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르륵,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감정은 스며든 것일까. 처음 눈을 마주쳤던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주고받던 대화 속에서였을까. 알싸하게 손끝을 스치던 그 찰나의 순간 때문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사람이 과연 이 사람이 맞는 것일까. 두근거리는 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 눈앞의 상대방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것은 그저 다 스스로가 꿈꾸는 환상이 아닐까….

마음이 처음 생겨나고 피어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이런 순간들을 경험한다. 이러한 연애 감정이란 때로 정신병 같기도 해서, 폭풍 같은 감정들이 몰려오고 지나간 자리의 뒷수습을 하는 날들 동안 스스로가 마치 어떠한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냥 좋기만 한 관계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고, 하물며 우리의 평범한 관계 속에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현재 시점에서는 더더욱 우리가 겪는 그 모든 과정들은 실제로 ‘재활치료’가 맞을지 모르겠다는 확신이 들기도 한다.

처음 마음을 품었을 무렵 느꼈던 봄바람과도 같은 온화한 감정을 그저 이 세상 끝까지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되돌아봐도 처음의 그 빛나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최초의 감정들만을 생각하며 잘못된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스스로를 마냥 희생하는 것 역시도 옳지 않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를 지켜낼 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결국 눈앞의 상대방을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올바른 길이므로.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욕망을 느끼고 마음을 주는 일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끝끝내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한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죄를 물을 수는 없다.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한 과오투성이의 인생이지만, 다시금 어느새 스스로도 모르게 봄의 새싹과도 같이 새롭게 피어나는 감정들을 느끼고 있을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길 원하며, ‘끌리는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몇 개의 노래들을 골라보았다.

 

Garden City Movement

Via timeout

가든 시티 무브먼트(Garden City Movement)는 2013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기반으로 결성된 ‘Chill’한 사운드의 3인조 일렉트로니카 밴드다. 2013년 발매한 두 번째 싱글 <Move On>이 피치포크에 소개되고,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파스텔 빛 색감이 인상적인 짧은 단편 영화와도 같은 동명의 뮤직비디오가 2014년 이스라엘 MTV 시상식에서 최우수뮤직비디오상(Best Music Video)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Garden City Movement ‘Move On’ MV

Garden City Movement ‘She's So Untouchable’ MV

‘Move On’과 2016년에 내놓은 ‘She’s So Untouchable’ 뮤직비디오에서 눈에 띄는 유사한 공통점은 등장인물들이 '어린 10대 소녀’라는 점과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부분이다. 하지만 가든 시티 무브먼트의 가볍고 경쾌한 사운드와 어우러지는 뮤직비디오에서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연애로서 그들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밴드는 뛰어난 완성도의 뮤직비디오에 대하여 각각의 뮤직비디오의 감독이자 유명한 이스라엘 출신의 배우이며, 자신들의 친구이기도 한 마이클 모쉬노프(Michael Moshonov)와 젊은 이스라엘 여군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했던 패션 포토그래퍼 마얀 톨레다노(Mayan Toledano)의 공으로 돌리며, 결과물에 대해 자신들의 공이기보다는 뛰어난 창작자들과의 협업 덕분이라고 말한다.

 

Seoul

Via ixdaily

서울(Seoul)은 2015년 데뷔음반 <I Become A Shade>를 발매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캐나다 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하는 엠비언트 드림팝 밴드다. 팀명 'Seoul' 때문에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밴드 서울의 멤버들은 한국의 서울에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Seoul'이라는 이름이 주는 단어적인 뉘앙스가 마음에 들었으며, 서울이라는 발음이 영어단어 ’영혼(Soul)'과도 유사하게 들리는 점이 외면적이기보다는 내면적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밴드의 스토리텔링 성향과도 맞아 팀명을 지었다고 설명한다.

Seoul ‘Stay With Us’ MV

하지만 2013년 내놓은 첫 뮤직비디오 ‘Stay With Us’의 배경이 도쿄라는 점에서도 미루어 보건대, 그들이 아시아에 대하여 어떠한 환상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번잡스러운 도쿄의 지하철 안에서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취해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는 한 소녀의 모습은 밴드 서울이 추구하는 ‘내면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와 닿게 만든다.

Seoul ‘White Morning’ MV

2014년에 내놓은 ‘White Morning’ 뮤직비디오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라는 오래된 프랑스 영화 제목이 꼭 어울릴 듯한 느낌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현재라기보다는 근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한 새하얗고 황폐한 느낌의 거대한 도시에서 권태롭게 지내던 소년과 소녀가 마침내 서로를 만나게 되지만, 결국 어쩌면 그것조차도 하나의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스토리는 뮤직비디오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울의 몽환적인 음악과 더불어 무척이나 멜랑꼴리한 감정에 빠져들게 만든다.

