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none’이라는 영상제작팀이 있다. 윌 호프만(Will Hoffman), 다니엘 메가던트(Daniel Mercadante) 그리고 줄리우스 메토이어(Julius Metoyer III)로 이루어진 미국의 영상제작팀이다. 대표작으로는 비메오에서 인기를 끌었던 <Words>와 <Symmetry> 등이 있다. 이렇게까지 설명을 들었음에도, ‘Everynone’이라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단어를 이리저리 뜯어봤음에도 도무지 이들이 누군지 모르겠다면?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 Everynone이라는 영상제작팀은 2008년 결성된 이후 5년 조금 넘게 활동하고 사라졌으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영상팀을 굳이 이렇게 소개하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짧은 기간 동안 Everynone이 만들어놓은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다. 누군가는 영상으로 시를 쓴다고도 말하고, 누군가는 우리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다고도 말하는 Everynone만의 스타일. 앞으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의 영상을 이대로 모르고 지나가기엔 너무도 아깝지 않은가. 지금부터 Everynone이 만들었던 작품들을 하나씩 곱씹어보자. 아마 영상을 보다 보면 그들의 짧았던 활동이 못내 아쉬워질지도 모른다.

 

 

<Symmetry>


다니엘 메카던트와 윌 호프만은 고등학교 때 하버드에서 영화 관련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처음 만났다. 그 뒤 윌 호프만이 연출 수업에서 줄리우스 메토이어를 만나면서 셋은 팀을 결성하게 된다. “한 명의 경험보다는 세 명의 경험이 더 강력하다”는 믿음으로.

셋 중 윌 호프만이 유독 발이 좀 넓었던 모양인지 윌 호프만의 친구이자 ‘Radiolab’의 사회자인 Robert Krulwich가 함께 콜라보할 것을 제안하면서 Everynone은 여러 영상들을 제작하게 된다. Radiolab은 뉴욕시에 있는 WNYC라는 공영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과학과 철학에 관한 라디오 프로그램이었고, 이들의 콜라보는 Radiolab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다루면 그 주제로부터 영감을 받은 영상 클립을 Everynone이 제작해 홈페이지와 비메오에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제작하게 된 영상이 <Symmetry> <Words> <Moments> 등이다. 그중 <Symmetry>가 2012년 Vimeo Award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Everynone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물론 <Symmetry>만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작품인 <Words>는 2011년 구겐하임에서 열렸던 ‘Youtube Play 비엔날레’에서 상영되는 영광을 누린다. 매일 비메오와 유튜브에 올라오는 그 막대한 양의 영상들을 알기에 Everynone이 누린 영광이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막대한 자본이나 거대 기업의 지원 없이 Everynone의 작품들은 특유의 개성만으로 온라인 속 수많은 영상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Everynone <Words>
Everynone <Moments>

아마 <Symmetry>뿐만 아니라 <Words> <Moments>까지 연이어 보고 나면 그 개성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감이 올 것이라 장담한다. 물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Everynone마저도 자신들의 작품을 다큐멘터리도, 픽션도, 실험영화도 아닌 그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영상이라고 표현하곤 했으니까. 그들의 목표는 삶을 있는 그대로 포착해서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과연 Everynone의 영상을 보다 보면 <Symmetry>처럼 화면분할의 형식을 하고 있든, <Words>처럼 단어로 시작해서 단어로 끝나든, <Moments>처럼 순간들을 모아놓았든 3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영상에서 긴 여운을 느끼게 된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상만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Losers>


<Losers>는 왕따와 괴롭힘에 관해 Everynone이 만든 영상. 하지만 왕따나 괴롭힘에 대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다큐멘터리라 해야 할지 단편영화라 해야 할지, 아니면 공익광고라 해야 할지 명확하게 어떤 장르라 규정짓기도 애매하다. Everynone의 다른 영상들과 마찬가지로 <Losers> 역시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고 어딘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Everynone은 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고등학교에 가서 학교의 거의 모든 아이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왕따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Everynone이 세운 목표 두 가지. 영상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상 속 아이들을 보면서 비웃고 싶은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도록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그 모순을 느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하는 것. 덕분에 <Losers>는 교훈을 강요하지도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왕따와 괴롭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이 영상은 당시 비메오와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는데 Everynone의 다른 영상들과 마찬가지로 영상 자체만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Everynone은 한 인터뷰에서 “요즘 같은 시대에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행복한 점은 웹상에 작업물을 업로드하는 것만으로 대중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상은 웹에 올라감과 동시에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숨을 쉽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Everynone 같은 팀이 다른 시대도 아닌 비메오와 유튜브의 시대에 등장해준 것은 우리에게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푸르덴셜의 ‘Day one’ 광고 캠페인

