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나태주 시인은 뒷모습을 이렇게 정의했다. 영화에서 인물의 뒷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만큼 묵직한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연출적 선택인 경우가 많다. 세세한 감정과 함께 인물을 감싸고 있는 세계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영화 속 뒷모습들을 소개한다.

 

<불야성>

<불야성> 오프닝

한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카메라는 이제 관객의 것이 되어 이 남자의 뒤를 계속 따라간다. 남자는 골목을 유영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하거나, 손을 흔들거나, 반가운 눈짓을 주고받는다. 수상한 돈 가방을 받기도 한다. 남자가 살아가는 세계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 한마디의 대사 없이 카메라가 그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동안 충분히 표현된다. 1998년도에 개봉한 영화, <불야성>의 오프닝 장면이다.

<불야성> 포스터

이 영화는 마피아들의 거리에서 장물아비로 살아가는 ‘류젠이’(금성무)가 살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그는 대만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약육강식의 세계를 온몸으로 헤쳐 나간다. 류젠이의 ‘뒷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던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상징한다. 영화에는 유독 걷는 장면과 뒷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악의 길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때론 결의에 찬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안에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처연함과 슬픔 또한 얼핏 담겨 있다.

서바이벌의 세계에서 적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누가 칼을 들이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은밀하고 나약한 부분일 수밖에 없는 뒷모습. 그래서인지 카메라는 심각한 상황일 때마다 뒤로 빠져 선이 굵고 강인한 그의 얼굴이 아닌 그의 등을 자꾸만 비춰준다. 악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뒷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듯이.

 

 

<로제타>, 그리고 <스틸 플라워>

이토록 슬프고 강인한 소녀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1999)의 ‘로제타’(에밀리 드켄)와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2015) ‘하담’(정하담)의 뒷모습은 비슷하다. 이 소녀들의 공통점은 어떤 삶에서도 절대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때론 누군가를 배신하더라도, 배신당하더라도, 등을 구부리고 눈물을 흘릴 때가 있어도, 그들은 결국 일어난다. 그렇기에 이 둘의 뒷모습은 묵직하다.

<로제타> 스틸컷

<로제타>는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십 대 소녀, 로제타가 자신을 둘러싼 차가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로제타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살기 위해, 친구 ‘리케’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그렇게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로제타>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

로제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 가장 격정적인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의 표정 대신 뒷모습을 담는다. 하지만 로제타가 리케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설 때, 관객들은 그제야 눈물에 젖은 얼굴을 보게 된다.

<스틸 플라워>에는 하담의 뒷모습이 가득하다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 속, 하담의 모습도 비슷하다. 가출 청소녀인 하담은 오로지 살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러 다닌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하담을 받아주는 곳이 없다. 절박한 하담에게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찾아오지만, 그 기회는 어이없는 이유로 다시 빼앗긴다. 영화는 갈 곳 없는 하담의 뒤를 따라간다. 그저 따라갈 뿐이다. 흔들거리며, 때로는 그녀와 보폭을 맞추며.
박석영 감독은 카메라의 시선은 곧 인간의 시선이라고 이야기하며, 누군가의 격정적인 슬픔을 담아낼 때 ‘감히’ 그 모습을 가까이서, 로직으로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스틸 플라워> 스틸컷

로제타와 하담. 우리가 그들의 감정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그들의 뒷모습. 딱 그 정도 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슬프지만 강인한 그 모습만으로 충분하다.

 

 

<엘리펀트>

<엘리펀트>에서 카메라는 학생들의 뒤를 따른다

마지막으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엘리펀트>(2003)를 소개한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유독 학생들의 뒷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카메라는 감독과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여 학교의 학생, 한 명 한 명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렇게 따라간 인물들의 뒷모습 너머로, 관객들은 이 학생들의 장래희망과 희망, 사랑 그리고 ‘죽음’을 목격한다.
영화 <엘리펀트>는 목격의 시선을 담고 있다. 영화는 내러티브가 가질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최대한 절제하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을 재현된 현실 안으로 초대한다. 관객은 사건이 벌어진 그 16분 동안 그 학교 학생이 되어 너무나 평범한 하루에 일어난 그 비극을 목격한다. 비극과 죽음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 평범한 학생들은 몇 번의 총성 소리와 함께 스러진다.

<엘리펀트> 스틸컷

<엘리펀트>는 이 한없이 약하게만 느껴지는 생명의 무게에 ‘뒷모습’을 더하면서, 그 죽음에 무게를 더한다. 관객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아이들의 뒷모습과 그를 둘러싼 세계의 이면을 목격하면서 형용할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스크린 안에 살아 있는 저 아이들이 부디 살아남기를 기도하며.

 

 

나태주 시인 <뒷모습>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누군가의 ‘진심’을 알고 싶을 때 뒷모습을 보자. 감춰진, 혹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타인의 표정과 세계가 열릴 것이다.

 

 

메인 이미지 <엘리펀트> 스틸컷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