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거가 그린 스케치. ‘스페이스 자키’라는 별명으로 불려온 이 외계인의 정체는 영화 <프로메테우스>에 와서야 밝혀졌다

1979년 <에이리언(Alien)>(리들리 스콧 감독)이 개봉한 이래, 에이리언 이미지를 창조한 시각디자이너 H.R. 기거(Hans Rudolf Giger, 1940~2014)의 크리쳐(creature) 디자인은 외계 생명체에 관한 상상의 구체적인 모티프로 살아남았다. 축축한 피부와 점액질, 크롬으로 만들어진 듯 갑각류처럼 단단한 외골격, 기계처럼 묘사된 내골격과 인간 신체의 특성을 따온 사지와 움직임 등은 에이리언 시리즈 안에서 다양한 변주를 거듭했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2012)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프리퀄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기거가 디자인한 고리 모양의 우주선, ‘스페이스 자키’로 알려졌던 크리처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로 다시 등장하고, <에이리언 1>의 감독이었던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영화 <에이리언 1> 개봉 당시 포스터(좌)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공식 로고가 박힌 포스터(우)

에이리언 시리즈 중에서 1편이 가장 무서운 영화로 회자되는 이유는 “우주에서는 누구도 당신의 비명을 들을 수 없다(In space no one can hear you scream)”는 당시 홍보 문구가 함축한다. 고요한 우주를 유영하는 거대한 우주선 내부에서 들리는 것은 기계음뿐이다. 사설 우주선인 노스트로모호에 탑승한 자들은 과학자나 우주인의 전형적인 모습보다 부둣가에서 일하는 하역 노동자들의 이미지에 가깝고, 이들이 임무를 방기한 탓에 거대한 우주선 곳곳은 짙은 어둠과 적막으로 뒤덮인다. 숨 막히도록 느린 영화의 호흡 속 마침내 에이리언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공포가 폭발한다. 

에이리언 디자인의 모티프가 된 기거의 작품 <Necronom 4>

극 중에서 ‘미지의 존재’라는 의미의 ‘지노모프(Xenomorph)’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는 이 존재들은 생애주기(?)에 맞춰 제각각 다른 형태와 별명을 얻는다. 알에서 태어나 숙주에게 어린 에이리언을 목으로 꽂아 기생시키는 임무를 가진 것은 ‘페이스허거(Facehugger)’라는 이름을 얻었다. 뱀이나 전갈 같은 몸체에 사람의 긴 손가락 같은 다리로 인간의 얼굴을 안듯이 꽉 쥐고, 긴 꼬리로는 목을 휘감아 배 쪽에서 촉수를 뻗어 인간의 식도로 에이리언 유충 혹은 세포 덩어리를 삽입시킨 후 죽어버리는 크리쳐다. 에이리언 유충이 담긴 촉수가 나오는 입 부분은 여성기를 닮게 디자인되었고, 8개의 다리 끝에는 사람의 손톱 같은 형태가 부착되었으며, 꼬리는 인간의 척추나 내장기관을 닮았다. 그렇게 삽입되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인간의 배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오는 어린 에이리언은 말 그대로 ‘체스트버스터(Chestburster)’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처음에는 작은 뱀이나 장어처럼 생겨 일단 숙주의 몸에서 빠져나오면 숨어서 빠르게 성장, 곧 에이리언의 성숙한 형태를 갖추고 주변 생명체들에 대한 무차별 살육을 시작한다. 

<에이리언 1>에 등장하는 성숙한 형태의 에일리언

<에이리언 1>에서 체스트버스터의 첫 등장은 페이스허거의 공격에도 살아남은 듯 보였던 동료이자 숙주와 노스트로모호 대원들의 평화로운 식사 시간에 이루어진다. 멀쩡한 줄 알았던 숙주는 곧 경련을 일으키며 테이블로 넘어지고, 그의 피부 아래 꿈틀대던 형태가 배를 찢고 머리를 내민다. 끈적이는 분비물에 뒤덮여 갓 태어난 체스트버스터가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는 찰나의 고요함, 남성기를 닮은 그 머리 형태, 피투성이가 된 대원들의 얼굴과 테이블 위. 이 장면에 등장하는 체액, 고통과 상처, 성적 함의, 더러워진 음식과 테이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기물질의 뒤섞임은 불쾌한 악몽 같지만 어쩐지 한 번 더 살펴보고 싶게 만드는 매혹을 지닌다. 이 혼란의 중심에서 체스트버스터가 천천히 대원들을 둘러보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장면은 이후 에이리언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이 모두를 조용히 교란하고 잔인하게 도살할지 섬뜩한 예측을 하게 한다. 이 작고 혐오스러운 외계 존재가 자라서 우리가 아는 에이리언이 된다. 뒤통수를 뒤로 잡아 늘인 듯한 딱딱하고 길쭉한 두개골, 쉼 없이 투명한 침이 흘러내리는 강한 턱, 수많은 뾰족니와 퇴화한 듯 검은 구멍으로 남은 눈, 강인한 팔다리, 강산성의 혈액을 가졌다. 영화사에 길이 남게 될 최고로 인기 많은 외계 종족의 등장이었다. 

