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과 대량학살을 경험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심오한 고찰과 고뇌를 담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 이전의 매끈하고 인체 비율이 완벽한 조각상과는 달리 걷어내고 덜어내는 작업을 통해 철사처럼 가늘고 긴 형태의 조각상을 만듦으로써 인간 내면의 아픔을 담아내려는 확고한 예술 철학을 나타내게 된다. 그의 걸작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전쟁이 남긴 폐허와 상흔, 허무를 딛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마주하며 계속 전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느낄 수 있다. <걸어가는 사람>(청동)은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200억 원에 낙찰되면서, 이전 최고 경매가인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을 누르고 세계 경매 신기록을 세웠다. 현재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중인 <석고 원본>은 실거래가의 3배 이상 책정된 3800억 원에 이른다.

자코메티 어린 시절 가족사진, 가장 왼쪽이 알베르토 자코메티, 맨 앞의 남자아이가 디에고

이탈리아 국경에서 가까운 스위스의 작은 마을 보르고노보에서 태어난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화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스무 살 무렵 파리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 하자 적극 지원해주었다. 파리로 간 자코메티는 오귀스트 로댕의 조수 앙투안 브루델 밑에서 공부했다. 이때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에 눈을 떴으며 막스 에른스트, 파블로 피카소, 후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 등과 친분을 쌓게 된다.

 

아내 아네트와의 만남

자코메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네트. 자코메티와 아네트는 지인 소개로 만났으며, 둘의 나이 차는 22살이나 되었다. 헌신적이었던 아네트는 자코메티와 함께 사는 동안 작품의 모델이 되거나 집안일을 도맡는 등 그의 활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자코메티는 평생 아네트를 부담스러워 했으며 다른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아내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는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아내를 얻는 일이며 가장 어려운 일은 아내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네트는 묵묵히 자코메티의 7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먹고 자며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왔다.

자코메티의 모델이 된 아내 아네트
아네트와 자코메티

 

동생 디에고

7평 남짓한 작은 작업실에는 아내 외에 동생 디에고도 항상 같이 있으면서 형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디에고 역시 훌륭한 아티스트였으나 평생 형의 조수 노릇을 자처했다. 특히 전쟁 때 그는 스위스로 피난 간 형 대신 파리 작업실에 남아 형 자코메티의 작품을 지켰다. 스위스에서 자코메티가 숨을 거둘 때,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추운 날씨에 석고 작품이 얼까 염려하여 파리로 돌아가 작업실을 데운 사람도 디에고였다. 그 덕에 무사히 보존된 작품 <로타르의 흉상>은 지금 자코메티의 걸작 중 하나가 되어 엄청난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다.

아네트, 디에고 그리고 알베르토 자코메티

 

이사벨과의 만남

어느 날 자코메티는 이사벨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이사벨은 이미 여러 화가의 모델 일을 하고 있었고, 사람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 때문인지 이사벨은 자코메티에게 관심도 두지 않는다. 훗날 아네트와의 결혼 생활 중에 우연히 이사벨을 다시 만난 자코메티는 곧 그와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3개월 후에 다른 남자가 생긴 이사벨은 자코메티를 떠나고, 큰 상처를 받은 자코메티는 이사벨을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라 부르게 된다.

John Deakin이 찍은 이사벨 니콜라스의 사진
이사벨 니콜라스

 

피카소와의 관계

젊은 시절 큐비즘과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빈번히 교류했던 자코메티는 피카소와도 친분을 쌓게 된다. 오만한 성격 탓에 독불장군으로 유명했던 피카소였지만, 그는 자코메티에게서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의견 듣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영향으로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했던 자코메티는 지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지성에 피카소가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코메티는 피카소에게 성심성의껏 답변해주고 도와주었지만 피카소는 사람들에게 자코메티의 험담을 하고 다녔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자코메티는 피카소의 아들 문제에서 매우 분노하게 된다. 천재이기보다 평범한 아이였던 아들 파올로에게 아버지 피카소는 무자비했고 거칠었으며 함부로 대했다. 그는 아들 손을 잡아끌고 거리로 내몰아 아들이 구걸하게 만들었다. 그런 아들이 결국 문제를 일으켜 경찰서 신세를 지자 그제야 겨우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빼내 왔다. 이 소식을 들은 자코메티는 경찰이 잡아야 할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 피카소라며 격노하였다.

한편 자코메티와 이사벨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피카소는 이사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고 한다. 이는 자코메티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을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했던 피카소의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몇 년 동안 계속 피카소의 인간성에 실망한 자코메티는 그와 의절하고 만다. 자코메티는 피카소에 대해 ‘예술가가 아니라 천재에 불과하다’라는 평을 남겼다.

2016에서 2017년에 걸쳐 열린 자코메티와 피카소 전시 포스터 via ‘Musée national Picasso-Paris’ 

 

일본 철학자 야나이하라와의 만남

철학 공부를 위해 파리에 와있던 이사쿠 야나이하라는 장 폴 사르트르를 통해 자코메티를 만난다. 명상을 즐겨하고 준수한 외모에 지성을 갖추었던 야나이하라는 곧 자코메티와 좋은 친구가 되었다. 또한 명상으로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야나이하라는 좋은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아네트와도 좋은 친구가 되어 야나이하라, 자코메티, 아네트 세 사람이 함께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살갑지 않은 남편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하던 아네트는 친절하고 다정한 야나이하라에게 흠뻑 빠지게 되고, 둘은 연인이 된다. 이 사실을 안 자코메티는 야나이하라에게 부인을 행복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였다. 하지만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던 야나이하라는 그 후로도 자코메티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이사쿠 야나이하라
자코메티의 모델로 선 야나이하라

 

엘리 로타르와이 마지막 작업

엘리 로타르는 1964년과 1966년사이에 모델을 섰던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이다. 자코메티는 젊은 시절 잘 나가는 사진작가였으나 방탕한 생활을 하여 피폐해지고 늙은 채로 돌아온 엘리 로타르를 모델로 세운다. 자코메티는 타락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엘리에게서 오히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모든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슬픔을 로타르가 가진 특유의 시선에서 발견한 것이다. 실패한 사진작가의 강렬한 슬픔을 표현한 이 작품은 자코메티 최후의 걸작이 되었다. 그를 조각한 작품은 경매에서 엄청난 가격을 기록하며 자코메티의 안목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었다.

엘리 로타르를 딴 <흉상>(1964)
엘리 로타르와 그를 조각한 작품

 

캐롤린과의 만남

자코메티는 말년에 술집에서 만난 캐롤린에게 흠뻑 빠지게 된다. 뛰어난 미인이었던 캐롤린은 자코메티에게 영감을 주며 그의 뮤즈가 되었다. 부인과 자기 자신에게 평생 인색하게 굴었던 자코메티였지만 캐롤린에게는 보석, 스포츠카, 아파트 등 그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사주었다. 자코메티는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도 부인이 아닌 캐롤린의 손을 잡고 있길 원했으며 결국 캐롤린이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하지만 일말의 의리는 있었는지 재산의 80%는 아내 아네트에게 남기고 캐롤린에게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캐롤린
캐롤린과 자코메티
자코메티 영화 <Final Portrait>(2017)에서 캐롤린과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Dog>(1951)
말년의 자코메티
영화 <Final Portrait>에서 ‘자코메티’를 연기한 제프리 러쉬 © Parisa Taghizadeh
영화 <Final Portrait> trailer
피카소가 질투한 유일한 현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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