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배우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고 하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알고 그걸 계속 잘 해내는 배우, 그리고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며 모험하는 배우. 그렇다면 스즈키 료헤이(鈴木亮平, Suzuki Ryohei)는 분명 후자일 테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다채로운 얼굴을 짚어봤다.

 

<변태 가면> 변태 슈퍼 히어로

HK 変態仮面 | 2013 | 감독 후쿠다 유이치 | 출연 스즈키 료헤이, 시미즈 후미카, 무로 츠요시, 야스다 켄

<변태 가면>은 스즈키 료헤이 배우 인생에 한 획을 그은 영화다. 또한 그가 모든 역할에 얼마나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범상치 않은 부모님을 둔 ‘교스케’(스즈키 료헤이)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현장에 뛰어든다. 변장을 하려고 가면을 쓴다는 게 아뿔싸, 실수로 여자 속옷을 뒤집어 써버린다. 그런데 그 순간, 평범했던 교스케의 몸에 슈퍼 히어로의 힘이 솟구친다.

‘변태 가면’ 캐릭터는 도무지 상상조차 쉽지 않은 역할이지만, 스즈키 료헤이가 진지하게 펼치는 연기를 보고 있자면 어느새 희한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심지어 그는 노출 많은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몸 만드는 데도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고. 15kg가량 체중을 늘린 후 지방을 다시 빼서 근육만 남은 몸을 완성했다.

<변태 가면> 예고편

 

<도쿄 트라이브>
분노에 찬 우두머리 feat. 힙합

Tokyo Tribe | 2014 | 감독 소노 시온 | 출연 스즈키 료헤이, 영 다이스, 세이노 나나, 소메타니 쇼타, 쿠보즈카 요스케

그렇지 않아도 독특한 스타일로 이름난 감독 소노 시온, 그가 만든 영화 <도쿄 트라이브>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거의 모든 대사가 랩으로 구성되어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미래 도쿄의 모습을 그린다. 그곳엔 몇 개의 구역이 존재하며, 구역마다 다른 지배 집단이 있다. 시부야에 ‘사루’, 가부키초에는 ‘기라기라 걸즈’, 네리마에는 ‘네리-마더 퍽커’…. 그리고 영화의 중심이 되는 장소 부쿠로에는 ‘부쿠로 우롱즈’가 있고, 이곳의 리더 ‘메라’를 스즈키 료헤이가 연기했다.

어떤 구역에도 속하지 않고 평화를 노래하는 집단 ‘무사시노 사루’의 ‘카이’(영 다이스)를 증오해 없애려는 메라. 영화는 메라와 카이의 대결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솔직히 말해 스토리라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만큼 기상천외하게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도, 스즈키 료헤이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저는 러브 앤 피스 같은 헛소리를 증오합니다”라며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을 드러낼 때도, 천이 많이 모자라 보이는 속옷만 입고 랩을 내뱉을 때도, 그는 한 치의 어색함 없이 완벽하게 메라가 된다.

<도쿄 트라이브> 예고편

 

<내 이야기!!>
열정 가득 순수 소년

俺物語!! | 2015 | 감독 카와이 하야토 | 출연 스즈키 료헤이, 나가노 메이, 사카구치 켄타로

일본에서 2015년 개봉한 영화 <내 이야기!!>가 2018년 4월 12일 마침내 국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스즈키 료헤이의 독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는 개성 강한 외모를 가진 소년 ‘타케오’를 연기하며 쉴 틈 없이 스크린을 누빈다. 많은 사람이 ‘고릴라’라고 부르는 타케오는 선한 마음씨를 가졌으나 외모 때문에 늘 오해를 부르는 캐릭터. 스즈키 료헤이는 누구도 자신을 좋아해 줄 리 없다고 믿어왔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고 마는 소년 타케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스즈키 료헤이는 답답할 만치 어리숙한 얼굴부터 사랑에 벅찬 표정까지 모두 소화하는 천생 배우다.

덧붙여 스즈키 료헤이는 이 영화를 찍기 전 출연한 드라마 <천황의 요리사>에서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역을 맡아 20kg을 감량했다. 이후 바로 <내 이야기!!>에 캐스팅된 그는 거구 타케오를 연기하기 위해 한 달 만에 30kg을 불렸다. 뼈를 깎는 노력 덕분일까? 영화는 원작 만화와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는 평을 들으며 화제를 모았다.

<내 이야기!!> 예고편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아아, 하야사카 상!

東京タラレバ娘 | 2017 | 연출 나구모 세이이치 | 출연 요시타카 유리코, 에이쿠라 나나, 오오시마 유코, 사카구치 켄타로, 스즈키 료헤이

2017년 방영한 10부작 드라마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는 결혼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구는 인물이나, 전개 곳곳에서 드러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등 보기 불편한 지점이 분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스즈키 료헤이의 연기를 말할 때 이 드라마를 빼놓긴 아쉽다. 앞서 소개한 작품들이 스즈키 료헤이가 얼마나 강렬하고 특색 있는 배우인지를 알려준다면,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는 그가 ‘무난한 역할’을 어떻게 소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스즈키 료헤이가 연기한 ‘하야사카 테츠로’는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심심한 인물. 특색 없이 단정한 옷차림, 어떤 일에든 발 벗고 나서는 성실함…. 인간으로서는 장점이 맞는데, 드라마 속 캐릭터라면 눈길을 끌기 쉽지 않은 역할이다. 심지어 함께 등장하는 남자 배우가 금발로 염색한 사카구치 켄타로라면 더더욱.

그러나 스즈키 료헤이는 언제나처럼 꼼꼼히 배역을 탐구했고, 하야사카만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주인공 ‘린코’(요시타카 유리코)가 술에 취해 노래 부르는 신에서 스즈키 료헤이는 과하게 몸을 흔들며 손뼉 친다. 하야사카가 조용하고 진중한 캐릭터인 만큼, 손뼉 치는 연기만으로 그가 린코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드러낸 것. 이 작품에서 스즈키 료헤이는 눈빛이나 몸짓, 미소 등을 섬세하게 활용해 제 역할의 존재감을 확실히 한다.

영화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예고편

스즈키 료헤이는 장르나 배역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따라가 본다 해도, 이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또렷이 남는 단 하나의 사실, 스즈키 료헤이가 어떤 배역이든 깊게 연구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배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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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