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너의 이름은.>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진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극사실적인 배경 묘사다. 기차역, 학교, 빌딩 같은 도시의 지형지물은 물론 인물들이 소지한 휴대폰, 먹고 마시는 초콜릿과 맥주캔 따위 실제 존재하는 제품을 고해상도 카메라로 찍은 듯 정밀하게 그려낸다. 현지에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속 장면과 실제 장소 사진을 비교하는 컷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언뜻 봐서는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섬세하다.

<언어의 정원> 장면과 실제 사진을 비교해본다. 어떤 것이 애니메이션이고 어떤 것이 사진일까
<너의 이름은.> 배경이 된 장소를 원정 순례한 컷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진짜 매력은 판타지에 있다. 마치 세 개의 태양이 쏟아내는 듯 화면 가득 뿌려진 찬란한 빛, 파란 하늘을 수놓는 뭉게구름, 설렘과 두근거림을 담뿍 담은 반짝이는 소년 소녀의 눈동자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하염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인 것만 같은 환상을 선사한다. 신카이 마코토가 그려내는 이 맑고 투명한 ‘착각’이 꿈처럼 아름답게 투영된 대표작과 단편들을 살펴보자.

 

<초속 5센티미터>

秒速 5センチメ-トル ㅣ 2007 ㅣ 목소리 출연 미즈하시 켄지(토오노 타카키 역), 하나무라 사토미(스미타 카나에 역)

2007년 작 <초속 5센티미터>는 신카이 마코토란 이름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영화는 ‘타카키’라는 소년의 중학생 시절 첫사랑을 다룬 ‘벚꽃 이야기’, 늘 먼 곳으로 향하는 타카키의 시선을 좇으며 짝사랑을 키워가는 소녀 ‘스미다’의 이야기인 ‘우주 비행사’, 공허를 안고 살아가는 어른이 된 타카키가 우연히 첫사랑 ‘아카리’와 마주치게 되는 ‘초속 5센티미터’까지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벚꽃 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속도를 뜻하는 제목이 시사하듯 영화는 대화보다는 독백으로, 빠른 전개보다는 주변의 아름다움을 찬찬히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소 느리지만, 첫사랑의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운 속도를 구현해냈다는 측면에서는 더없이 충실한 연출일지도.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ㅣ 2013 ㅣ 목소리 출연 이리노 미유(타카오 역), 하나자와 카나(유키노 역)

여름 장마가 시작된 어느 날, 한 소년과 한 여자가 일본식 정자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소년은 구두 장인을 꿈꾸는 15세 고등학생 ‘타카오’. 비가 내리면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오전 수업을 빼먹고 이 공원에서 구두 스케치를 한다. 그때마다 그곳에서 맥주에 초콜릿을 먹고 있는 여자는 사실 타카오가 다니는 학교의 고전 문학 선생으로, 거짓 스캔들에 휘말려 출근을 거부하고 있다. 고독한 소년 타카오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유키노는 점차 서로에게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초콜릿과 맥주는 미각 장애를 앓는 유키노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맛으로, 개봉 당시 이 둘을 묶어 ‘유키노 세트’라는 이름을 붙인 프로모션 상품이 인기리에 판매되기도 했다.

<언어의 정원> 예고편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your name. ㅣ 2016 ㅣ 목소리 출연 카미키 류노스케(타키 역), 카미시라이시 모네(미츠하 역), 나가사와 마사미(오쿠데라 미키 역), 이치하라 에츠코(미야미즈 히토하 역)

천 년 만에 혜성이 다가오는 일본을 배경으로 먼 곳에서 다른 삶을 살던 소년과 소녀가 서로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운명을 깨달으며 시작되는 러브 스토리. SF, 사춘기 소년 소녀, 첫사랑 같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기’를 한데 모은 작품이다. 내적으로도 기대를 모았지만, 외적으로는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많은 대표작에서 작화 감독을 맡은 안도 마사시의 영입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출은 물론 그림, 편집, 각색, 원화, 때로는 성우까지 혼자 도맡아 한다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거의 유일하게 취약한 부분으로 일컬어지던 작화 파트였기 때문. ‘전설’과 ‘레전드’가 만난 덕분인지 이미 일본에서 1,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제42회 LA비평가 협회상 애니메이션상 수상,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7% 기록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우리 나라에서는 2016년 개봉여 관객수 360만을 돌파했다.

<너의 이름은.> 예고편

 

+ 신카이 마코토 단편 들여다보기                                                      

<크로스 로드>(2014)

<너의 이름은.>은 꿈속에서 몸이 자꾸 뒤바뀌는 도시 소년 ‘카피’와 시골 소녀 ‘미츠하’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내용인데, 이 설정은 이미 비슷하게 쓰인 적이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곳에서 미래를 위해 각자 분투하고 있는 소년과 소녀. 대학 합격 발표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들은 사실 같은 대학을 목표로 똑같은 학습지로 공부하고 심지어 똑같은 패턴으로 문제를 푸는 ‘소울메이트’였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이 단편은 사실 일본의 한 학습지 CF이다. 찬란한 빛, 소울메이트, 대학생활… 지금 당장 가입 신청서를 쓴다 해도 누구도 당신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단편 <크로스 로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1999)

혼자 각본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성우 역할까지 하며 완성한 이 4분 49초짜리 데뷔작으로 신카이 마코토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선명하게 이름을 올린다. 독신 여성이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한 뒤 맞이하는 소소한 일상을 계절의 흐름과 맞물려 담담하게 그려냈다. 작품의 화자는 사람이 아닌 수컷 고양이. 고양이만의 사생활과, 고양이가 바라보는 주인의 사랑스러움, 고독, 슬픔, 의지 같은 감정들이 일상의 온도와 소리 안에 아름답게 채워진다. 고양이를 키우든 그렇지 않든, 꼭 한 번 봐야 할 명작이다.

단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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