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은 젊은 작업자들이 모여 만든 새로운 타입의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이다.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사진작가 103팀의 사진 1,000여 점이 걸린다. 독특한 점은 작품에서 제목이나 작가 같은 정보를 일체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으로 우리는 사진을 가장 순수하고 흥미롭게 만나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 참여 작가들의 작품들

자세한 방식은 이렇다. 관객은 입구에서 입장권(3,000원)을 사고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오로지 이미지에만 집중하여 작품을 감상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구매권(5장/3만 원, 10장/5만 원)을 사고 사진 번호를 체크리스트에 적는다. 작품 감상이 끝나고 스토리지룸으로 이동하면 구입한 사진과 해당 사진의 정보(작가, 스테이트먼트, 캡션)가 담긴 팩을 받을 수 있다. <더 스크랩>은 모든 작품을 동일한 인화방식(C-print)과 크기(A4)로 판매하며, 판매 수익금은 103명(팀)의 참여작가가 1/n로 나누어 갖는다.

참여 작가는 총 103팀. 이 정도 숫자면 국내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이 대부분 참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은 대부분 미술, 영상, 사진, 텍스트 같은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VISUALSFROM, 노상호, 박의령, 이강혁, 이차령, 이윤호, 표기식 같은 <인디포스트>에서 다룬 작가들 이름도 여럿 보인다. 강홍구, 노순택처럼 묵직한 시선으로 역사의 흐름을 기록하는 작가들도 다수 참여했다.

▲ 이미지와 텍스트를 스크랩 형식으로 무작위 진열한 <더 스크랩> 홈페이지
"사진에 찍힌 순간은 보는 이가 그 순간 속으로 지속을 읽어 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사진에서 의미를 찾아낼 때 우리는 이미 그 위에 과거와 현재를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 존 버거, <말하기의 다른 방법> 중에서


순간을 포착했으나 지속성을 가진 사진을 소유한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더욱이 괜찮은 사진을 발견했더라도 가격에 망설였던 사람들에게 이 전시가 주는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더 스크랩>은 작가들 스스로 만든 작은 경험의 연속이다. 젊은 작업자는 관객과 만나는 새로운 경로를 직접 만들고, 관객은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가 담긴 사진을 보고 만지는 시간. 이것이야말로 <더 스크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은밀한 기쁨 아닐까.

 +TIP. <더 스크랩> 홈페이지에는 '사진'이라는 주제로 작가들의 글을 엮은 'THE SCRAP TAB(TEXT)'이 실려있다. 존 버거, 발터 벤야민, 무라카미 하루키, 수잔 손택 같은 유명 작가들뿐만 아니라 <더 스크랩>에 참여하는 박정근, 김희천, 이기원, 김주원, 노순택, 유리와 같은 작가들의 글과 인터뷰도 살펴볼 수 있다. 미리 읽고 참여하면 ‘사진’이라는 예술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시 2016.12.27~12.29
시간 11:00~20:00 (29일은 21:00까지)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9길24
홈페이지 http://the-scra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