이토록 개성 넘치고 뛰어난 영상제작팀을 기업과 광고회사들이 가만히 놔둘리 없는 건 당연한 이치. Everynone은 <Symmetry>와 <Words>의 유명세에 힘입어 광고 회사로부터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의뢰받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광고 쪽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Everynone은 이윽고 2012년 푸르덴셜과 함께 작업한 ‘Day One’ 캠페인으로 칸 광고제 통합부문 금상을 거머쥐기에 이른다.


‘Day One’은 제목 그대로 은퇴한 사람들이 말하는 은퇴 첫날의 이야기. 모두가 은퇴에 관해 이야기하고 은퇴 후 계획을 세우지만 평생 하던 출근을 하지 않는 그 첫날은 막상 어떤 기분일지, 무엇을 하게 될지 아무도 생각해본 적 없지 않던가. 그래서 푸르덴셜은 수천 명의 사람에게 은퇴 첫날을 기록하도록 했고, Everynone은 전국을 다니며 이들의 이야기를 찍어 짧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자칫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교훈적일 수도 있는 내용임에도 Everynone의 연출 덕분에 광고는 솔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냈고, 푸르덴셜은 은퇴와 노후에 관련해 믿음직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Day One’ 역시 Everynone의 특징을 보여주는 ‘광고스럽지 않은 광고’이자 ‘다큐스럽지 않은 다큐’다. 광고 영상 쪽으로 옮겨가서도 Everynone의 장점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Prudential ‘Day One’ – Linda 편

 

 

Dove의 ‘Camera Shy’ 광고


그다음 해인 2013년, Everynone의 영상은 또 한 번 칸 광고제의 선택을 받는다. 이번엔 필름 부문 금상.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오랜 기간 캠페인을 계속해오던 Dove는 2012년, 대부분의 여성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숨으려고 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린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보여주기를 꺼리지 않는데 대체 언제부터 여성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 숨기 시작하는 것일까? 이 의문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는 Everynone과의 작업을 거쳐 이윽고 광고로 완성된다. Everynone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숨기는 여성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 광고 아이디어에 이보다 적합한 영상제작팀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Everynone 그 후

이렇게나 시적인 영상들을 뚝딱 만들어내던 Everynone은 왜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걸까. 아쉬운 마음에 그들의 근황을 찾아보다가 한 가지 반가운 사실을 발견했다. Everynone이라는 팀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Everynone의 구성원이었던 세 명은 여전히 영상을 만들고 있다는 것. 다니엘 메가던트는 아내 Katina Mercadante와 함께 ‘The Mercadantes’라는 팀을 결성해 페이스북은 물론 Dick’s 스포츠용품점, 애플 등의 광고영상을 만들고 있었다. 윌 호프만과 줄리우스 메토이어 또한 트리오가 아닌 듀오로 남아 ‘MJZ’라는 유명 프로덕션을 대표하는 광고감독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2015년에는 다니엘 메가던트가, 2018년에는 윌 호프만과 줄리우스 메토이어가 미국 감독협회가 선정하는 광고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Everynone 팀의 실력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제는 이들이 작업한 영상에서 Everynone만의 개성을 찾기란 어려워졌다. 그래도 희미한 흔적은 조금이나마 느껴진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비록 Everynone이라는 팀이 없어진 건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Everynone을 거름 삼아 이들이 얼마나 더 멋진 감독들로 커나갈지 왕년의 팬으로서 기대를 걸어본다.

Will Hoffman과 Julius Metoyer III가 만든 Ford의 광고 ‘Go Further’
Daniel Mercadante가 만든 Dick’s Sports Goods의 브랜드 필름 ‘the Contenders’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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