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대신 뜨개질>

The Knitting Club│2015│감독 박소현│출연 나나, 주이, 빽│98분

사회적기업인 국내 모 여행사에 다니는 ‘나나’, ‘주이’, ‘빽’. 이들은 회사 초창기 멤버로 4~5년간 열심히 회사를 일구어 왔다. 하지만 반복되는 주말 근무와 야근에 치여 살다 문득 이러한 생활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다. 야근 대신 다른 재미난 일을 모색하던 이들의 첫 시도는 다름 아닌 뜨개질. 헌 티셔츠를 잘라 만든 실로 뜨개질을 해서 도시를 알록달록 물들이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야근 대신 뜨개질’ 멤버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모임 날짜를 정해 어떤 날은 옥상에서 또 어떤 날은 사무실에 둘러앉아 뜨개질을 한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직장 동료들은 뜨개질을 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쉴 틈 없이 손을 움직이며 한바탕 웃기도 하고 가끔 심각해지기도 하는 대화 속에는 제법 무거운 주제들이 녹아 있다. 뜨개질이 계속될수록, 대화는 도시의 노동자로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현안까지 폭을 점차 확장해 나간다. 

마침내 완성한 뜨개질이 세상 밖으로 나갈 시간. 장소는 유동 인구가 많은 영등포역 앞 버스정류장이다. 멤버들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설렘과 부푼 기대를 안고 작업물을 설치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버스정류장 길목에 걸린 뜨개질 작품들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 비에 젖어 거리에 나뒹굴고, 사람들은 지나가며 그 위로 무심히 쓰레기를 버린다. 사람들에게 작게 나마 웃음을 주자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유머 없음’으로 허무하게 끝이 났다. 첫 번째 프로젝트 이후 멤버들은 별 다른 계획 없이 그저 바쁘게 일상을 살아간다. 그 틈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기업의 고충과 직원들의 갈등이 보인다. 직원 회의에서 대표는 회사가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어쨌든 수익을 창출해야 하며, 사실상 인원을 현재의 반으로 줄여도 상관없고, 다른 여행사와 비교해 상품 가치를 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느 날, 나나는 3월에 예정된 임금 협상이 5월로 미뤄지자 1:1 면담을 통해 상사에게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회사 측으로부터 정확한 이유도, 사과도 들을 수 없었던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부당한 행위에 맞서기로 한다. 그는 청년 유니온 단체에 찾아가 노동자법을 듣고, 근로기준법 강의를 하는 사람을 회사로 초청하여 동료들이 수업을 듣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회사 밖에서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앞두고 광화문광장의 유가족을 만나 직접 뜨개질한 노란 리본을 선물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한편 회사는 자금난에 어쩔 수 없이 희망 퇴사를 내걸고 인원 감축에 들어간다. 지금보다 더 희생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 결국 나나는 오랜 세월 몸담은 직장을 스스로 관둔다. 주이도, 빽도 이내 그만 두기로 한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건 뜨개질이다. 멤버들은 지하철에서도, 세월호 유가족이 있는 천막에서도 묵묵히 뜨개질을 계속한다. 쓸모 없는 천을 잘라 첫 코를 뜨고, 또 다른 천과 이어 조금씩 완성된 형태로 나아가는 행위,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누군가의 몸을 따뜻하게 덥히고 상처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이들이 꿈꾸는 연대와 닮아 있다.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에서 노동환경과 삶은 자신과 주위를 돌볼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공공의 가치와 혁신을 강조하는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는 규모를 키워가며 보다 안정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지만, 과연 일하는 사람들도 개인의 사회적 가치를 발현할 수 있을까? 회사 내 의사결정 구조에서 쉽게 배제되고 주변화되는 것이 여성의 현실이다.

뜨개질에는 실패가 없다고 한다. 엉키면 다시 풀면 되니까, 그저 용기만 내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들은 ‘야근 대신 뜨개질’을 선택하고 이를 시작으로 자신을 둘러싼 문제의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던 뜨개질을 연대 활동으로 만들었다. 일상의 변화를 통해 점점 더 삭막해지는 노동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야근 대신 뜨개질>은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타인과의 연대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비록 프로젝트는 실패했어도 그들이 연대하는 방식은 뜨개질의 패턴처럼 계속해서 이어질 것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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