<에이리언 1> 작업 중 에일리언 분장을 살펴보는 제작진. 화면 중앙 에이리언의 골격을 살펴보는 이가 기거다

잘 알려졌듯 에이리언의 크리쳐 디자인을 맡은 기거는 정신분석학과 초현실주의 화파, 러브크래프트(H.P. Lovecraft)의 호러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화가로, 1970년대에는 자신이 출생한 스위스의 소규모 갤러리에서 종종 전시회를 하던 무명이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의 작품 속 강력한 여성 이미지의 대부분은 부인이나 연인을 모델로 하여 제작되었다. 에이리언 제작진이 기거를 발탁하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 시리즈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성전에서 이름을 따왔다. 금단과 암흑의 성전인 네크로노미콘을 주제 삼은 만큼 기괴한 이미지들이 대부분이다. 악몽과 우울, 음산함과 디스토피아적 불안 같은 고딕적 요소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간 신체의 성적인 기관들이 금속제 기계들과 맞물리는 광경이다. 성기와 성행위를 기계적 움직임과 관련시키는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고, 또 신체 외부로 향한 구멍들, 입, 코, 성기, 항문, 내장 같은 외부세계와의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기관들을 강조하는 비완결의 신체 이미지들은 그로테스크(Grotesque)의 정의에 충실한 것이다(기거의 작품에 대해 ‘기거레스크(Giger+Grotesque)’하다는 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LI 2>(1974). 기거의 ‘바이오메카니컬’ 작품 세계 속 여성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기거는 이 신체 이미지들에 사용하는 인물들의 외형을 에어브러쉬 기법으로 매끄럽고 완벽에 가까운 신체로 재현하여, 여기에 번쩍이고 잘 구성된 기계를 결합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는 주체적이기보다 기계의 잘 닦인 부속품처럼 끼워졌다. 기거가 ‘바이오메카닉(Biomechanics)’으로 창조한 새로운 세계는 그로테스크한 신체 기관 중에서도 성적 기관들을 중심으로 잘 자르고 접합한 부품의 세계다. 크툴루(Cthulhu) 세계관처럼 미지의 세계 속 절대적 힘을 가진 파괴의 신들이 스팀펑크적으로 창조했을 법한 디스토피아. 이곳에서 특히 여성들은 절대적인 아름다움, 관능과 완벽한 육체미를 가진 동시에 리얼리티나 인간성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삭제당한다. 여성의 신체에서 애브젝트(Abject) 요소, 감정적 묘사 등을 거의 배제하고 차가운 로봇처럼 만들어 전시한다. 이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은 여성 신체에 으레 덧붙여지는 모성이나 임신, 출산의 숭고와 생명력을 포함한다.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이 감독한 <에이리언 2>(1986)에서는 여왕 에이리언이 알을 출산하는 장면이 포함되었는데, 이를 두고 기거는 “천박하다”고 폄하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에이리언> 촬영장의 시고니 위버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여성의 힘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래서 더욱 묘한 쾌감을 안긴다. 70년대 후반에 시작한 이 시리즈의 히로인 시고니 위버(Sigourney Weaver)는 전형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일컬어지는 외모와는 거리가 멀고, 지금은 영화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힘과 터프함을 과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성과 거리가 멀거나 여성 신체를 기괴하게 비틀어 만든 크리쳐들, 검고 육중하며 비인간적인 에이리언의 우주선과 배경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 주인공은 더욱 부각된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 1>에서 기거가 만든 우주선(The Derelict)과 스페이스 자키(Space Jockey)의 미스터리한 형태에 관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2014년 사망한 기거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에이리언 시리즈다. 그가 빚어낸 우주선의 내부, 엔지니어들의 갑옷 등은 어느 정도 변형되었지만 주요한 모티프로서 최첨단의 시각 효과와 함께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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