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이 시점에 젊은 작가들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들이 시작됐다. 신진작가의 전시는 미술계의 새로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챙겨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30대 아티스트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신진작가들의 등용문, 2018 금호영아티스트

가장 눈에 띄는 전시는 매년 이맘때 열리는 금호미술관의 ‘금호영아티스트’다. 2004년 시작한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은 35세 이하의 국내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며, 공모를 통해 신진작가를 선정하고 개인전을 개최해 그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16회의 공모를 통해 현대미술계의 신인들을 발굴해왔는데 이번 ‘2018 금호영아티스트’ 전시는 2016년에 선정된 지희킴 작가와 2017년의 선정 작가인 강호연, 우정수, 정희민 작가의 개인전으로 구성됐다. 설치, 회화, 사진, 드로잉 등 표현 방식과 매체가 각기 다르고 작업의 소재와 작품세계가 다양하니, 하나의 미술관에서 동시에 개최하는 4개의 풍성한 개인전이라 할 수 있다.

전시 전경, 정희민 작가 작품들
정희민, <두 개의 사과>


먼저 금호미술관 1층에는 정희민 작가의 회화 작품들이 전시됐다. 전시장의 넓은 벽면을 채운 크고 작은 작품들은 모두 정물 이미지다. 그런데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 공간의 정물이란 점에서 남다르다. 전시 제목인 <UTC -7:00 Jun 오후 3시의 테이블> 역시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시간이다. 전통적인 회화 기법으로 캔버스에 사물을 그렸지만 실존하지 않는 어느 세계에서 불려온 이미지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실재와 가상 사이에서 이미지를 탐구해온 정희민 작가의 작업이 어떤 감정을 이끌어낼지, 전시장에서 직접 경험해보길.

전시 전경, 우정수 작가 작품들
우정수, <Calm the storm 2-1>


2층에서는 1층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우정수 작가의 <Calm the Storm> 전시는 캔버스에 먹으로 그린 드로잉으로 인간들의 절박하고 격렬한 장면을 묘사해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그 서사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여러 개의 정사각형 캔버스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는 이번 작업은 성경에 등장하는 일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출발한 것.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을 캔버스에 담아내던 기존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확장된 시선이 느껴진다.

전시 전경, 강호연 작가 작품들


강호연 작가의 <백과사전> 전시가 열리는 3층은 태양계를 형상화한 설치 작업과 사진 작업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암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분명하게 보이던 작품은 공간 안쪽으로 다가갈수록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23개의 일상 사물을 이용해 태양계의 9개 행성과 14개의 위성을 표현했다. 인지와 감각의 주체로서 자신이 체험한 것을 재구성한 작업이 흥미롭다. 영아티스트답게, 무한하게 뻗어 나갈 것 같은 탐구 주제다.

전시 전경, 지희킴 작가 작품들
지희킴, <달아나버린 밤1>


지하 1층은 지희킴 작가의 공간이다. 전시 제목은 <가장 격렬한 것부터 가장 은밀한 것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2012년부터 버려진 책이나 기부받은 책을 이용해 북 드로잉 작업을 해왔으며, 특정 문장이나 단어를 발췌해 연관된 이미지를 책 위에 그린 작품을 선보였다. 그런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에 대한 탐색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기억과 이미지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과거를 텍스트 대신 이미지로 묘사했고, 대형 드로잉이나 영상을 통해 기억의 연쇄작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전시 제목처럼 ‘격렬한 것부터 은밀한 것까지’ 다룬 이번 전시 이후의 작업도 궁금해진다.

전시기간 2월 23일~4월 1일
관람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홈페이지 

 

 

젊은 작가들의 개성적 대화, ‘The Conversation’

전시 전경


통의동에 자리한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도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올해 첫 번째 기획전으로 선보인 전시의 제목은 <The Conversation>. 김수연, 최수인, 한진 세 명의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사회적 관계 등을 예술적 실험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하려고 시도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수연, <Greenhouse 1.88>
김수연, <Balloon 5>


주제에 따라 사진 이미지를 수집하고 그것을 회화로 표현해온 김수연 작가는 한국과 독일 등 국내외에서 다섯 차례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실제 사진 이미지로 3차원 입체 오브제를 만들고 이를 다시 2차원인 평면회화로 담아냈다. 몇 차례 다른 매체로 변환하는 과정을 통해 대상의 실체에 대해 탐구한 것. 재조합의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Greenhouse 1.88’이나 ‘Balloon 5’ 같은 작품은 대상의 출발점과 본질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최수인, <나 몰래 생기는 일들>


금호미술관을 포함해 그동안 세 차례 개인전을 가지며 작품세계를 알린 최수인 작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과 혼란을 자유로운 붓 터치로 표현했다. 즉흥적이고 반복적인 붓질을 통해 캔버스 위에 비논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는데 작가의 주관적 표현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개인의 심리적 마찰을 담아낸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회화다.

한진, <밤의 소절 2>


한진 작가의 개성 넘치는 회화 또한 인상적이다. 유화뿐 아니라 연필화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는데 ‘아늑한 울림’, ‘밤의 소절 2’ 같은 제목이 주는 이미지처럼 대부분 공감각적인 작품들이다. 작가가 자신의 감각으로 기억한 풍경을 캔버스에 밀도 있게 되살려낸 것. 특히 소리를 인지함으로써 기억을 지속하는 청각적 감각을 중시하며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진, <아득한 울림 #1>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시도한 끝에 완성한 작업이 관객과는 또 어떤 새로운 소통을 이끌어낼까? 젊은 작가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공간을 가득 채운 생동감 넘치는 전시 현장에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기간 2월 22일~4월 1일
관람시간 10:00~18:00, 월요일과 공휴일 휴관

아트사이드 갤러리 홈페이지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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