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 엘링턴(1899~1974)은 평생 천 곡 이상을 작곡하며 스윙 시절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이자 밴드 리더였다. 1924년부터 시작된 그의 재즈 오케스트라는 그가 사망할 때까지 50년 동안 이어진다. 그는 소속 뮤지션들을 형제처럼 대했고 그들의 연주 스타일에 맞는 곡을 무수히 썼다. 많은 뮤지션들이 자신의 커리어와 음악을 위해 그를 떠났지만, 세 사람의 색소포니스트는 수십 년간 그와 동고동락을 함께 했고 듀크 엘링턴의 솔로이스트로서 명성을 남겼다.

 

자니 호지스(Johnny Hodges)

자니 호지스는 알토 색소폰 연주에 관한 한 역대 최고의 실력을 보유한 인물로, “호지스처럼 연주할 수 있다”는 관용적 표현이 유행일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비브라토는 특히 블루스나 발라드 연주에서 청중을 매료시켰다. 엘링턴의 빅밴드에서 20여 년간 리드 알토이스트로 활약했고, 엘링턴이 작곡한 ‘Jeep’s Blues’, ‘Passion Flower’, ‘Isfahan’은 그의 연주 실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맞춤곡이었다.

1941년 작곡한 발라드 ‘Passion Flower’, 이듬해 호지스가 최초로 녹음하였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연주를 하면서도 얼굴에 표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하고,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밴드 동료들이 ‘토끼’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치과 치료를 받던 도중 갑자기 찾아온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엘링턴은 “자니 호지스는 결코 무대 체질의 쇼맨은 아니었으나 음색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며 “이제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작곡 콤비 빌리 스트레이혼과 함께 만든 ‘Isfahan’
펭귄 북스는 이 곡을 엘링톤의 최고 발라드로 꼽았다

 

 

폴 곤살브즈(Paul Gonsalves)

폴 곤살브즈는 군대 제대 후 다소 늦은 서른 살에 엘링턴의 오케스트라에 합류한 후 줄곧 엘링턴과 함께했다. 마약 상용과 폭음 습관으로 연주 스케줄을 펑크내는 일이 잦았으나, 엘링턴은 그의 자리를 언제나 유지했다. 엘링턴 밴드의 인기가 쇠락할 즈음인 1956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The Diminuendo and Crescendo in Blue’를 연주하며 6분간 이어진 그의 솔로는 청중과 평론의 극찬을 받으며 엘링턴 밴드의 인기를 다시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시의 실황은 <Ellington in New Port>에 수록되어 재즈사의 전설로 남았다.

‘The Diminuendo and Crescendo in Blue’ TV 실황
2분경부터 곤살브즈의 긴 솔로가 시작된다

곤살브즈는 런던에 잠시 머물던 중 사망했는데, 엘링턴의 아들은 병석에 있던 엘링턴이 충격으로 더욱 악화되는 것이 두려워 그의 사망 소식을 숨겼다. 곤살브즈가 사망한 지 9일 후 엘링턴도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폴 곤살브스라는 이름은 재즈 역사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나, 만약에 그가 일찍 마약과 폭음에서 벗어났다면 재즈 음악을 많이 변화시켰을 것이라 이야기될 만큼 실력파 색소포니스트였다.

엘링턴과 곤살브즈가 사망하기 2년 전 듀엣으로 함께 한 무대

 

 

해리 카니(Harry Carney)

해리 카니는 듀크 엘링턴의 밴드에서 거의 45년 동안 연주한 터줏대감이다. 주 종목인 바리톤 색소폰뿐만 아니라 클라리넷, 알토, 소프라노 등 악기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엘링턴의 오케스트라에서 관악기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알토와 테너에 뮤지션들의 경쟁이 거세지자 악단에 오래 남기 위해 바리톤을 택했다. 엘링턴이 무대에 나서지 못할 때는 그가 밴드 리더 역할을 대신했고, 엘링턴과는 가장 막역한 친구처럼 지냈다. 엘링턴이 사망하자 그는 절망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날이다. 듀크 없이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로부터 4개월 후 그 역시 생을 마감했다.

엘링턴의 오리지널 ‘Sophisticated Lady’(1933년 작곡)를 연주하는 해리 카니
폴 곤살브스(좌), 자니 호지스(우), 그리고 우측에서 두 번째에 선 해리 카니는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