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L. 잭슨(Samuel L. Jackson)이 그동안 출연한 영화의 흥행 수익을 합해 보면 영화 역사상 다른 어떤 배우도 능가하지 못할 최고의 액수를 기록할 것이다. 그는 1981년 33살이라는 이르지 않은 나이에 영화 <레그타임>(1981)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뎌, 오늘날 100편이 훌쩍 넘는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명실상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일찍이 1972년부터 연극계의 단역을 거치며 연기 활동을 펼쳤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도 활동도 보이지 못하던 그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정글 피버>(1991)에 출연하며 괄목할 만한 연기로 같은 해 칸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는다. 이후 <펄프 픽션>(1994), <다이하드3>(1995), <재키 브라운>(1997)과 같은 인상적인 작품들을 거쳐,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스터 원두’, <어벤져스>의 ‘닉 퓨리’ 등 굵직한 블록버스터로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선악의 구분 없이 다양한 진폭을 오간다.

특히 사무엘 L. 잭슨은 그간 마니아 성향이 도드라진 B급 코드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며, 능청스럽고 잔혹하지만 왠지 별로 밉지 않은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병맛스럽게’ 쿨한 그의 B급 영화들과 언급할 만한 그의 명연기를 다시 훑어본다.

 

<펄프 픽션>의 터프한 흑인 갱스터 ‘줄스’

1994년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독특한 블랙코미디로, LA 암흑가 갱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사무엘 L. 잭슨은 이 영화에서 갱스터 ‘줄스 윈필드’ 역을 맡았다. 조직을 배신한 양아치의 집에 쳐들어가 햄버거와 사이다를 폭풍 흡입한 뒤, 밑도 끝도 없이 성경 구절을 읊으며 총을 꺼내 상대를 제거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사무엘 L. 잭슨을 할리우드 스타로 만들어준 또 다른 인생작으로, 그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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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브라운>의 영악한 무기 밀매상 ‘오델 로비’

쿠엔틴 타란티노가 사무엘 L. 잭슨과 함께한 두 번째 영화 <재키 브라운>. 경쾌한 필치로 범죄 세계를 묘사한 엘모어 레너드 작가의 소설, <럼 펀치>를 원작으로 했다. 범죄 세계에 연루된 스튜어디스가 경찰과 범죄조직 사이에서 절묘한 트릭을 부려 양쪽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줄거리의 이 영화에서 사무엘 L. 잭슨은 수다스럽고 폭력적이며 완전히 제멋대로인 무기 밀매상 ‘오델 로비’로 분해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때론 능청스럽고 더러는 냉혹하지만, 왠지 별로 미움은 가지 않는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를 더할 나위 없이 연기한 사무엘 L. 잭슨에게 그해 베를린영화제가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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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의 무자비한 악당 ‘옥스퍼드’

<씬 시티>(2005), <300>(2007)의 원작자 프랭크 밀러가 감독한 영화 <스피릿>. 1940년 만화가 윌 아이스너에 의해 창조된 슈퍼 히어로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가상도시 센트럴 시티를 무대로, 가면을 쓰고 도시의 야경꾼으로 활동하는 '스피릿'이 범죄와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무엘 L. 잭슨이 맡은 역할은 스피릿의 숙적인 악당 ‘옥토퍼스’. 초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캐릭터다. 교활하고 음흉하며 도덕적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소시오패스 옥토퍼스는 사무엘 L. 잭슨이 갖고 있는 독특하고도 지독한 악당 이미지와 겹쳐지며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킹스맨>의 독보적 악당 캐릭터 ‘리치몬드 발렌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의 ‘닉 퓨리’ 국장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던 차에 <킹스맨>은 사무엘 L. 잭슨의 새로운 면모와 신선한 연기를 보여주는 좋은 영화가 됐다. 뻔한 스파이물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비튼 이 영화에서 사무엘 L. 잭슨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력가이자, 글로벌 기업을 운영해 각광받는 천재적 인물 ‘리치몬드 발렌타인’으로 분했다. 발렌타인은 거대하고 사악한 계략을 꾸미고 실행에 옮길 만큼 거침이 없으면서도 정작 피 한 방울도 보지 못하거나, 힙합 패션을 고수하고 ‘맥도날드’ 해피밀 세트를 즐겨 먹는 등 순수성과 악마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 사무엘 L. 잭슨은 이 괴짜 같은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 들어 양극단의 얼굴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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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쌓아 놓은 이미지의 적절한 활용, <킬러의 보디가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 세계 최고의 보디가드 ‘마이클 브라이스’(라이언 레이놀즈)가 지켜야 할 사람은 그의 목숨을 수십 번이나 노렸던, 현상수배 1순위 킬러 ‘다리우스 킨케이드’(사무엘 L. 잭슨). 영화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증인으로 채택된 킨케이드를 재판까지 무사히 데려가기 위해 보디가드가 동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역동적인 터치로 그린다. 두 사람은 권총 대신 입으로 액션을 하듯 쉴 새 없이 떠들고 싸우는데, 이미 B급 히어로물 <데드풀>(2016)을 통해 멈추지 않는 수다 본능을 자랑한 라이언 레이놀즈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맞장구를 치는 사무엘 L. 잭슨의 구강 액션은 B급 코드 유머의 진가를 확실히 살려낸다. 올해로 만 71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의 고강도 액션신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 그의 면모를 영화를 통해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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