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비틀즈를 위시한 영국 밴드들이 일으켰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계에 불고 있다. 조앤 K 롤링의 고집에 의해 순수 영국 배우들만 캐스팅되었던 영국판 초호화 캐스팅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는 물론, ‘테이큰’ 시리즈의 리암 니슨, 2011 <킹스 스피치>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후 2014년 젠틀맨 신드롬을 일으킨 미중년 콜린 퍼스, 2016년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디 레드메인이나 오랜 연기 생활 재수 끝에 2018년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게리 올드만까지 그야말로 영국 배우 전성시대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의 흥행몰이 속 로키 역을 맡은 톰 히들스턴을 시작으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1980년대생 젊은 영국 배우 5인을 꼽아보았다.

<다키스트 아워>(2017) 공식 예고편

 

톰 히들스턴(1981년생)

대표작
<어벤져스>(2012)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크림슨 피크>(2015) <콩: 스컬 아일랜드>(2017)

마블 영화 시리즈의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 만점의 빌런, '로키'로 명성을 알린 톰 히들스턴은 장신의 키에 진의를 알 수 없는 천진난만한 미소가 깊은 인상을 주는 배우다. 그가 로키 역에 캐스팅될 때 원래는 '토르' 역을 지망했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와 함께 각종 헐리웃 영화에서 악역을 도맡았던 벤 킹슬리, 마크 스트롱 등은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의 광고 '영국 악당(British Villains)' 편에 출연하며 영국 배우의 매력을 공공연히 자랑한 바 있다.

2015년 '더 원 쇼 광고제(One Show Automobile Advertising of the Year)' 최종경쟁작에 올랐던 재규어 광고 '영국 악당(British Villains)' 편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고전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왕립 연극 아카데미를 거친 톰 히들스턴. 그 이력과 녹아내릴 듯한 목소리, 그리고 또렷한 영국식 악센트는, 우리가 영국 배우들에게 갖는 환상인 똑똑하고 귀족적인 이미지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큰 키에 날카로운 콧대를 지닌 그가 웃음기 하나 없이 생의 나태와 인간에 대한 환멸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의 모습은 21세기판 우아한 뱀파이어의 모습 그 자체였다.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예고편

 

키이라 나이틀리(1985년생)

대표작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2003) <오만과 편견>(2005) <어톤먼트>(2007) <안나 카레니나>(2012) <비긴 어게인>(2013)

키이라 나이틀리는,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시작해 영국 배경의 고전적인 작품들은 물론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1999),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최근의 <비긴 어게인>(2013) 등 좋은 작품, 성공적인 작품 활동을 연이어나가는 중. 그래서 그의 젊은 나이에도 “젊다”는 수식어가 어색하게만 들린다. 오랜 연기 경력에도 키이라 나이틀리의 이미지가 결코 낡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가 판에 박힌 캐릭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는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긴 어게인> 메인 예고편

화장기 없는 얼굴에 각진 턱과 덧니가 보이는 털털한 웃음. 그간 사회가 여성 배우에게 강요해온 이미지와 다른 그만의 모습이다. 자신의 꿈을 좇아 사내들과 축구를 하며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줄스’(<슈팅 라이크 베컴>(2002))나 깨진 꽃병의 조각을 찾기 위해 체면을 집어던지고 분수로 냅다 뛰어드는 상류층 아가씨 ‘세실리아’(<어톤먼트>), 식민지 총독의 딸임에도 사랑하는 남자를 쫓아 해적이 되길 마다하지 않는 ‘엘리자베스 스완’(‘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등은 모두 이전에도 앞으로도 키이라 나이틀리 아닌 다른 누구로 대체하기 힘든 캐릭터다.

