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싸이(PSY)의 공연에 게스트로 등장해 함께 말춤을 추던 MC 해머(MC Hammer)는 1980~90년대의 댄스 힙합 스타였다. 싸이가 자주 입는 낙하산 바지(Parachute pants)의 원조였고 댄스 실력에서는 마이클 잭슨에게 비견되며 두 스타의 댄스를 비교한 편집 영상이 자주 유튜브에 올라올 정도다.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그가 전성기를 지날 무렵인 1996년 갑자기 1천 3백만 달러(약 160억 원)의 빚을 지고 있다며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 “It’s Hammer Time!”은 오래 가지 않은 것이다.

Arsenio Hall 쇼에서 히트곡 ‘Don’t Stop’을 부르는 MC 해머


‘해머’라는 예명은, 그가 프로야구팀 오클랜드 어슬래틱스(Oakland A’s)의 볼보이로 활동할 무렵, 팀의 강타자 레지 잭슨(Reggie Jackson)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가 전설적인 강타자 행크 에런(Hank Aaron)을 닮았다며 행크 에런의 별명 ‘The Hammer’를 따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MC 해머는 야구를 접고 다른 모든 래퍼를 ‘디스’하며 힙합계에 등장하여, 세 번째 앨범 <Please Hammer, Don’t Hurt ‘Em>(1990)으로 힙합 앨범 최초로 1천만 장의 판매고를 넘어섰다. 이듬해에는 한 해 3천 3백만 달러(약 400억 원)를 버는 슈퍼스타로 등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며 무일푼의 신세로 전락했다. 그의 엄청난 재산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어린 MC 해머, 자신과 닮은 강타자 행크 아론과 포즈를 취했다

  

2백여 명의 스태프에게 지급되는 급여

전성기 시절의 그는 2백여 명의 스태프와 수행원을 거느린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음악과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수행원이나 직원만 해도 40여 명에 이르렀고, 이들에게 지급된 비용은 월 5십만 달러(약 6억 원), 연간 80억 원이 음악과 관계없이 지출되었다. 어릴 적 8남매와 함께 자란 그는 친지들에 파묻혀 지내기를 좋아했나 보다.

‘Good to Go’와 같이 부드러운 그의 랩음악은 ‘Pop Rap’이라 불렸다

 

3천만 달러 규모의 저택

MC 해머가 살던 저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부모 아래, 형제자매 아홉 명과 함께 좁은 아파트에서 자란 그는, 일약 슈퍼스타가 된 후 어릴 적 자란 동네 인근의 언덕에 1천 5백 평 규모의 저택을 지었다. 약 360억 원이 들어간 이 저택은 수영장 2개, 녹음 스튜디오, 33석 규모의 영화감상실과 테니스 코트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집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파산과 함께 이 집을 원래 가격의 1/6 수준인 64억 원이라는 헐값에 내놓아야만 했다.

 

19필의 경주마와 경마

어릴 적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틈만 나면 경마를 보러 갔던 그는, 1991년 19마리의 종마를 구입하여 직접 경마에 나섰다.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Oaktown Stable’이라는 목장 역시 마련했다. 종마 중에는 45만 달러(약 5억 4천만 원) 상당의 ‘Dance Floor’라는 유명한 경주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경마에 참여하여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지만, ‘래퍼의 바보 같은 구매목록’(The Dumbest Rapper Purchase) 랭킹에 자주 오르기도 했다.

MTV 페스티벌에서 ‘It’s All Good’을 부르는 해머

 

전용기와 2대의 헬리콥터, 그리고 슈퍼카

그는 90년대의 힙합 스타들처럼 람보르기니와 개인 제트기, 2대의 헬기 그리고 초대형 리무진을 소유했다.

 

릭 제임스와의 표절 소송

그가 만든 히트곡들은 수 건의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그중에서도 최대 히트곡 ‘U Can’t Touch This’가 릭 제임스(Rick James)의 80년대 히트곡 ‘Super Freak’을 표절했다는 소송은 가장 뼈아팠다. 결국 표절을 인정하고 로열티의 상당 지분을 내어놓아야만 했는데, 이 금액이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

MC 해머의 최대 히트곡 ‘U Can’t Touch This’
Rick James의 ‘Super Freak’(1981)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파산 후 목회 활동을 하거나 벤처기업의 컨설턴트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MC 해머는 전성기에 방송과 언론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고, 이 때문에 그의 춤사위는 더 이상 신선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대형 음반사들이 그와의 재계약을 거절하면서, MC 해머는 온라인을 통하여 싱글을 발표하며 여전히 음악과 연예 활동을 이어가는 왕년의 스타로 남았다.

NBA 프로농구팀 디트로이트 피스턴즈의 중간 공연(2014)

 

메인 이미지 출처 'Billboard' ⓒJohn Shearer/Invision/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