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없는) 초상> 展. 독특한 제목은 ‘예술가 초상’과 ‘예술가 없는 초상’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괄호 하나로 정반대의 뜻이 되는 이 제목을 통해, 예술가를 담은 사진의 흐름과 변화를 짚어볼 수 있다. 크게 3부로 구성된 전시를 차례대로 따라가다 보면 예술이 그려온 궤적을 알아챌 것이다.

 

1부 ‘지금, 여기의 예술가 초상을 묻다’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 (없는) 초상>전 전경사진 – 구본창 ©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사진 김상태

1부에서는 예술가란 여기에도, 저기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익숙한 얼굴의 배우나 가수는 물론이고 클럽 안 이름 모를 댄서와 거리의 예술가…. 딱 떨어지게 정의할 수 없는 예술가들이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살아 있다.

구본창, <김완선(Kim Wan-sun)>(199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66x100

이 섹션에는 사진가 구본창과 오형근이 찍은 작품을 전시한다. 스트레이트 사진(인위적 가공을 배제한 사진)이 주를 이뤘던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 구본창은 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구본창의 구도는 간결하고 색감은 정제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본창이 찍은 뮤지션, 배우, 문인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김완선, 채시라, 배두나, 박완서, 한강 등 반짝이는 능력을 가진 예술가들은 그의 프레임 안에서 어떤 모습일까.

오형근, <귀를 다친 아이, 럭키 클럽 앞(Boy with His Ear Hurt, in front of Lucky Club)>(1993), 아카이벌 피그먼트, 124x155

오형근은 예술가를 둘러싼 빛과 어둠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는 1990년대부터 <광주 이야기> <미국인 그들> 등의 연작을 선보이면서 한국의 특정 공간, 집단의 표상을 담아왔다. 그가 찍은 트위스트 김, 신 카나리아의 초상은 키치적 감수성을 대표한다.

 

 

2부 ‘예술가는 있다/없다’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 (없는) 초상>전 전경사진 – 육명심 ©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사진 김상태

2부는 도발적인 제목에서 느껴지듯 예술가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섹션이다. 예술가라는 의미와 역할이 확장되는 지금도 전통적 의미의 예술가가 여전히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사진가 주명덕이 찍은 미술가의 초상, 육명심이 찍은 문인들의 초상 옆에는 그들이 창조한 작품 일부를 함께 전시했다. 우리는 그들의 초상과 작품을 함께 만나면서, 시대와 인간에 대해 질문하는 예술가들과 그 작품에 담긴 속내를 생각하게 된다.

주명덕, <예술가 시리즈(이불)>(1987), 빈티지 프린트, 35.5x27.9

주명덕은 내면세계와 사회 고발적인 시선을 동시에 보여주는 한국 1세대 현대 사진가다. 그는 1960년대부터 한국의 사회적 풍경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사진을 선보였다. 이후 서울시립아동병원, 차이나타운 등 많은 이가 조명하지 않는 공간을 찍으며 모순적인 사회상을 고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찍은 <예술가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예술가의 절제된 감정이 사진 너머 전해지는 순간을 경험할 기회다.

육명심, <예술가의 초상(박경리)>(1981), 젤라틴 실버 프린트, 47x31.4

육명심은 사진가로 활동하기 전에 중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해외 사진 이론서를 번역해 한국에 소개하고, 사진을 연구한 저서를 출간하며 한국 현대 사진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다. 마음으로 피사체를 느끼고, 피사체의 내적 초상을 남아내는 사진가 육명심.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1970년대부터 작업한 <예술가의 초상> 연작을 만날 수 있다. 오래도록 쌓아온 작품인 만큼 박경리, 피천득 등 굵직한 자국을 남긴 예술가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 (없는) 초상>전 전경사진 - 박경리의 방 ©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사진 김상태

 

 

3부 ‘우리 모두의 예술가’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 (없는) 초상>전 전경사진 – 박현두 ©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사진 김상태

3부에서는 우리 삶과 아주 가까운 사진과 젊은 사진가를 만날 수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인스타그램 같은 SNS 덕분에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이 시점에 활동하는 젊은 사진가들에게 예술이란 한 가지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전시된 젊은 사진가들의 사진은 예술 정의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천경우, <Face of Face-1>(201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0x115

사진가 천경우는 감도 낮은 필름에 장시간 빛을 노출시켜 피사체의 움직임을 사진 한 장에 쌓아 올린다. 그래서 그의 사진엔 순간이 아니라 ‘한동안’이 담겨있다. 사진 위 드로잉은 모델이 된 젊은 배우들이 눈을 감고 제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것. 이는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자신과 스스로 본 자신 사이 간극을 상기한다.

박현두, <Goodbye Strangers #08>(2013), 디지털 C-프린트, 240x180

사진가 박현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길을 잃은 이방인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는 장소의 기존 특성에 어울리지 않게 인물을 배치한다. 이를 통해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된 현대인의 초상을 조명한다.

정경자, <Speaking of now_01>(2012),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100x100

사진가 정경자는 주변 모든 것을 자연스레 흘러가고 소멸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감정이 투영되는 순간을 찍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Speaking of Now>는 정경자가 투병 중인 친구와 함께한 시간 동안 기록한 결과로, 그의 사진 세계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

김문, <철산4동인_Cheolsan4dong 3156976671511>(2017), 유니크 포지티브 필름, 25.4x20.32

이번 전시에서 사진가 김문의 <철산4동인전> 연작을 만날 수 있다. 철산4동에 사는 사람들의 초상을 찍은 이 작품은 알고 보면 더 흥미롭다. 주민 스스로 사진 배경을 선택하게 하고, 대형 카메라로 단 한 장만 찍어 남겼기 때문이다. 김문은 주민의 사진과 더불어 그들의 이야기 역시 수집한다. 개발되는 신도시 이면에 자리한 철산4동의 의미를 그곳에 사는 자의 관점에서 규정하기 위해서다.

 

 

장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일시 2018.03.20~2018.05.20
시간 화~금 10:00~20:00, 토/일/공휴일 10:00~18:00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휴관)
관람료 무료

 

메인 이미지 구본창, <김완선(Kim Wan-sun)>(1992)

 

Editor

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