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름을 내건 상점들이 재빠르게 허물어지고 새로 들어서는 서울이라,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가게들이 더 새롭다. 이런 아이러니 속 오래된 가게의 진정한 매력은 변함없는 외양이 아니라 그곳이 만들어낸 가치다. 서울시는 이 가치를 보존할 필요가 있는 공간들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아래 오래된 가게들은 서울에 부는 변화의 찬바람에 맞서며 저마다의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을지로 ‘종로양복점’ 

이미지 출처- 종로양복점 홈페이지

전통을 고수하며 꿋꿋이 맞춤 양복을 만들어온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래된 양복점을 운영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주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에서, 아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맞춤 양복점인 ‘종로양복점’의 테일러(Tailor) 이경주 사장 또한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1916년 문을 연 종로양복점은 올해로 꼭 100주년을 맞았다. 종로 보신각 옆에 처음 문을 연 종로양복점은 역사의 흐름과 재개발의 여파를 겪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종로에서 살짝 벗어난 을지로의 현대식 고층빌딩에 자리 잡았다. 공장표 기성 양복이 쏟아지는 사이, 종로양복점 주인장은 여전히 낡은 가위와 줄자를 쥔 손으로 맞춤 양복 한 벌을 완성한다. 그것에는 100년의 기술력은 물론, 원단을 고르는 일부터 재봉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정성과,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더듬더듬 인터넷을 살피는 노(老) 장인의 노력이 만들어낸 가치가 있다. 

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 2가 78 을지비즈센터 618호
문의 02-733-6216
영업시간 매일
홈페이지 www.bellstreet.co.kr

 

만리동 고개 ‘성우이용원’

서울역 뒤편에는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서울역의 풍경을 반전시킨 듯한 모습을 지닌 만리동이 있다. 최만리라는 조선 시대 학자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걸어 올라가는 길이 만 리처럼 멀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헷갈리는 동네 이름의 유래를 떠올리며 만리시장을 쭉 올라가다 보면, 아득한 세월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낡은 외관의 ‘성우이용원’이 있다.

1927년 문을 열어 3대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우이용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다. 어릴 적 아버지를 도와 이용 기술을 배운 주인장도 내년이면 90살인 이발소를 따라 훌쩍 나이를 먹었다.실상 이곳엔 나이를 안 먹은 것이 없다. 위태로워 보일 만큼 낡은 간판부터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면도칼과 가위, 단종된 선풍기, 텔레비전, 라디오까지. 그러나 공간에 가치를 더하는 것은 사물들의 나이가 아니라, 주인장이 지켜온 전통적인 이발 방식이다. 머리를 다듬기 위해 감자 전분을 묻혀 틀을 잡고, 샴푸 대신 비누와 식초물로 머리를 감기는 옛 방식을 고수한다. 많은 이들이 ‘이용원’ 대신 ‘헤어숍’으로 향하는 지금도, 주인장은 성우이용원의 대를 이을 방법을 고민하며 묵묵히 오래된 공간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오롯이 담아낸 단편영화 <성우이용원>(감독 이동주)은 지난 11월, 제7회 서울메트로 국제지하철영화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장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7-30
문의 02-714-2968 

 

서촌 ‘대오서점’

이미지 출처 'Visit Seoul' 홈페이지

오랜 세월을 자랑하는 공간들이 많은 서촌에서도 1951년부터 반세기를 훌쩍 넘기며 한자리를 지켜온 ‘대오서점’은 큰 형님 격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인 대오서점의 매력은 온전히 간직한 옛 정취에 있다. 책방 안으로 들어가면 머리끝까지 닿는 책장에 빼곡히 꽂힌 헌책들이 반긴다. 낡은 책 표지를 한 권씩 훑다 보면 어느새 시간여행에 빠지고 만다. 그대로 둔 옛 한옥의 문짝, 할머니가 오래도록 쓰시던 장독대도 운치를 더한다. 꾸미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에 자연스레 익은 멋이다.

노부부가 함께 운영해온 이 공간이 몇 해 전 할아버지의 부재로 없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번진 수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의견들은 대오서점의 가치를 여실히 증명한 에피소드다. 다행히 할머니와 가족들은 여전히 책방을 운영하고 있고, 바로 옆에 손님들을 위한 카페도 열었다. 다만, 책방이 아이유 앨범 자켓 촬영지나 향수를 자극하는 박물관 같은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까닭에 대오서점에는 없던 입장료가 생겼고, 무단 사진 촬영 금지 팻말이 여기저기 붙었다. 오래된 가게에 불어온 변화는 반갑지 않지만, 스스로 존재를 지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장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하동 33
문의 010-9219-1349
영업시간 11:00 ~ 22:00
입장료 2,000원, 카페 이용 시 무료

 

혜화동 ‘보성문구사’

대학로보다 다소 한적한 혜화동 로터리 위쪽 동네에도 세련된 간판들이 제법 들어섰다. 그곳에 꿋꿋이 낡은 간판을 지키고 있는 '보성문구사'는 단연 눈에 띈다. 1968년부터 문구점을 운영해온 주인 할아버지는 보성고등학교 앞에서 30년간 지내다 혜화초등학교 앞으로 옮겨온 후 반세기를 넘기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문구점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지금의 학생들이 찾는 물건보다, 그때 그 시절 학생들이 가지고 놀던 옛것들이 더 많은 문구점이다.

녹색 칠판을 떠올리게 하는 간판부터 문 앞에 복사, 팩스라 써 붙여진 손글씨 하나하나 정겨운 풍경. 입맛을 사로잡는 쫀드기, 달고나 같은 불량식품이나 알록달록 화려한 종이 딱지 따위를 바라보면 한때 문방구 집 아들딸이 되고 싶다던 장래희망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러나 보성문구사의 앞날은 유년시절의 추억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곳곳에 '복고'가 흥행하면서 옛날식 외양을 띤 신제품들은 인기를 얻었지만, 진짜 옛것을 파는 보성문구사는 위태롭기만 하다. 오래된 가게는 여전히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장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1가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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