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거장의 일생에는 종종 공통으로 발견되는 성공 스토리가 보인다.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정규 음악 교육이라고는 받은 적이 없고 우연히 가족에게서 선물로 받은 악기로 독학으로 연주법을 터득한다. 집안의 생계를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서서히 실력을 드러낸다. 천재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음악업계 관계자가 찾아와 그의 연주에 탄복하고, 음반을 내면서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한다. 뒤늦게 명성을 얻고 가족을 부양할 만한 돈을 벌지만 갑자기 생을 마감하게 되고, 그의 음악은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스토리에 딱 맞아 떨어지는 거장 중 한 명이 바로 재즈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1923~1968)다.

웨스 몽고메리 연주 영상 중 가장 유명한 ‘Round Midnight’

연주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엄지손가락으로만 기타 줄을 퉁기며 옥타브가 다른 같은 음계를 동시에 연주하면서 이전의 기타리스트와는 다른 코드와 스타일로 연주를 했다. 12세 때 형으로부터 네 줄 기타를 받아 홀로 연주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여섯 줄의 정규 기타를 친 것은 20세가 되어서였다. 이웃에게 시끄러울까 봐 피크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연습했고, 그 덕분인지 그의 연주는 부드럽고 블루지하다. 웨스 몽고메리는 악보 읽는 데 서툴러서 그의 우상 찰리 크리스챤(Charlie Christian)의 음반을 들으며 독학으로 기타를 마스터했다. 라이오넬 햄프턴의 순회 밴드에 고용된 것도 찰리 크리스챤의 솔로를 똑같이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향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로 돌아와서는 매일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클럽에서 연주하는 고된 일상을 이어 나갔다.

영국 TV 방송국에서의 ‘Here’s That Rainy Day’ 연주 실황(1965)

인디애나폴리스에 천재 기타리스트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애덜레이(Adderley) 형제가 그곳의 재즈 클럽 미사일룸(Missile Room)을 방문해서 그의 연주를 직접 들었다. 형제로부터 전해 들은 리버사이드 레코드(Riverside Records)의 프로듀서 오린 킵뉴스(Orrin Keepnews) 역시 인디애나폴리스로 달려왔다. 빌 에반스, 캐논볼 애덜레이를 발굴한 명프로듀서였던 그는, 웨스 몽고메리의 연주를 듣고는 바로 25개 세션의 레코딩 계약을 맺었다. 리버사이드와의 두 번째 음반 제목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웨스 몽고메리의 놀라운 재즈 기타)처럼 그의 연주력은 놀라운 수준이라고 평가되었다. 이제 그는 부인과 일곱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생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웨스 몽고메리의 초기 명반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1960)

그의 레코딩 경력은 9년으로 짧았으나 ‘웨스 몽고메리’라는 이름은 재즈 기타 그 자체일 정도로 후대의 기타리스트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래리 코리엘, 조지 벤슨, 리 릿나워, 팻 매스니 등 후대의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하나같이 그의 주법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래리 코리엘은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토로했고, 리 릿나워는 그에게 ‘Wesbound’란 곡을 헌정했다. 팻 매스니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재즈 기타를 시작하자마자 그의 음반을 계속 들으면서 엄지손가락 주법과 옥타브 주법을 똑같이 따라 하려고 했다. 그가 사망한 해인 1968년 캔자스시티 재즈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그를 직접 만난 적도 있다. 그의 친필 사인은 지금도 내 방에 걸려있다. 그때 나는 13세였다.”며 자신의 영웅에 대해 회고했다.

웨스 몽고메리 ‘Blues in F’(1965)

그는 자신을 발굴한 리버사이드가 파산하자 버브(Verve)와 A&M으로 연이어 이적하면서 더 넓은 오디언스층을 대상으로 팝과 알앤비 취향의 음반을 출반했다. 정통 재즈 팬의 실망을 사기는 했지만, 음반들은 오히려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Goin’ Out of My Head>(1965)는 그래미 최고 재즈연주상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1968년의 어느 아침, 45세의 웨스 몽고메리는 공연에서 돌아와 인디애나폴리스의 집에서 쉬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생을 마감한다. 그는 인디애나폴리스의 재즈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고, 시내에는 그의 이름을 딴 웨스 몽고메리 공원(Wes Montgomery Park)이 그를 기리고 있다.

A&M과의 첫 앨범 <A Day in the Life>(1967)에 수록한 팝 레퍼토리 ‘Windy’
차트 상위권에 올랐으나 정통 재즈 팬에게는 실망감을 안겼다

재즈 아티스트의 미공개 음원 발매를 전문으로 하는 리조넌스 레코드(Resonance Records)가 얼마 전 그의 음반을 연이어 세 장 발매하면서 웨스 몽고메리의 이름이 다시 세간에 오르내렸다. 그중 <One Night in Indy>(2015)는 당시 인디애니폴리스에서 클럽을 운영하던 전직 사진기자가 노환으로 사망하기 전 대중에 공개한 것이라 더욱 화제가 되었고, 단 2천 5백 장의 한정판으로 제작한 LP 음반은 바로 품절되었다.

세 장의 미발매 음반 중 가장 먼저 출반된 <In the Beginning>(2012)의 발매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

 

메인 이미지 via ‘Fingersonb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