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게임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의 무서운 얼굴,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끔찍한 살육의 현장.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이 게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극단적인 장면 없이도 공포를 충분히 재현한다. 그리고 그 공포 안에는 슬픔, 허탈함, 욕망 등의 갖가지 감정이 함께 스며들어 있다. 공포의 장르를 넓혀준 세 가지 게임을 소개한다. 무서운 사진은 없으니 걱정 마시라!

 

1. 러스티 레이크: 루츠

<러스티 레이크: 루츠> 트레일러

‘제임스 밴더붐’이라는 남자가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고, 가문이 남긴 저택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의 가정을 이룬다. 하지만 이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문의 비밀이 숨겨져 있고, 그의 가족들은 그 저주의 씨앗을 품은 채 살아간다. <러스티 레이크> 시리즈 중의 하나인, 게임 <러스티 레이크: 루츠>는 이 밴더붐 가족이 겪는 기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게임이 집중하는 것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원초적 공포가 아닌, 인간의 비결정성과 욕망 자체에서 오는 미스터리함이다. 게임을 진행하는 유저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전개 방식에 놀라게 되고, 다음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음에 긴장하게 된다.


<러스티 레이크: 루츠>는 ‘방 탈출 게임’과 비슷하게, 제시되는 여러 가지 퍼즐과 퀴즈를 풀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식을 띤다. 그러나 전개되는 방식은 유저들의 예상 범위를 항상 뛰어넘는다. 시체의 젖꼭지를 연타하면 그 안에서 심장이 발견되거나, 사람이 흘린 코피를 사용해서 편지를 쓰는 등의 ‘이상한’ 일들이 게임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하지만 이 게임이 전하는 공포는 바로 이러한 비결정성에서 파생된다. 욕망 그 자체에 매몰된 사람들이 자행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게임은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게임의 세계관에 맞춘 ‘기괴한 은유’로 넌지시 속삭인다.
그렇기에 게임이 진행될수록, 유저들은 이 세계관에 기꺼이 순응하게 되고, 게임이 전하는 은유적 공포에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한다.

 

 

2. 어몽 더 슬립

<어몽 더 슬립> 트레일러

<어몽 더 슬립>은 독특한 공포게임이다. 게임의 진행방식이 독특한 것이 아니라 게임 설정 자체가 독특하다. 대부분 공포 게임의 화자가 어른이라면, <어몽 더 슬립>의 화자는 2살 갓난아기다. 유저들은 아기의 시점에서 그 몸을 움직여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것과는 또 다른 두려움이 게임 안에서 진행된다. 
요람에서 벗어난 아기는 자신을 인도해주는 곰 인형, ‘테디’를 따라 어딘가로 사라진 엄마를 찾아 나선다. 둘은 현실을 벗어난, 꿈결 같은 이상한 세계를 여행하게 되고 알 수 없는 괴물을 피해 여러 흔적들을 따라간다. 갓난 아기의 몸으로 괴물을 막을 수는 없다. 게임 유저들은 작은 몸을 컨트롤하여 장롱, 침대 밑 같은 곳에 괴물을 피해 숨어야만 한다. 이 작은 생명이 마주해야 하는 잔인한 세상의 진면목이 환상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다.


아기의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계속해서 암시하는 아기의 그림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이 ‘세계’는 무엇인지. 게임을 하면 할수록 비밀의 베일은 서서히 벗겨지고, 유저들은 결국 아기가 가지고 있는 슬프고 무서운 비밀을 알게 된다.
아기를 둘러싼 현실은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그림자 괴물 못지않게 잔인하고, 유저들은 어떤 원초적 공포보다 더욱 막막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몽 더 슬립>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오는 공포다.

 

 

3. 더 울프 어몽 어스

<더 울프 어몽 어스> 트레일러

게임 <워킹 데드> 제작진이 만든 호러게임 <더 울프 어몽 어스>는 동화 캐릭터에 현실을 가미하여 만들어 낸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게임에는 미녀와 야수, 백설공주, 빨간 망토와 나무꾼 등등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동화 속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어딘가 심각하게 뒤틀려 있고, ‘happily ever after’로 압축되는 행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다. 이 아슬아슬한 긴장감 끝에, 마을에는 기이한 살인사건마저 일어난다.
동화에서 흔히 악당으로 등장하는 늑대가 이 마을에서는 ‘빅비’라는 이름의 보안관이 되고, 그는 이 이상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며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마주하는 동화마을의 정체는, 현실 세계의 이면을 똑 닮았기에 더욱 슬프고 무섭다.


마치 미국 카툰 시리즈가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그래픽과 더불어, 차근차근 사건들이 쌓여가고 베일이 풀려가는 게임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유저들에게 새로운 공포를 심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가 재현되는 방식 자체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 유저들은 캐릭터 간의 대화를 통해 다음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 선택은 곧 엔딩의 갈래를 가르고 게임의 진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따라 부여되는 긴장감 또한 매력적이다. 특히나 엔딩 스토리가 커다란 충격으로 유저들을 놀래준다고 하니, 이 부분은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세 게임은 모두 한국어로 플레이가 가능하며,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게다가 <러스티 레이크> 시리즈는 모바일 앱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기에 많은 유저들이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공포도 물론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복합적이고 흥미진진한, 새로운 ‘두려움’을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