<어톤먼트>(2007) 트레일러

 

캐리 멀리건(1985년생)

대표작
<언 애듀케이션>(2009) <드라이브>(2011) <위대한 개츠비>(2013) <인사이드 르윈>(2013) <서프러제트>(2015)

키이라 나이틀리와 동갑내기로 <오만과 편견>에 함께 출연했던 캐리 멀리건은 반대로 큰 키에 상반되는 귀여운 표정과 가냘픈 이미지로 먼저 눈길을 끄는 배우다. 허나 그것은 단지 겉으로 비치는 모습일 뿐이다. 주로 TV 시리즈로 경력을 쌓아오던 캐리 멀리건은 2009년 영화 <언 애듀케이션>에서 드라마틱한 사랑의 성장통을 통해 성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고민하는 고등학생 제니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며 그해 각종 연기상을 수상했다.

<언 애듀케이션> 트레일러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미혼모(<드라이브>),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뷰캐넌’ 역을 맡기도 했지만, 이후 특유의 섬세한 연기와 부드러운 외모에 상반되는 당찬 모습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의 주연을 맡고, 2018년에는 <언 언 시빌 워>에 출연하여 남녀평등 헌법수정안 비준을 위해 싸웠던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연기할 예정이기도 하다. 그는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영국 ‘노블레스 오블리주’ 캐릭터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서프러제트> 공식 예고편

 

니콜라스 홀트(1989년생)

대표작
<어바웃 어 보이>(2002)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 <웜 바디스>(2013) <잭 더 자이언트 킬러>(2013)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니콜라스 홀트는 무려 만 5세 때 연기 생활을 시작해 2002년 한국 나이로 13세에 당시 최고의 배우 휴 그랜트와 함께 <어바웃 어 보이>에 출연하며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키와 외모가 멋지게 자라나며 영국 드라마 ‘스킨스’ 시리즈의 엄친아 토니, 아버지뻘인 ‘조지’(콜린 퍼스 분)와 묘한 감정 기류를 보이는 ‘케니’ 역 등 마성의 청년을 연기하며 전형적인 꽃미남 배우의 계보를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니콜라스 홀트는 자신의 반듯한 외모를 감추는 독특하고 과감한 비주얼의 캐릭터들을 소화하며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성공한다.

<어바웃 어 보이> 트레일러

자신의 돌연변이 체질에 괴로워하며 이를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마는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 속 털북숭이 비스트, 좀비 분장을 한 채 역사상 전에 없이 사랑에 빠진 좀비 연기를 해야 했던 <웜 바디스>, 좀비 때와 마찬가지로 흰 분칠을 했지만 머리까지 민 채 임모탄에 대한 맹렬한 충성을 소리치며 죽어가던 ‘눅스’까지. 멋진 외모보다 더욱 강렬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하고 있다.

영화 <웜바디스> 예고편
2016년엔 재규어 XE 광고에 톰 히들스턴과 함께 출연했다

 

다니엘 칼루야(1989년생)

대표작
<킥 애스 2: 겁 없는 녀석들>(2013)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겟 아웃>(2017) <블랙 팬서>(2018)

다니엘 칼루야는 우리에게 <겟 아웃>으로 유명한 배우다. 니콜라스 홀트의 동갑내기인 그는 재미있게도 홀트가 출연했던 <스킨스> 시즌1의 각본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우간다 출신의 이민자 부모를 둔 그의 존재는 상식적으로는 알면서도 영국 배우 하면 금발 벽안의 백인을 쉽게 떠올리는 우리의 직관적 선입견을 깨뜨린다.

<겟 아웃> 공식 예고편

특히나 인종차별을 중요한 주제이자 메타포로 삼은 <겟 아웃>은 물론, 폭력의 부조리를 그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 출연하거나 미디어의 부정적 일면을 그린 드라마 <블랙 미러>에서 부조리한 가상사회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캐릭터로 등장했던 것, <블랙 팬서>에서 와칸다 왕국의 전사 ‘와카비’ 역으로 출연해 커다랗고 순박한 눈으로 강경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모두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또 하나의 영국 배우상을 이해하게 한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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