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감정노동자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친절을 표현해야 하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일컫는 말이다. 감정노동에 대한 정의로만 본다면 분명 서비스직이 아닌, 다른 직종의 업무는 감정노동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본래 직무는 감정노동이 아니지만, 감정노동이 빈번하게 강요되는 업무 환경을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모든 노동자들을 암묵적인 감정노동자로 만드는 환경에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다 보면 이따금 ‘생각’이 필요치 않은, ‘몸’만을 움직여 가치를 창출하는 직종에 막연한 동경심을 품게 된다.

아래 소개하는 영상들은 50, 60년 전 산업화 시대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환경과 작업과정을 기록한 짤막한 다큐멘터리다. 1910 년부터 1970년까지 영국의 뉴스 필름이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미디어 회사 ‘British Pathé’에서 제작한 이 영상들 속에는 아이스크림, 빵, 인형, 도자기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정갈하게 담겼다. 대화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요구되지 않는 공장에서 각자의 자리에 묵묵히 앉아 주어진 반복 업무를 해내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동경심을 넘어, 숭고한 감정마저 들게 한다. 60년 전 필름에 새겨진 노동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Ice Cream Factory>(1957)

가지런히 놓인 네모반듯한 아이스크림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다 중탕한 초콜릿을 만나 작은 사각형 모양의 초코 아이스크림으로 탈바꿈한다. 기계가 완비된 공장에도 사람의 손길은 필요한 법. 아이스크림 제조공장의 직원들은 밋밋한 우유 아이스크림 위에 생크림을 덧바르고 짤주머니로 한 치의 오차 없는 데코레이션을 완성한다. 동화 같은 비주얼, 하나의 예술작품같이 정교하고 우아한 아이스크림의 제작 과정은 다큐멘터리라기보다, 한 편의 잘 연출된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흡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속 멘들스 컵케익을 만드는 장면을 봤을 때의 차분한 쾌감과도 닮아 있다.

 

<Bread Sculptor>(1957)

제빵사가 길게 늘린 반죽을 열십자로 놓고, 반죽의 끝을 잡고 서로 교차시켜 땋은 머리 모양의 발효 빵을 만든다. 더 가느다란 반죽들로는 매듭을 지어 팬에 올려둔 벼 이삭 모양 반죽의 가장자리를 감싸고 가위로 칼집을 내 생동감을 더한다. 오븐에 구워낸 빵은 살짝 탄 듯한 갈색과 금빛을 은은하게 머금어 황금색 들판의 잘 익은 벼 이삭을 떠올리게 한다. 제빵사의 반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스킬과 빵에 디테일을 더하는 깐깐한 손놀림에서 집요한 장인정신마저 느껴진다.

 

<The Doll Factory’s Assembly Line>(1963)

인형을 만드는 과정은 강도 높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2분 남짓의 영상에는 몰딩, 헤어 스타일링, 메이크업, 코스튬 등 인형 제작의 전 과정이 자세히 담겨 있다. 인형 공장의 사람들은 왁스를 기계에 부어 인형의 틀을 만들고 내용물이 식으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 인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때 사람들의 업무는 매우 세분화되어 있는데, 인형의 눈을 붙이고, 눈썹을 그리며 페인트로 입술에 색을 칠하는 등 체계적인 분업이 이뤄진다. 물론 인형의 옷을 전문으로 만드는 재봉사도 따로 있다.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인형 제작의 전과정을 엿보는 일은 색다른 재미를 안긴다.

 

<The Making Of Wedgwood Reel>(1958)

웨지우드(Wedgwood)는 250여 년 넘게 세계적인 브랜드로 평가받는 영국의 대표적인 도자기 회사다. British Pathé는 앞서 1950년대 웨지우드 공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이들의 업무환경, 작업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여럿 찍었다. <The Making Of Wedgwood Reel>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영상 중 하나. 점토를 물레에 올려놓고 성형작업을 하거나, 날카로운 조각칼로 도자기의 몸체를 뚫거나 문양을 새기고, 판박이 스티커처럼 문양이 그려진 용지를 도자기 표면에 붙이는 등 여러 가지 기상천외한 도자기 장식법이 펼쳐진다. 19분가량의 짧지 않은 영상이지만 비주얼적인 만족도와 제작과정 자체의 흥미로움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순식간에 보게 된다.

 

Tip. 이밖에도 지구본 만들기, 페이스 파우더 만들기 같은 신박한(?) 다큐멘터리 영상들을 British Pathé 유튜브 채널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지구본 만들기 영상 <Globe Making: How the World is Made(1955)>
페이스 파우더 만들기 영상 <Mixing Face Powder: Retro Cosmetics>(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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