로 죽었으나 영화에서는 독살된 것으로 나온다.

 

 

<카미유 클로델>(1988)

영화의 모델이 된 실제 카미유 클로델
<카미유 클로델> 스틸컷

이 영화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은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조수로 들어간 카미유 클로델은 그와 곧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지만 카미유는 자신의 재능에 위협을 느낀 로댕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상처받는다. 카미유는 결국 로댕의 불성실함과 여성 편력에 분노하여 그를 떠나게 되고 자신만의 조각 작업에 몰두하게 되지만, 로댕에 대한 미련과 배신감으로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게 된다. 결국 정신병원에 가게 된 카미유는 그 후 30년간 폐인처럼 살다가 비극적인 삶을 마치게 된다. 2013년 줄리엣 비노슈를 주인공으로 다시 만들어진 영화 <카미유 클로델>은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을 맡았던 작품에 비해 흥행하지 못했다.

 

 

<디아볼릭>(1996)

<디아볼릭> 스틸컷
<디아볼릭> 스틸컷

<디아볼릭>은 할리우드 영화로 이자벨 아자니와 샤론 스톤이 함께 찍었다. 샤론 스톤이 치명적인 정부 역을 이자벨 아자니가 순진한 부인 역을 하였으나 남편을 빼앗기는 부인 역을 맡은 이자벨 아자니의 미모가 너무 뛰어나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였다는 평이 있다. 샤론 스톤은 이자벨 아자니를 의식해 의상과 외모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1955년에 처음으로 영화화된 이 작픔에서는 시몬 시뇨레가 정부 역을 맡았는데 이때는 동성애적 코드가 꽤 녹아 있는 작품이었다. 시몬 시뇨레는 중성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매력으로 상당한 호연을 펼친 반면 1996년 작의 샤론 스톤은 메가 히트한 <원초적 본능>의 주인공 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덧붙여 우리나라에서 <디아볼릭>의 개봉을 앞두고 ‘이자벨 아자니 닮은꼴 대회’를 열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는 당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최지우다.

당시 이벤트 기사가 실린 신문, 출처 ‘조선닷컴’ 
이자벨 아자니의 최근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