 

Wolf Alice

Via eardrummusic

울프 앨리스(Wolf Alice)는 2010년 앨리 로셀(Ellie Rowsell)과 조프 오디(Joff Oddie)가 어쿠스틱 듀오로 활동하던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드러머 조이 아마이(Joey Amey)와 베이시스트 테오 앨리스(Theo Ellis)가 합류하여 완성된 영국 출신의 4인조 밴드로, 최근 들어 찾아보기 힘든 얼터너티브 그런지록의 명맥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Wolf Alice ‘Fluffy’ MV

흥미롭게도 그들은 밴드의 히스토리를 활용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는데, 2015년 발매한 정식 데뷔 음반 <My Love is Cool>의 마지막 트랙 ‘Fluffy’ 뮤직비디오에는 어쿠스틱 듀오이던 그들이 새로운 멤버들과 합류하면서 그런지록 밴드로 변화하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Wolf Alice ‘Don't Delete the Kisses’ MV

그리고, 2017년 두 번째로 발매한 정규 음반 <Visions Of A Life>에 수록한 'Don't Delete the Kisses’는 여전히 그런지록풍의 하드함과 파워풀한 에너지가 담겨있지만, 보다 더 섬세하고 서정적이면서 댄서블한 사운드로 완성되었으며, 프론트 우먼 앨리 로셀이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후렴구에서의 시원하게 내지르는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매우 중독적인 느낌을 준다. 뮤직비디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인 영국의 튜브(Tube)에서 한 연인이 사랑에 빠지고, 다툼이 일어나고, 다시 서로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연애의 한 시절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Sufjan Stevens

Via diymag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며 2018년 제90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Best Original Song’ 부문 후보에 오른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뮤지션으로,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지만, 일렉트로니카, 바로크 팝, 오케스트라 세션 등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음악적인 시도를 하여 소위 ‘힙스터의 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 평론계에서 인정받는 뮤지션이다.

자신이 살던 도시 시카고를 테마로 한 <Illinois>(2005) 앨범,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와 계부를 테마로 한 <Carrie & Lowell>(2015) 앨범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표현하는 방식의 송라이팅을 주로 선택해왔던 수프얀의 음악들은 감미로우면서도 명상적인 인상을 주는데, 그뿐 아니라 6집 <The Age of Adz>(2010)를 통해 경쾌하면서도 강렬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활용 역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Sufjan Stevens <Carrie & Lowell (Live)>

다양한 장르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수프얀의 모습을 감상해보고 싶다면, 그의 첫 번째 라이브 앨범 <Carrie & Lowell (Live)>(2017)으로 발매된 2015년 11월 9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의 공연 실황 영상을 추천한다. 어떠한 위화감도 없이 자신만의 광활한 음악 세계를 이리저리 오가는 수프얀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다가, 마지막 반전(!)을 장식하는 예상치 못한 장르의 앵콜곡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Sufjan Stevens ‘Mystery of Love’

최근 국내에서 수프얀 스티븐스의 인지도를 높인 것은 단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사운드트랙 'Mystery of Love’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위한 오리지널 스코어이기도 한 이 노래는 원작소설인 안드레 애치먼의 <그 해, 여름 손님>을 수프얀이 읽고 난 후 작업했다고 한다. 또한 분명한 말보다는 미묘하게 오가는 서로의 눈빛과 손길들로 많은 부분들이 채워져 있는 영화의 빈자리를 등장인물들의 모호한 대사보다도 오히려 명확하게 표현해주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1절 부분에서는 사랑의 환희를 노래하다가, 2절 부분에서는 사랑의 고통과 상실감을 노래하는 대조적인 가사로 사랑의 양면성을 묘사하여 영화 속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사랑에 빠져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수프얀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사운드는 한여름의 꿈 같은 러브스토리의 에센스를 그대로 함축한 듯한 느낌을 준다.

Sufjan Stevens ‘Visions of Gideon’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Visions of Gideon’은 지난 사랑을 추억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주인공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의 4분여간의 얼굴 클로즈업 장면 내내 흘러나오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심장을 무너트린다.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보컬 멜로디와 함께 피아노 소리를 활용한 엠비언스와 다양한 전자음이 어우러지는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것은 전부 다 허상인가요?(Is it a Video?)’라는 가사는 제목에서 언급되는 '기데온(Gideon)’이라는 성경에서 신을 보았다고 전해지는 유대인을 영화 속 주인공인 엘리오와 겹쳐지게 하며, 지난 사랑이 정말로 존재하였는지, 그 순간들은 어쩌면 꿈이 아니었는지,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서 누구나가 품게 되는 자연스러운 혼란과 의문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이, 다시 누군가에게 끌리고, 마음을 주거나 받고, 환상을 품고,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하겠지만.-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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