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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의 미국은 공황과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우면서 스윙 재즈로 인기를 누리던 빅밴드는 하나둘 해체되고 소규모 비밥 콤보가 이를 대체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편성의 블루스를 연주하거나 대세로 떠오른 비밥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한 할리우드 영화음악을 시도하면서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빅밴드가 있었다. 플루트와 색소폰을 연주하며 부드러운 음색으로 노래했던 다재다능한 뮤지션, 우디 허먼이 리드한 ‘우디 허먼 오케스트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화 <Laura>(1945)의 유명한 주제곡
후반부에 우디 허먼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우디 허먼은 당시 라이벌이었던 밴드 리더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나 아티 쇼(Artie Shaw)와 비교해 음악적인 재능에서 그들을 능가하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뛰어난 리더십과 탤런트 스카우터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끊임없이 음악 현장을 돌아다니며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새로운 트렌드에 귀를 기울였고, 덕분에 그의 주위에는 참신하고 재능있는 뮤지션과 어레인저들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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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Brothers’을 발표할 당시의 멤버 구성(좌로부터 스탄 게츠, 주트 심즈, 알 콘, 서지 찰로프)은 가장 인기를 끌었다

라이벌 빅밴드들이 해체될 무렵에도 그의 밴드(사람들은 그의 밴드를 ‘Herd’라고 불렀다)는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그는 1946년 갑자기 밴드를 해산하고 음악계를 떠났다. 부인의 약물 중독이 악화되어 곁에서 보살피기 위해서였다. 언론에서는 이로써 빅밴드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며 아쉬워했다. 이듬해 그는 다시 밴드를 재건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젊고 걸출한 색소폰 연주자들을 대거 고용했다. 스탄 게츠(Stan Getz), 알 콘(Al Cohn), 주트 심즈(Zoot Sims), 진 애먼즈(Gene Ammons) 등 후일 정상급에 오른 실력파들이 우디 허먼의 두 번째 빅밴드 출신이며, 이를 ‘Second Herd’ 또는 ‘The Four Brothers Band’라 불렀다.

우디 허먼 오케스트라 2nd Herd의 ‘Four Brothers’(1947)

The Four Brothers Band란 별칭은 당시 밴드의 어레인저였던 지미 쥐프리(Jimmy Giuffre)가 네 명의 걸출한 색소포니스트에 맞춘 ‘Four Brothers’란 곡을 작곡한 데서 유래했다. 이 노래는 테너 색소폰 3명과 바리톤 색소폰 1명에 맞춰 코러스와 솔로, 그리고 다시 하드밥 코러스로 마무리하는 구성으로, 밴드를 대표하는 곡이자 재즈 스탠더드로 널리 알려졌다. 1978년에는 4인조로 구성된 최초의 재즈 아카펠라 그룹 맨해튼 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가 ‘Four Brothers’에 가사를 붙인 버전으로 리바이벌하여 앨범 <Pastiche>(1978)에 수록하였다.

맨해튼 트랜스퍼 ‘Four Brothers’ Live

‘Four Brothers’는 지금도 다수의 관악기가 편성된 재즈 빅밴드의 필수 레퍼토리에 포함된다. 경쾌하고 힘찬 멜로디와 함께, 솔로와 코러스를 함께 살려주는 구성은 재즈 팬들의 사랑을 받는 요소다. 우디 허먼은 신진 아티스트를 계속 기용하며1980년대까지 ‘The Young Thundering Herds’라 불린 빅밴드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낙점을 받아 재즈 뮤지션으로 성공한 신예들은 그를 ‘Road Father’라 불렀다. 그의 어레인저로 일하며 ‘Four Brothers’를 작곡한 지미 쥐프리는 색소폰 연주자와 작곡가로 명성을 떨쳤고 1970년대부터는 뉴욕대와 뉴잉글랜드 음악대학에서 재즈 교육자로 활동했다.

뉴욕 재즈 하모닉의 ‘Four Brothers’ 연주(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