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평범한 이를 위로할 노래를 소개한다. 이 노래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듣는 이의 자유지만, 문득 위로가 되는 순간을 만나길 바라며.

 

자우림 ‘이카루스’(2013)

인생에 특별한 일은 좀처럼 없다. 스물이 되면, 대학에 가면, 돈을 벌면 영화 같은 일들이 펼쳐질 거라 믿었지만 보통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평범하고, 그 평범함을 상쇄할 만한 열정도 근성도 없다. 자우림은 9집 <Goodbye, grief.>에 담은 노래 ‘이카루스’에서 이처럼 평범한 인간을 노래한다.

자우림 ‘이카루스’ MV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여름과 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줄 알았어

(…)

난 내가 어른이 되면 빛나는 별들과 같이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열기로 꽉 찬
축제와 같이 벅차오를 줄 알았어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숨을 죽인 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 ‘이카루스’ 가사 가운데

도입부에서 이 노래는 선심 쓴다는 듯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를 들려주는데, 그 비밀이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노래를 듣는 이들은 1절까지 ‘나와 비슷한 처지’에 공감하며 위로받는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어선 노래는 우리를 다그치듯 격려한다. ‘가만히 숨을 죽인 채로/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 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라며 좌절한 이들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노래 제목이 ‘이카루스’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태양에 너무 가깝게 날다가 날개를 잃어 추락해 죽는다. 어쩌면 우리가 마음잡고 노력한대도 장밋빛 미래 따위 없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노래는 대단한 걸 이루지 못한다 해도, 주저앉지 않고 그저 걸어 나가는 게 삶이라며 듣는 이를 위로한다.

 

 

리짓군즈 ‘지난 여름 우린’(2017)

뭔가 완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목표를 세우고,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을 모으고 함께 시간을 채운다. 할 일을 제대로 마친 날도 있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놀며 지낸 날도 있다. 의견이 잘 맞아 말끔한 기분으로 집에 가는 날도 있고, 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런지 이해가 안 돼서 답답하게 잠드는 날도 있다. 그 날들이 쌓인다. 마침내 받아들게 되는 결과물이 어떻든, 그건 우리 거다.

리짓군즈 ‘지난 여름 우린’

아무 느낌이 없네 작은 스튜디오에서
캠프 만들고 막상 바다 못 갔지마는
여기 그늘진 우리 자리가 편해졌지
반바지 버블티 우린 연예인이 아녀아녀아녀

야자수 하와이 아녀도 난 괜춘
멀리 떠나서 풍등을 날려봤지마는
여전히 돈이 없고 겁이 없네
이번 여름은 우릴 위해 노래해

(…)

온도를 조금 올려볼게 우린 그럴 자격 있어
지난 여름보다 더 짙은 선글라스 가져와 우린 그럴 자격 있어

- ‘지난 여름 우린’ 가사 가운데

‘지난 여름 우린’은 ‘우리 거’를 만든 사람들의 노래다. 하와이 야자수 아래 놀기를 꿈꿨으나, 작은 파라솔 아래서 막걸리 마시며 놀 만큼 이루었다. 엄청난 뭔가를 만들진 못했어도 같이 일하며 놀던 친구들과 모여 즐길 만큼은 만족스럽다. 질척이지 않고 산뜻하게 삶의 만족과 행복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는 묘하게 위로가 된다. 거창한 미래를 원해도 그걸 쥐기란 쉽지 않다. 쥐지 못해도 괜찮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긴했’으니까.

리짓군즈는 래퍼와 프로듀서, 뮤직비디오 감독, 사진작가 등으로 이뤄진 힙합 크루다. 힙합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이들은 2016년 발매한 앨범 <CAMP>로 개성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리고 지난해 발매한 <Junk Drunk Love>는 대중의 호평을 얻은 건 물론, 한국대중음악상 2018 올해의 힙합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 역시 인정받았다. 일상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이들의 음악이 어떻게 달라져 갈지 지켜보자.

 

 

언니네 이발관, ‘혼자 추는 춤’(2015)

인생 왜 이따위지? 싶을 땐 뭘 하는가. 누구는 맥주캔 한 아름 안고 귀가하며, 누구는 항공권 검색을 할지도 모른다. 될 대로 되라는 심보로 누워 폰을 만지거나 열 몇 시간을 자버릴 수도 있겠다. 언니네 이발관은 이 모든 행위를 ‘춤’이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저 하루하루 견딜 뿐’인 우리에게 남은 건 오로지 춤뿐. 우리는 ‘누구도 누굴 이해하지 않는 곳’에 살기에 ‘외로움에 지쳐’버렸다. 그래서 방 안 거울을 보며 혼자 춤춘다. 혼자 추다 보면 또 외로워 결국 ‘서로를 그리워하며’, ‘작은 희망들이 있는’ 다른 곳을 꿈꾼다.

언니네 이발관 ‘혼자 추는 춤’

왜 이따위니 인생이 그지?
그래서 뭐 난 행복해
난 아무것도 아냐
원래 의미 없이 숨 쉴 뿐이야

나는 매일 춤을 추지
혼자 그래서 뭐 난 괜찮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그저 하루하루 견딜 뿐이야

(…)

다들 여기 아닌 곳에 있고 싶어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곳에
끝까지 포기 않는 곳
누구도 포기 않는 곳

한 사람도
그런 곳을 꿈꾸네
누구도
그런 곳을 꿈꾸네
그런 곳을 꿈꾸네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쳐 있다
부디 워우워우 언젠가
다 함께 몸을 흔들며
노래하고 춤추며

- ‘혼자 추는 춤’ 가사 가운데

언니네 이발관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라며 자신을 슬프도록 차갑게 정의했다. 그 후 2015년 12월, 6집의 선공개 격으로 싱글 <혼자 추는 춤>이 발매되었다. 여전히 살갑지 않은 감성이지만, 언니네 이발관은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아서 ‘슬픈 사연들이 더는 없는 곳’을 노래하며 달라진 지점을 드러낸다. 이 앨범을 듣는 우리는 문득 ‘혼자’ 추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애타게 춤을 추고 있으니까.

덧붙여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2015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가 세월호에 탄 한 학급의 단체 사진을 보고, 이미 녹음이 끝난 곡 ‘혼자 추는 춤’의 엔딩 멜로디와 가사를 새로 만든다. 이 노래는 끝내 조곡(弔哭)이자 산 자에 대한 위로로 남았다.

 

 

Editor

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