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괴물이야. 누구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무언가는 선천적인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것일까? 쏟아지는 미디어 매체 속에서 복사되고 주입되는 시각적 관념들. 그 이미지들의 대부분은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의 머릿속에 형성케 한다. 성별로 결정되는 수없이 많은 성차별적인 고정관념들, 서구적인 미의 기준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답습하는 상업광고들, 부정적인 감정들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시끄럽게 웃고 떠들며 상황의 본질을 지우는 예능 프로그램들.

기형인, 난쟁이, 거인,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삼류 서커스단, 나체주의자 등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 군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 1923~1971)의 사진들이 현재까지도 유효한 이유는 예쁜 포장지로 덕지덕지 감싸서 숨겨놓은 세상의 겉포장을 힘껏 잡아 뜯는 것처럼 명료하게, 기존의 관습 하에 금지된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Diane Arbus, Albino Sword Swallower at a Carnival (1970)
Diane Arbus, Untitled No. 1, (1970-1971)
Diane Arbus, Child With Toy Hand Grenade, Central Park, NYC (1962)
Diane Arbus, Untitled (8) (1970-1971)

“세상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기형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상처와 한 몸이었다. 그리고 그 시련을, 존재함으로써 이미 초월하고 있다. 그들은 고귀한 사람이다. 기형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스스로에게 인생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이집트의 스핑크스 같은 존재였다.”


Diane Arbus (Photo by Tod Papageorge)

1923년 뉴욕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다이앤 아버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유대인 공주’라고 묘사하며 스스로의 태생적인 집안 환경을 콤플렉스로 여겼다. 외조부 프랭크 러섹은 모피로 유명한 러섹스 백화점의 창립자였고, 부모는 어린 다이앤을 뉴욕의 상류층들만 다니는 에티컬 컬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누구나가 부러워할 법한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뉴욕 상류층의 사치스럽고 위선적인 삶에 언제나 염증을 느꼈던 다이앤은 한창 사춘기던 14세 무렵 당시 러섹스 백화점의 사환으로 일하던 19살의 앨런 아버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무일푼의 배우지망생이던 앨런과의 관계를 반대하던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이앤은 18세가 되자마자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앨런과 결혼한다.

Portrait Of Diane and Allan Arbus (Photograph by Frances McLaughlin-Gill)

부유한 부모로부터의 지원을 포기한 부부는 생계를 위해 군대에서 사진을 배운 앨런의 기술을 활용하여 패션사진 일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글래머>, <보그>, <하퍼스 바자> 등 유력 패션잡지와 일하며 명성을 쌓고 자신들만의 스튜디오를 차릴 정도로 성공하게 되지만, 앨런이 사진작가로서 활약하는 동안 대부분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이앤은 또다시 깊은 결핍을 느끼게 된다.

1950년대 후반 무렵 앨런의 외도와 함께 두 사람은 결별하고, 그에 따라 부부는 각자가 원하는 길을 가게 된다. 앨런은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수업을 시작하고, 다이앤은 1958년 뉴스쿨 대학에 다니며 여성 사진작가 리젯 모델(Lisette Model)에게 사진을 사사한다. 리젯 모델은 1930년대부터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찍지 않던 소외된 인물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의 발, 유리창에 비치는 사람들의 불분명한 형체 등을 찍으며 자신만의 시각을 확고히 한 작가였다. 다이앤은 리젯 모델의 이러한 사진적 주제를 이어받아 보다 심화시킨다.

Diane Arbus, Patriotic Young Man with a Flag, N.Y.C (1967)
Diane Arbus, A Child Crying (1967)
Diane Arbus, A Jewish giant at home with his parents, in the Bronx, N.Y (1970)
Diane Arbus, A Young Man in Curlers at Home on West 20th Street, NYC (1966)

다이앤의 사진이 가지는 의미는 그가 단순히 사진의 결과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 속 기묘한 인물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쌓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다이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던 화가 겸 아트디렉터, 마빈 이스라엘(Marvin Israel)은 “다이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 다른 사진가가 가지 않는 무시무시한 곳에 들어가 모험에 맞춰 살고 모험을 추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다이앤은 키가 2미터가 넘는 거인 같은 남자, 여장을 하고 다니는 남성 매춘부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나체주의자들의 캠프에 참여해 촬영할 때는 그 자신도 벌거벗은 채 사진을 찍었다.

