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중의 명반 <Time Out>(1959)으로 재즈계를 강타한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50년대 초반 대학 캠퍼스의 스타였다. 졸업 후 옥텟(5인조)과 트리오(3인조) 음반의 성공으로 일찍 명성을 얻게 된 그는, 하와이에서 서핑을 즐기다가 목과 척추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구조요원이 DOA(도착 시 이미 사망)라고 보고했을 정도로 위중했으며, 퇴원 후에도 팔 부위의 통증은 지속되었다. 이 사고는 그의 실험적인 연주 스타일에도 영향을 끼쳐, 연주 속도를 줄이고 다소 투박하게 들리는 코드로 독창성을 구현했다. 여기에 2차 대전 중 군대 밴드를 함께 하며 알게 된 폴 데스몬드(Paul Desmond)의 매끄러운 알토 색소폰이 가세하면서 그 유명한 데이브 브루벡 쿼텟(Dave Brubeck Quartet)이 결성된다.

Dave_Brubeck_Quartet_1962.jpg
전성기 시절의 데이브 브루벡 쿼텟

한동안 샌프란시스코 재즈클럽 블랙호크(Black Hawk)의 하우스 밴드로 활동하던 중, 브루벡은 틈새시장으로 대학 캠퍼스를 떠올린다. 이들은 밝은 양복에 지적으로 보이는 뿔테 안경을 끼고 캠퍼스를 순회공연하며 대학 사회의 인기 밴드로 발돋움했다.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음악 명문 오벌린(Oberlin) 대학은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 위주의 분위기에 변화를 주기 위해 마침내 공연을 허용하였고, 재즈를 처음 접해본 학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학생들은 곧바로 재즈클럽을 결성하였고 학교에는 공식적인 재즈 과목이 생겼다. 브루벡은 비벌리 힐즈의 신생 레이블 ‘판타지 레코드(Fantasy Records)’와 당시의 실황 음반을 내는데, 이 음반이 브루벡의 초기 명반 <Jazz at Oberlin>(1953)이다.

<Jazz at Oberlin>(1953)에 수록한 ‘How High the Moon’

오벌린 대학의 학과장은 “재즈 공연장소를 나이트클럽에서 콘서트홀로 바꾸게 되는 신호탄 같은 이벤트”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브루벡은 산타클라라에 있던 모교 패시픽 대학(현재의 The University of the Pacific)에서 연주한 실황 음반을 같은 해 출반하게 되는데, 이 음반이 당시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아놀드 로스(Arnold Roth)가 데이브 브루벡 쿼텟을 그린 캐리커처를 표지로 택한 <Jazz at the College of the Pacific>(1953)이다.

<Jazz at the College of the Pacific>(1953)에 수록한 'I'll Never Smile Again'

대학 당국들은 처음에는 캠퍼스 내에서 클럽음악인 재즈를 공연하는데 거부감을 보였으나, 서부 지역의 대학 공연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결정을 번복하였고, 이는 곧 브루벡이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브루벡의 부인 아이올라(Iola)가 로드 매니저로 나서면서, 4개월 동안 90여 캠퍼스를 순회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1954년에는 브루벡이 컬럼비아 레코드로 이적하면서 첫 음반으로 미시간대(앤 아버), 신시내티대, 오벌린대에서의 공연을 수록한 <Jazz Goes to College>(1954)를 출반한다.

Caption<Jazz Goes to College>(1954)에 수록한 ‘Balcony Rock’

캠퍼스 순회공연의 대대적인 성공은, 재즈를 지적인 음악 장르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공헌하였을 뿐만 아니라 브루벡을 신흥 캠퍼스 스타로 만들었다. 세계적인 주간지 <타임>은 1954년 11월 8일 자 커버모델로 그를 선정했다. 재즈 아티스트로는 루이 암스트롱 이후 두 번째였다. 메인 기사에서 그를 당대 가장 흥미진진한 재즈맨으로 소개하면서, “관객들이 그의 음악을 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떠들거나 잡담을 하면 안 되고 테이블을 흔들거나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된다”라며 그가 새로이 형성한 재즈 문화의 변화를 전하였다.

1101541108_400.jpg
재즈 아티스트로는 사상 두 번째 <타임> 표지에 오른 데이브 브루벡

같은 호텔에 머물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브루벡을 방문해 그가 나온 <타임>지 표지를 보여주자, 그가 “당신이 거기 실렸어야 했어요”라며 겸손한 면모를 드러낸 일화는 유명하다. 데이브 브루벡은 이후 재즈 신에서 인종 차별을 종식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술과 마약은 평생 손대지 않았고 캠퍼스 커플이었던 부인과는 70여 년을 해로하며 함께 재즈 교육에 공헌하여 가장 삶의 귀감이 되었던 재즈 뮤지션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시 시상식에서 “재즈를 이해하지 않고는 미국을 이해할 수 없고, 데이브 브루벡을 이해하지 않고는 재즈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를 칭송했다.

영화 <All Night Long>(1962)에 출연한 데이브 브루벡

 “재즈 뮤지션 최초의 팝스타”라고 불리며 재즈의 대중화에 기여한 데이브 브루벡. 대학 캠퍼스에서 녹음된 실황 음반 <Jazz at Oberlin>, <Jazz at the College of the Pacific>, <Jazz Goes to College> 세 장에는 다른 재즈 실황과는 달리 잡담이나 그릇 부딪히는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대신 틈틈이 박수 소리가 들리거나 함께 환호하는 젊은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소장 가치가 큰 웨스트 코스트 재즈 명반으로 기억된다.

브루벡 부부 모교의 추모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