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차지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에서 주인공 ‘엘라이자’와 양서류 인간(Amphibian Man)을 시종일관 괴롭히던 연구소의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를 기억하는가? 줄거리상 뻔히 그 행동이 예측되는 전형적인 악당이었지만, 위압적일 만치 큰 키에 항상 불만에 가득 찬 듯 일그러진 표정, 냉혹하고 거침없는 행동력 등 광기 어린 카리스마와 연기로 주인공 못지않은 인상을 남겼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이전에 <맨 오브 스틸>(2013)의 조드 장군으로 활약했고, 앞으로 박찬욱 감독이 연출할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통해서도 만나게 될 마이클 섀넌의 대표작을 돌아보며 그가 연기한 매력적인 불안들을 살펴본다.

<맨 오브 스틸> 스틸컷
슈퍼맨 못지않은 힘을 지닌 슈퍼맨의 숙적, ‘조드’ 장군으로 분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 2008 | 감독 샘 멘데스 |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케시 베이츠, 마이클 섀넌, 캐서린 한
<레볼루셔너리 로드> 스틸컷

연기 인생 초창기 연극무대와 영화 속 단역을 전전하던 마이클 섀넌은 그의 연극 주요 레퍼토리였던 <버그> 영화화 작품(2006)에 출연하면서 영화에서 활약하게 된다. 지금에 와서야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특유의 강렬한 연기와 극적 광기로 여러 감독들을 매료시킨 것. 물론 당시에도 마이클 섀넌을 알지 못했을 대부분의 대중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한 것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였을 것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스틸컷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감독 샘 멘데스는 첫 장편영화 연출작 <아메리칸 뷰티>(2000)로 아카데미 주요 부문 상을 휩쓴 최고의 인정을 받는 감독이었고, 주연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이미 <타이타닉>(1997)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당대 정상급 스타들이자 (실제로 두 배우 모두 이 작품 이후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연기력을 갖춘 이들이었다. 그러나 마이클 섀넌은 이 작품에서 단 몇 분만의 출연으로 유명 감독이나 주연 배우 못지 않은 인상을 남기며 당당히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트레일러

마이클 섀넌은 영화의 핵심이 되는 주인공 부부의 결정과 갈등, 곧 가식적 행복으로 포장된 현실에의 안주와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 사이 팽팽히 대립 사이에 끼어들어 솔직하고 날카로운 지적들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결국 문제의 본질을 자극해 갈등 폭발의 도화선이 된 것처럼 보이는 불행의 씨앗을 절묘하게 연기해냈다.

 

<테이크 셸터>

Take Shelter | 2013 | 감독 제프 니콜스 | 출연 마이클 섀넌, 제시카 차스테인, 토바 스튜어트, 쉐어 위햄, 케시 베이커, 레이 맥키넌, 케이티 믹슨, 리사 게이 해밀튼
<테이크 쉘터> 스틸컷

이후 마이클 섀넌은 <테이크 쉘터>에서 단독 주연을 맡아 다시 한번 놀라운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을 불안에 빠뜨린다. 영화는 성실한 남편이자 평범한 아버지였던 주인공이 어느 날부터 폭풍에 관한 악몽을 매일 꾸더니, 그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조금씩 미쳐가는 모습을 그린다.

<테이크 쉘터> 스틸컷

마이클 섀넌은 평화로운 아버지의 얼굴에서 출발해 점차 정신적으로 피폐해가고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불안을 쌓아가다가,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변하고 급기야 막무가내로 터져 나오는 모습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연기한다.

<테이크 쉘터> 예고편

한편으로 마이클 섀넌이 연기한 <테이크 쉘터> 속 아버지 ‘커티스’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스트릭랜드’의 광기가 인상적인 것은 그것이 마냥 분별없는 광기나 폭력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사명감 및 부성애라는, 나름대로 현실에 그 논리가 실재하고 내재하기도 하는 잠재성으로부터 비롯된 불안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스맨>

The Iceman: the true story of a cold-blooded killer | 2013 | 감독 아리엘 브로멘 | 출연 마이클 섀넌, 위노나 라이더, 크리스 에반스, 제임스 프랭코, 레이 리오타, 데이비드 슈위머, 로버트 다비, 스티븐 도프
<아이스맨> 스틸컷

급기야 영화 <아이스맨>에서 마이클 섀넌은 아예 순박한 로맨티스트이자 가족을 아끼는 아버지, 동시에 사람을 죽이고 협박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냉혹한 살인자의 이중성을 오가는 실존 인물 ‘리처드 쿠클린스키’를 연기한다.

<아이스맨> 트레일러

<아이스맨>이라는 제목은 섀넌이 연기한 주인공 쿠클린스키를 일컫는 이명이다. 결혼을 했고 지켜야 할 가족이 있으면서도 마피아의 총부리 앞에서 잃을 것 없는 사람인 양, 차갑게 구는 모습을 보여 마피아에게 스카우트된 그. 그러나 범죄자를 다루는 이야기의 익숙한 구조가 보통 그렇듯 결코 평탄하게 흘러갈 리 없다. 더군다나 주인공은 이중생활을 하는 캐릭터이고, 심지어 언제나 불안한 삶을 연기하는 마이클 섀넌이 주연이다! 이 실화 바탕의 이야기 또한 아이스맨과 그의 가족 보란 듯이 위기가 닥친다.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 2016 | 감독 톰 포드 | 출연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 마이클 섀넌, 애런 존슨, 아일라 피셔, 엘리 뱀버, 아미 해머, 칼 글루스맨
<녹터널 애니멀스> 스틸컷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함께 마이클 섀넌에게 유일하게 아카데미 조연상 노미네이트를 안긴 <녹터널 애니멀스>(2016)에서는 폐암 선고를 받고 살 날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년의 형사 역할을 맡아 이전과 조금 다른 상황과 에너지를 지닌 인물을 연기한다. 허나 이 작품에서조차 그는 평범하게 지혜로운 노인이 되기보다 세상에 대한 피로를 쏟아내는 주인공의 조력자답지 않은 조력자 역할을 맡아 특유의 매력적인 불안을 과시했다.

<녹터널 애니멀스> 트레일러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네이버 파워블로그를 수상했고,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아주경제> 신문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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