1962년 다이앤은 자신이 사용하던 카메라를 당시 보편적이던 라이카에서 롤라이플렉스로 바꾸었다. 오늘날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익숙한 정사각형 포맷의 사진은 당시만 해도 매우 낯선 형식이었고, 다이앤 역시 ‘새로운 정사각형 프레임의 경직성’에 압도되어 한동안 사진을 찍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정사각형 포맷으로 찍힌 사진들이며, 그러한 포맷을 통해 인물들을 사진의 정중앙에 배치하고,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게 하여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Diane Arbus, Identical Twins (1967)
Diane Arbus, A Young Man and His Pregnant Wife in Washington Square Park NYC (1965)

또한, 다이앤의 사진들은 유독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인물들이 대체로 상반된 인상을 주는 점도 특징적이다. 다이앤의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일란성 쌍둥이 소녀들을 찍은 사진 역시도 유심히 보면 쌍둥이 중 한 명은 어딘지 모르게 슬픈 표정으로, 또 다른 한 명은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며, 1965년 촬영한 젊은 부부의 사진은 남자가 흑인이고 여자가 백인일 뿐만 아니라, 위로 올린 헤어스타일 때문에 여자가 훨씬 크고 굳세어 보이고, 남자는 아래로 숙인 얼굴각도 때문에 오히려 다소곳한 인상을 주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뛰어넘는 점이 흥미롭다.

Diane Arbus (Photo by Tod Papageorge)

다이앤은 그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서른여덟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에 대하여 “여자는 자기 삶의 첫 단락을 남편을 찾고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법을 배우며 보내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애쓰느라 다른 역할을 해낼 시간이 없다.”라고 답변한 것이나, 주로 남성 사진가가 많던 시절이었기에 그 자신이 ‘여성 사진가’로 지칭되는 것에 대하여 불편함을 품고 “나는 여성 사진가가 아니라 그냥 사진가다.”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그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더라도 다른 여성들에게 좋은 롤모델로써 임파워링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내었음을 볼 수 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The New Documents, February 28–May 7, 1967, MOMA

196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뉴 다큐멘트(New Documents)> 사진전에 다이앤 아버스는 게리 위노그랜드, 리 프리글랜더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는 전시회 개막 당시 자신이 찍은 인물 사진으로 만든 수백 통의 초대장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할 만큼 전시에 대한 기대가 컸다. 동시에 자신의 사진들에 대하여 비판적이거나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에 힘겨워하기도 했지만, 이 전시를 통해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의 ‘Oz’ 대신 비슷한 발음의 ‘Odds(이상한 것)’를 넣은 ‘이상한 것들의 마법사(The wizard of odds)’라는 별명을 얻으며 사진가로서 보다 인정받는 삶을 여는 듯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71년, 48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다이앤은 아파트 욕조에서 손목을 칼로 그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혼 이후의 우울증 때문이었는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평가로 느낀 괴리감 때문이었는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의 자살로 다이앤 아버스라는 이름은 현대 사진에서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2004년에 열린 회고전에는 무려 25만 명의 관객이 모였다.

Diane Arbus, Revelations

여전히 윤리적인 측면에 있어 논쟁적인 시각들이 있지만,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다이앤 아버스 사진 속의 주제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가족과 거주자들이었다. 사진 속에서 나타나는 이 비정상적인 곳은 바로 미국이다.”라는 비평 그대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비주류 인물들을 조망하고, 그들의 모습을 우울하거나 동정하는 시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드러낸 다이앤의 사진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진 미국의 다른 이면을 우리들의 눈앞에 드러내어 주었다는 점에서 예술적, 사회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Tori Amos ‘American’

이러한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토리 에이모스(Tori Amos)는 2014년에 발매한 앨범 <Unrepentant Geraldines>에 ‘Amrerican’이라는 노래를 수록하였으며, 최근 201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뉴욕타임스에서는 ‘간과된 여성들(Overlooked)’이라는 제목으로 생전에 인류의 역사에 높은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위대한 여성 15명의 부고 기사를 실으며, 그중 한 명으로 다이앤 아버스를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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