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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2003)에서 주인공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명검 한 자루를 지닌 채 복수를 위해 동경으로 건너가 ‘오렌’ 패거리들의 단골 주점 청엽옥을 급습한다. 일백여 명을 상대로 무자비한 사지 절단의 칼싸움이 벌어지는 논란의 장면이 나오기 직전, 무대에서 맨발로 트위스트를 추며 연주하는 3인조 여성밴드가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이들의 연주와 노래는 영화 전체에 흐르는 B급 감성처럼 어딘지 모르게 생경하고 어색해 보이지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킬 빌>에서 5678s의 ‘Woo Hoo’ 연주 장면


타란티노 감독은 일본 도쿄에 갔다가 돌아오기 몇 시간 전 잠깐 들린 의류매장에서 흘러나온 이들의 음악을 듣고 매료되었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여 매장 매니저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매장에서 틀었던 CD를 정품의 두 배 가격을 주고 샀다. 그렇게 섭외된 밴드 5678s는 원래 <킬 빌>에 출연해 세 곡이나 촬영했으나, 영화의 길이를 대폭 줄이려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압력으로 상당 분량이 최종 편집되었다. 하지만 영화 DVD의 스페셜 영상에서 ‘I Walk Like Jayne Mansfield’, ‘I’m Blue’를 추가로 감상할 수 있다.

<킬 빌> DVD 스페셜 영상 속 5678s의 공연 모습

 
5678s는 <킬 빌>에 출연한 후 일본 로컬 밴드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영화의 최종 편집본에 남게 된 ‘Woo Hoo’는 The Rock-A-Teens의 동명의 히트곡(1958)을 리바이벌한 곡으로, 광고 제작자들의 눈에 띄어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인기를 끌었고, 영국 싱글차트에서는 28위에까지 올랐다. 영화 DVD에 수록했던 ‘I’m Blue’도 같은 차트에서 71위까지 올랐다. 이듬해에는 이들의 히트곡 ‘The Barracuda’가 영화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2006)에 수록되기도 했다.

Carling 맥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Woo Hoo’


일본 도쿄 출신으로 열정적인 로큰롤 팬이었던 친자매 사치코와 요시코를 중심으로 1986년 결성한 5678s는, 50년대에서 80년대를 아우른다는 의미로 특이한 밴드 이름을 정했다. 맨발에 과감한 의상, 몸을 사리지 않는 쇼맨쉽으로, 서프 록(Surf Rock)과 개러지 록(Garage Rock)의 히트곡을 원어로 부르기도 하면서 도쿄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서서히 팬덤을 확보했다. 영화 <킬 빌>이 잔인한 폭력 장면에도 불구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자, 영화와 같은 B급 감성을 지닌 이들의 음악도 덩달아 유명해지며 미국, 영국, 호주 등지에 자주 순회공연을 하는 인기 밴드가 되었다.

영국 레딩 페스티벌에 출연한 5678s (2004)

 

호주 시드니의 라이브 클럽에 출연한 5678s (2012)


물론 이들은 아티스트라기 보다 엔터테이너에 가까워 보인다. 이들 공연 영상의 댓글에는 음악적인 평가보다 “귀엽다” 거나 “우스꽝스럽다”는 음악 외적인 의견들이 다수다. 그러나 1980년대 등장했던 여성 록밴드들이 많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지금, 여전히 언디 신에서 공연 일정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이들의 행보는 자못 소중하고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5678s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