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온 봄은 야속하게도 눈부신 햇살과 생동하는 봄기운만을 전해주지 않는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아름다운 꽃잎과 백해무익한 미세먼지가 공존하고, 짧은 화창함을 채 즐기지도 못한 채 곧 여름이 찾아오는 것이 우리네 현실의 봄이다. 마치 그런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봄을 맞아 개봉해 우리 삶 가까이 위치한 리얼한 고통과 이야기를 전하는 세 편의 작은 영화들을 소개해본다.

 

<소공녀>

감독 전고운 | 출연 이솜, 안재홍, 강진아, 김국희, 이성욱, 최덕문, 김재화, 조수향 | 개봉 2018.03.22

각기 모양과 사연은 다를지언정 우리 시대 젊은 세대 다수에게 일맥상통하는 현실의 각박함은, 누군가에게는 역설적이게도 미래와 무관하게 현재에 충실하게 하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해낼 안정된 집과 직장에 대한 간절한 꿈과 노력을 낳게 했다.

<소공녀>는 바로 그와 같은 차가운 현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 나선다. 한 모금의 담배와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존재만으로 만족한다는 주인공 ‘미소’(이솜)의 뚜렷한 주관이나, 그런 그가 결국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고생하는 모습, 동시에 주변인들의 안정된 삶 뒤에 감추어진 상처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현실적인 공감과 비현실적인 상상 사이에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짓게 된다.

영화 <소공녀> 예고편

이 영화는 <족구왕>, <범죄의 여왕> 등으로 독립영화의 가능성과 저력을 보여준 ‘광화문 시네마’의 작품이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첫선을 보인 후 CGV아트하우스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관객상을 거머쥐며 이 영화 속 이야기가 억지스러운 판타지가 아닌 많은 이에게 공감받는 우리네 일상이자 몽상임을 증명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감독 이광국 | 출연 이진욱, 고현정, 서현우, 류현경, 김예은, 문창길, 서영화, 정은경 | 개봉 2018.4.12

만일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마저 상처받고 버림받는다면? 독특한 제목의 이 영화는 <소공녀>의 미소보다 더욱 가진 것 없고 소극적인 주인공 ‘경유’(이진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안부를 건넨다.

영화 타이틀은 과거 우리 속담 속 무서운 존재의 대명사인 ‘호랑이’를 대신해 작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법한 순간들을 담담하고도 쓸쓸하게 묘사한다. 주인공 경유는 영문도 모른 채 동거하던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았고, 경력 한 줄이나 재산 한 푼 가진 것 하나 없이 일자리 하나 변변하게 구하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그런 경유에게 그가 그토록 꿈꾸던 소설가가 되어있는 전 애인 ‘유정’(고현정)이 나타나고, 경유의 일상은 유정의 접근으로 더욱 혼란에 빠진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예고편

영화는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했다는 뉴스의 이야기가 경유의 이야기와 교차되며 진행된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호랑이의 존재는 사실 누구나 두려워하고 그 등장에 대비해야 할 존재다. 그러나 막상 현실의 위기는 우리가 대비하고 예상한 곳에서 닥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같은 무서운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비단 경유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눈꺼풀>

감독 오멸 | 출연 성민철, 이상희, 강희, 이지훈 | 개봉 2018.4.12

<눈꺼풀>은 사건을 겪은 당사자와 주변인들은 물론, 그것을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과 크나큰 상처를 남긴 4월의 기억을 매만진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또 생생히 느끼듯이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사건은 이미 지났다고 해서 끝나버린 것이 아닌, 지금도 살아 숨 쉬는 현재의 고통이다.

죽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들른다는 어느 섬에 한 노인이 살고 있다. 이 섬은 바다에서 죽은 이들을 편안히 인도하기 위해 씻김굿이 벌어지는 장소이고, 노인은 떡을 만들어 망자들을 대접하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 커다란 폭풍이 몰아치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섬에 찾아온다.

<눈꺼풀> 예고편

기나긴 산문시와도 같은 영화의 지독히도 노골적인 은유 앞에서 우리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외면할 수도 잊을 수도 없다. 허나 <눈꺼풀>의 비통한 감정은 굳이 곪은 상처를 건드려 덧내는 애꿎은 손찌검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함께 느끼고 반복하여 되새겨야 할 제의 그 자체다. 같은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위안해주는 일 말이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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