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퀘벡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이자벨 아르스노. 그의 일러스트를 입은 이야기들은 한 번 들으면 계속해서 흥얼대게 되는 잔잔한 멜로디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한 편의 자장가처럼 읽고 나면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이자벨 아르스노의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을 한 편씩 소개한다.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이미지 출처 ‘그림책박물관’
패니 브리트가 쓰고 이자벨 아르스노가 그린 작품이다

사람들 틈에 있어도 혼자 동떨어진 작은 섬처럼 외로울 때가 있다. 하루아침에 친구들 사이에서 튕겨 나온 ‘헬레네’가 그렇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헬레네의 이름을 입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아무도 헬레네와 말을 섞지 않는다. 이 일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엄마는 밤새워 재봉 일을 하느라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고, 쌍둥이 남동생들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럴수록 헬레네는 침묵의 세계로 빠져들며 어디에서든 샬롯 브론테의 책 <제인 에어>를 읽는다. 혼자 지내는 것이 함께할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책이 더 좋아서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면서. 그런 헬레네의 일상은 연필로 대충 그린 그림처럼 빛깔 하나 없이 거칠고 어둡다.

이미지 출처 ‘그림책박물관’
이미지 출처 ‘omphaloskepsis’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천덕꾸러기 제인 에어가 헬레네는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제인 에어를 만날 때만큼은 어둡던 일상도 환한 색깔을 입는다. 이제 제인 에어는 단순히 책 속 인물이 아니라 헬레네의 또 다른 자아다. 학교 캠프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아무도 함께 방을 쓰려는 사람이 없어 ‘외톨이들의 텐트’에서 지내도, <제인 에어>만 있으면 괜찮은 척 버텨낼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한 제인 에어를 보며 헬레네는 또다시 외로워진다.


혼자 있던 저녁, 부스럭대는 소리에 텐트 밖으로 나온 헬레네는 뜻밖의 존재와 마주친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은 여우다.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바라보는 여우의 따뜻한 시선에 헬레네는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여우와 헬레네는 오래도록 눈을 맞추며 말 한 마디 없이도 교감을 이룬다. 야생 여우는 아이들이 돌아오자 금세 풀숲으로 사라지지만, 헬레네의 마음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씨앗이 되고 ‘외톨이들의 텐트’의 새 멤버 ‘제랄딘’에게 해 줄 이야기가 된다.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제랄딘의 모습에 굳게 닫혀 있던 헬레네의 입이 열리고, 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리가 놓인다.


자신을 괴물이라 생각했던 제인 에어가 로체스터 씨를 만나 그 생각을 떨쳐버렸듯, 헬레네도 제랄딘을 통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웃음을 터뜨리고, 푸른 하늘과 선명한 색감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제 헬레네의 세상은 <제인 에어> 없이도 환하고 찬란하다.


극작가 패니 브리트의 글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이자벨 아르스노의 섬세한 그림을 통해 한 편의 꽃처럼 피어난다. 거친 흑백 스케치로 표현된 헬레네의 일상과 밝은 색감의 <제인 에어>의 대비도 인상적이고, 주인공의 이름이 소설 <제인 에어> 속 제인의 첫 번째 친구의 것과 같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 이 그래픽노블은 ‘캐나다 퀘벡주에서 출간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림책, 내 동생 버지니아>

쿄 맥클레어가 쓰고 이자벨 아르스노가 그린 작품이다


어느 날, ‘바네사’의 동생 ‘버지니아’가 늑대로 변해버린다.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리고, 온종일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우울해하고, 밤이 되면 달을 보며 울부짖는다. 바이올린을 연주해주고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 갑자기 늑대가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네사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가만히 동생 옆에 눕는다. 그런 바네사에게 버지니아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무에서는 사탕 꽃이 피어나고 슬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블룸스베리’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지도책을 넘겨보지만 블룸스베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버지니아는 그르렁거리며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바네사는 우울해하는 버지니아를 바라보다 미술 도구를 찾아낸다. 그리고 밋밋하던 벽으로 다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나무가 자라나고 사탕 꽃이 피어나고 노래하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다. 사다리가 놓인 창문 밖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파란 새들이 포르르 날아다닌다. 그렇게 바네사는 블룸스베리 정원을 직접 만들어 나간다.


그런 바네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버지니아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하는 늑대 이야기부터 등에 회색빛 집을 지고 끊임없이 기어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달팽이 이야기까지. 블룸스베리 정원은 버지니아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음악 삼아 완성된다. 메말랐던 버지니아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난다. 이제 둘은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선다. 그림이 그려진 벽 너머, 진짜 나무와 풀잎이 사락거리는 들판이 펼쳐져 있는 바깥을 향해.

<내 동생 버지니아> 트레일러

원제 <Virginia Wolf>나 ‘블룸스베리’라는 지명에서 엿볼 수 있듯, <내 동생 버지니아>는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와 언니 바네사로부터 모티프를 따 온 작품이다(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곳은 런던의 블룸스베리다).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가 짙은 우울에 파묻혀 있을 때, 바네사가 그 옆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가깝다는 이유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소홀한 우리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묻거나 어설프게 위로하는 대신 버지니아의 마음을 살펴 준 바네사는 그래서 더 울림을 준다.


서로 다른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낸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자벨 아르스노의 일러스트는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이야기에 스며들어 그 자체로도 따뜻한 이야기들을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자벨 아르스노가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을 꽃처럼 피워낼지 궁금해진다.

 

 

이자벨 아르스노 공식 홈페이지
이자벨 아르스노 인스타그램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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